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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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으로 문서로 전해져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는 시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영문학의 거장 존 캐리가 들려주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시와 시인들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이 새로 나왔다. <시의 역사>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를 시작으로 신과 영웅, 전쟁 이야기를 다룬 대서사시를 이야기한다.


또한 튜더 왕조, 엘리자베스 시대와 같은 왕정 시대와 중세를 거쳐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모더니즘 등 근대, 현대로 이어지며 간결하면서도 품격 있는 단어들을 배치한 시들과 만날 수 있다. 그 싯구들 속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는 장문의 글을 대신할 만큼 매력적이다.


이 책에는 단테, 셰익스피어, 워즈워스, 블레이크, 휘트먼, 예이츠, 엘리엇과 파운드, 월코트, 안젤루 등 서양 시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왜 시를 읽는지,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원론적인 물음을 던진다.


p.11

시란 무엇일까? 시와 언어의 관계는 음악과 소음에 견줄 수 있다. 기억에 남고 가치를 부여받도록 특별히 지은 언어라는 뜻이다. 언제나 그 목적을 달성하는 건 아니다. 수 세기가 흐르는 사이 까맣게 잊힌 시가 수천수만 편에 달한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잊히지 않은 시들을 다루려 한다.


p.18

<길가메시 서사시>는 구술하거나 노래로 불렀을 때 어떻게 들렸을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리듬, 운율, 각운과 관련된 이 시의 결정적 차원을 엿볼 길이 없으며, 그 차원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태초라는 말이 있듯이 서사시에 관심이 많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기원전 20세기경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해 기원전 8세기에 나온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같은 시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영속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마블 영화에서도 길가메시를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시의 역사>를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시들을 발견하길 바라고 있다. 또한 그 시들을 매일 생각 속에 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최초의 전쟁시라고 알려진 <일리아드>는 10년에 걸친 트로이 포위전의 마지막 몇 주일에 걸쳐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이 맞붙은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트로이군의 총지휘관인 헥토르가 그리스 전사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음을 맞는 지점에서 막을 내린다. 이미 많은 영화나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에 <일리아드>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많다. 음악과 미술도 마찬가지다.


p.72

존 스켈턴은 권력자들을 공개적으로 공격한 최초의 영국 시인이었다. 스켄턴은 당시 영국 최고의 세도가였던 울지 추기경을 조롱하는 신랄한 풍자를 썼고, 투옥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노퍽 디스의 교구 목사였던 스켈턴은 <사제에게 금지된? 결혼을 하고 가십에 저항하여 자신의 어린 아들을 벌거벗겨 제단에 놓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충격을 주었다.


p.73

스켈턴듸 시에서 가장 멋진 새는 <말해라 앵무새야>에 등장한다. 이 시는 허영심 강하고 까다로운 새의 입 - 또는 부리 -으로 서술된다. 앵무새는 호화로운 자산의 우리를 '은제 핀으로 희한하게 세공해 만들었다'고 묘사하고, 삑삑거리는 자기 모습이 거울과 아몬드와 대추를 좋아하는 입맛과 여타 앵무새의 관심사를 노래한다.



저자는 <일리아드>에 기록된 전쟁에 대한 감정적 분열은 인간 본성에 깊이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날에도 현충일 추도식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전쟁의 영광을 찬미하고 헛된 희생을 통탄하는 행위는 언제나 병존한다고 말했다. 우리 내부의 이런 괴리를 드러내 보이는 <일리아드>가 보편성과 깊이를 담보하는 이유로 보고 있다.


국가적 서사시를 쓴 영국의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요정 여왕>은 호메로스와 달리 기사도적이고 낭만적인 새로운 종류의 서사시를 대표하는데, 스펜서의 모델은 위대한 이탈리아 시인 로도비코 아리오스토가 쓴 <광란의 오를란도>라고 한다.


이처럼 한 편의 시는 위대한 서사를 알리는 한편 따뜻한 위로 격려,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혹은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과 분노에 불을 지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무엇이 시에 영생을 부여하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시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시가는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일 수도 있다.


p.158

소위 신고전주의 시대는 1680년대부터 1740년대까지 이어진다. 누구의 기준을 따르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말이다. 17세기 말 영국의 권력 기반은 왕의 궁정에서 의회로 옮겨갔고, 새로운 시대에는 정당이 형성되고 정치적 보복이 성행했다. 동시에 소설이 쓰였고 순회도서관이 시작되었다.


p.168

오만과 영예에 대한 존슨의 (아주 영국적인) 혐오는 <로버트 레빗 박사의 죽음에 부쳐>에서 사적인 표현을 찾는다. 이 시는 런던의 빈자들 가운데서 치료비조차 사양하며 일했던 수줍은 무명의 의사를 추모한다. 종지부에서 재능의 우화를 언급하는 대목에 존슨의 깊은 기독교 신앙이 투영된다.


그의 미덕은 좁고 둥근 길을 빙빙 돌아 걸었고

쉬지도 않았고, 여백을 남기지도 않았다,

분명 영원한 주군은

그 하나의 재능이 훌륭하게 사용되었음을 알았다.



이 책은 영미 문학을 두루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여러 원전 역사서를 연구하고 분석한 작가 존 캐리는 고대의 서사시부터 현대시까지 시대별로 두드러진 시인과 그 대표작을 인용하고 있다.


또한, 시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면서 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시 읽기의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다. 물론 똑같은 시를 읽더라도 그는 시를 좋아하는 선호도가 다르고 미학적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아닌 개인의 의견이 있을 뿐이라며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통해 수천 년이 흘렀는데도 잊히지 않는 시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누가, 언제, 왜 지었는지 살펴보다 보면 유럽 역사의 한 장면을 거닐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신과 영웅, 괴물, 전쟁, 모험, 종교, 죽음, 사랑, 정치 등 인간의 삶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쓰인 시의 오래된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 보시기 바란다. 시의 또 다른 매력과 만날 수 있다.



이 포스팅은 소소의책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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