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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많은 미술관 - 미술관만 가면 말문이 막히는 당신을 위한
정시몬 지음 / 부키 / 2022년 8월
평점 :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자주 찾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디지털 복원에 진심인 지인이 있고, 갤러리를 운영하는 대표도 있다 보니 이런저런 전시회 소식을 많이 듣고 있다. 미술품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지인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 국내외로 취재를 다니다 시간이 날 때면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찾기도 했다. 또한 지난 2년 반 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다 보고 미술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관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최근에 읽어 본 <할 말 많은 미술관>은 미술 전공자나 관련 전문가가 아닌 ‘미술 덕후’가 썼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책은 유럽 미술관 7곳에 소장된 미술품들을 둘러보면서 저자가 알게 된 것들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p.16
루브르 관람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면 두 조각상, <날개를 펼친 승리의 여신>과 <밀로의 비너스>를 만나는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조각은 원래의 모습에서 일정 정도의 훼손된 상태로 발굴되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완벽함 혹은 완성됨을 영영 잃어버린 덕분에 전혀 새로운 차원의 미적 자산을 획득하는 역설, 반전을 이루어냈다.
p.33
유럽에서 르네상스 예술의 찬란한 광휘가 꺼져가는 자리를 우선 메운 것은 이른바 바로크 예술이었다. 바로크 하면 우리는 흔히 비발디라 바흐, 헨델과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떠올리지만 원래 그 용어는 건축과 미술 쪽에서 먼저 사용됐다. 특히 회화나 조각에서 바로크 양식의 특징이라고 하면 (중략) 인물들의 다소 뻣뻣한 동작, 차가운 색조와 침착한(무심한) 분위기, 시각적으로는 빛의 명암을 활용하여 현실감을 돋우는 기법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유럽의 여러 미술관을 방문하며 미술품들과 나눈 대화와 공감을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술관 방문이 무척이나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체험이 될 수 있다며 자주 관심을 기울이고 살펴보길 당부했다. 그런 저자의 마음이 담긴 이 책에는 루브르부터 바티칸까지 유명의 유명 미술관들이 소장한 작품들을 한 권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거장의 대표작과 함께 숨겨진 명작들도 감상할 수 있다. 100여 점의 도판과 함께 실린 간략한 캡션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넘겨볼 수 있다. 그런 다음에는 작품에 대해 하나씩 자세히 뜯어보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오래되고 유명한 미술 작품은 한눈에 척척 들어오지 않는다. 오래 두고 다시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면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그 작품을 만든 작가와 그 시대가 어땠는지 등에 대한 관심들이 추가적으로 생긴다.
p.106
원조 인상주의 화가들이 대상과 빛이 만나 이루어지는 시각적 인상에 주목했다면, 로트레크와 비슷한 기에 등장한, 이른바 신인상주의 혹은 과학적 인상주의 작가들이 생각한 인상의 결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자연광과 사물의 관계를 정교한 방법론이나 과학적 분석을 근거로 하여 화폭에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p.124
19세기 말~20세기 초를 대표하는 프랑스 조각가라면 단연 프랑수아 오귀스트 르네 로댕이 떠오른다. 파리 출신인 로댕은 젊은 시절, 건물 안팎을 꾸미는 장식 전문 조각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수년 뒤 순수조각으로 선회했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파리 예술원 입학에 세 차례 연속 낙방하는 등 오랫동안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미술품을 보러 다니거나 미술 서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고상한 취미이거나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그런 인식을 뿌리 뽑고 싶은 생각이 많아 나 역시 전시회 등을 소개할 때는 되도록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은 인간, 사물, 자연 등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많은 생각들 속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지, 글은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관심을 갖고 많이 찍고 써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를 하나 쓰더라도 다른 기자들의 기사도 살펴보고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기게 된다. 미술품을 바라보는 관심이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좀 더 탐구하고 궁금한 것들을 묻다 보면 미술품들이 하나둘 말을 건네올 것이다.
p.155
세잔의 풍경화 <붉은 지붕을 품은 전원 풍경>도 혁신적이다. 일단 그의 풍경화는 야외 조명 유무나 퀄리티에 종속되지 않는다. 즉, 하루 중 어느 한 시점을 포착한 자연 그 자체로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다. 흔히 그의 풍경화를 '무시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p.208
말년에 그의 별명이 '빛의 화가'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하면 터너가 후대 화가들, 특히 프랑스 인상주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미술사가들이 흔히 "인상주의 운동은 파리가 아니라 런던에서 시작되었다" 혹은 "인상주의 운동은 센 강변이 아니라 테임스 강변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장담하는 것은 바로 터너의 역할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저자는 미술작품을 매개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러어지는 자신과 예술가의 대화에 빠져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미술품의 감상은 특정 작품이 자신에게 보내는 혹은 예술가가 창조물을 통해 자신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알아채고 반응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왁자지껄한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서로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화가 될 수 있다며, 운이 좋으면 그 과정에서 미와 세계와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비록 이 책에 소개된 유럽의 박물관을 둘러보진 않더라도 가까운 미술관 혹은 갤러리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란다. 우리나라에도 미술품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미술품을 둘러볼 때 어떻게 봐야 할지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이 포스팅은 부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