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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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오늘의 삶은 일기가 되고,

그 일기로 쌓아올린 삶은 역사가 된다!




500년 혹은 1000년이 지난 어느 날, 후대의 누군가가 내가 쓴 메모 같은 일기를 읽게 된다면 어떨까? 일기는 그날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기억에 남기고 싶거나 기록해 두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쓴다. 두서 없이, 마음 가는 데로 쓰게 되는데...


과거의 어느 한때에 대한 기록을 수많은 시간이 지나, 선조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하는 후손이 읽게 될 줄 알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고 일기를 쓸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재미난 책이다. 조선에 살았던 일반인(?)들의 일기장을 들여보는 재미가 있다.


아래 이야기처럼 낙방했다는 것을 알게 된 처지가 참으로 슬프다. 누구나 실패의 쓴 잔을 맛보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시험에 낙방하는 것만큼 좌절감을 주는 게 또 있을까?


p.40

[청대일기] 1704년 9월 5일

급제자 명단이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낙방을 피하지 못해 통탄스러운 마음이었다. 옛 성현이 말씀하시길, "아무리 억울하게 낙방하였어도 무덤덤하려고 하지만, 결코 완전히 무심할 수는 없더라."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로 뼈가 있는 말씀이다.




역사책에서 보던 [승정원일기]나 [난중일기], [백범일지] 같은 느낌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저자는 자신이 읽었던 그들의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번민과 고뇌, 감탄과 희열로 가득한 시시콜콜한 삶이 너무나 찬란해 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볼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책을 엮었다고 이야기했다.


왜 작가는 조선 사람들의 일기를 택했을까? 그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선시대 개인일기 학술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의 개인 일기들은 무려 1431건에 달한다며,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조선 사람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시대를 통찰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시대정신을 기록하기 위해, 혹은 후대에 남길 정신적인 유산을 축적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고 밝혔다.


아래 이야기를 읽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공직자와의 친분 관계를 내세워 사기를 치는 모습이 어찌나 닮아 있는지 한참을 '허허~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일기를 읽었다.


p.125

[서수일기] 1822년 4월 22일

내가 암행어사로 평안남도에 온 뒤, "내가 말이야, 암행어사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야."라고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나타나 아전과 백성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고을에 공문서를 보내 사기꾼들을 붙잡을 것을 명령했다.





양반들의 속사정은 물론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일반 백성들의 시시콜콜한 일상들도 재미난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여행 중에 쓴 여행일기를 비롯해 전쟁 중에 쓴 전란일기, 궁중의 여인들이 쓴 궁중일기, 단맛 짠맛 다 드러나는 생활일기, 공무를 수행하던 중에 쓴 사행일기 등 짧게는 수십 일, 길게는 몇 세대가 이어 쓴 일기들이 있다.


저자는 수많은 기록자료 덕분에 21세기 책상에 앉아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비교적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때로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처럼 웃을 수 있고, 때로는 슬픈 영화를 볼 때처럼 눈시울을 붉힐 수도 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기록에 푹 빠져 일기의 주인들과 완전히 공명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아래 내용을 보면, 부부간에 참 한심스러운 상황에 대해 썼다. 요즘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ㅡㅡ;


p.202

[묵재일기] 1552년 11월 21일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가 화를 내면서 욕을 퍼부었다. 아내는, "그렇게 먼 곳으로 간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고 기생이 잠든 남의 집에서 잘 수가 있어? 이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노친네가 할 짓이야? 어떻게 된 게. 남편이란 사람이 아내가 속상해서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건 신경도 안 쓴단 말이냐고!"라고 쏘아댔다.





저자는 이 책에 소개된 자료들은 모두 전문 연구자들과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쏟아부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이 책은 ‘공명 유도서’라며, 저자는 “책을 엮을 때 독자들이 일기 속 주인공과 충분히 공명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일기의 주인공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생활상과 시대를 마주할 때 비로소 그들이 살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와 시대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독서의 재미를 위해 저자가 직접 그린 주요 등장인물의 캐리커처와 저자가 직접 쓴 한문일기 필사본이 실려 있다. 재미난 역사책을 찾고 있었거나 색다른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들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326423474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https://bit.ly/2YJHL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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