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면접
박정현 지음 / 블랙페이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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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집착을 의심하게 하는 편지 매일 집으로 배달된다. 집착, 집념은 점점 구체화되고 그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체 무엇일까? 편지를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기 고양이처럼 벌벌 떠는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5가지 이야기의 단편을 엮은 박정현 작가의 <자살 면접> 중에서 첫 번째 단편에 등장하는 '세희에게'는 스토킹을 당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늙은 꽃에 물을 주었다. 이미 수명이 다했지만, 그래도 물을 주었다. (중략) 너도 온전하게 지게 될 테니.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는 것 같은, 집착을 넘어 광기에 가까운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면?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허탈하면서도... 측은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너에게 사무쳤다. 너의 외모에, 너의 배경에, 너 자체에, 나는 너의 200여 개의 뼛속 마디마디에 깊이 스며들었다...


스토킹에 대한 뉴스는 요즘 심심치 않게 나오는 기삿거리 중 하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길이 어긋나거나 약속 장소를 잘못 알아 어긋날 경우도 있다. 때론 생각지 못했던 사건으로 오해가 쌓여 멀어거나 갑작스럽게 헤어지기도 한다.




<자살 면접>에 소개된 첫 번째 이야기 '세희에게'는 지독한 스토킹을 의심케하는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써봤을 러브레터와 맘속에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생각들의 반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스토커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책을 읽는 독자일 수도 있다. 아니 나일지도 모른다. '세희에게'에서는 언제부턴가 집안 곳곳에 정체불명의 편지가 발견되는 되고. 보내는 이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점이다. 내 이름은 세희니까.


편지 내용은 나와 죽은 그이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누군가 나를 조금씩 조여 오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이상 수사에 나설 수 없다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면??


소설 말미에는 의외의 반전이 숨어 있다. 아~ 그 생각을 왜 못했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 상황이 되면 나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큰 반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번쯤 우리 삶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결말에 짠한 마음이 든다.





작가의 두 번째 단편은 책 제목과 같은 '자살 면접'이다. 자살을 범죄로 규정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자살도 면접을 보고 합격해야 하는 사회라면 죽는 게 쉽지 않은 사회다. 내 목숨을 내가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온당한 일일까? 소설을 소설로만 읽어야 하는데, 내 경우에는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딴 생각에 빠지곤 한다.


국가는 고의든, 자의든, 죽음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했다. 가족이나 사촌에게, 그마저도 없으면 국가가 보상해 주었다. (중략) 정부는 이를 다시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 개선이 아닌 자살로 인하형 생긴 '피해' 규정의 폭을 넓혔다. (중략) 이제 자살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동정이 아닌 민폐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죽는다는 것 자체가 큰 폐가 되어 함부로 죽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설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살을 시켜주는 '자시단'이라는 단체가 등장한다. 자시단은 면접을 통해 합격한 자에게만 자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다만 자기들이 세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탈락시켰다.


자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자살 면접'에서도 현재와 같은 사회 시스템 상에서 구성원 개개인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셈인데, 실제 현실에 도입된다면 어떤 상황이 생길 것일까?





이외에도 <자살 면접>에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한 알루미늄 덩어리들에게 우리의 모든 것이 빼앗긴 이야기가 중심인 '알루미늄', 사람을 구했지만 누명을 쓰게 됐다는 영웅의 이야기 '호셰크', '오르', 그리고 친구와 함께 구매한 로또가 1등에 당첨된 사연이 소개되는 '1,478,629,972'... 이게 얼마야? 14억 7천800만 원쯤?! 암튼, 로또 1등을 거머쥔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단편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끌리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 <자살 면접>은 단편 소설 묶음집이자, 장르 소설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생각도 깊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요즘 같은 겨울철에 읽으면 좋을 책이다.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이 포스팅은 블랙페이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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