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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엠버 - 빛의 세계를 찾아서 ㅣ 엠버 시리즈 1
잔 뒤프라우 지음, 신여명 옮김, 김윤한 그림 / 두레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살아 있는 것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그들 내부에 숨어 있는 어떤 힘이란다.”
빛은
내소사를 품은 전나무숲 위 높푸른 하늘, 카페모카 위에 얹힌 폭신폭신 생크림 같은 큰 무더기 구름, 그 구름 틈새를 비집고, 숲 가득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쏴라락 쏴라락 사선으로 내리 긋는 빛줄기로,
램브란트의 그림 ‘나사로를 살리심’ 속에 스며있는 메시야가 손에 든 등불 같은 이미지로,
석양의 붉은 해를 등 뒤로 가득 업고서 풀어 헤친 머리칼을 조용한 바람에 흩날리며 걸어오는 미스터 블랙, 그 가슴설레임으로,
나를 출렁이게 하곤 한다.
엠버시
낡아빠진 구두, 보푸라기 투성이 스웨터, 소매 끝이 헤져 너덜거리는 외투, 바닥나가는 물자와 별도 달도 해도 없이 전기만이 유일한 빛의 공급원인 어둠이 압도하는 도시
정전은 엠버(ember_남은 빛) 시민들에게는 바닥나가는 생필품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큰 악몽일수밖에 없다. 정전은 어느 날 더 이상 남은 빛조차 발하지 못하는 세상의 끝이고 엠버의 끝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눈앞이 캄캄한 암흑은 일부에게는 ‘건설자’들이 구원해주러 나타나길 바라는 집단밀교로, 또 일부에게는 울렁술렁이는 동요의 움직임으로 시민들의 등을 떠밀지만 이런 혼란속에서 리나와 둔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엠버를 떠나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어느 날 ‘운명처럼’ 그들앞에 나타난 탈출안내문이 도시 끝 쓰레기더미 너머 온통 어둠뿐이 암흑의 저편 너머 어딘가 있을지 모를 다른 세계, 빛의 도시로 갈수있는 실마리가 되어줄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95년 영화 『언더그라운드』 속 지하세계 시민들은 2차 대전당시 반나치 반히틀러를 외치다 탄압을 피해 저항세력의 결집을 위해 지하로 스며든 베오그라드의 레지스탕스들이다. 시간이 흘러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끝난 전쟁을 지하세계에 숨기고 지상에서 영웅노릇을 하던 마르코와 지하세계에 숨어 그날을 준비하던 블랙키와의 대립각은 로맹가리의 단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단편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전쟁이 끝난 줄 모르고 생존을 위해 신분을 꼭꼭 감추며 살고있는 유태인 글루코만과 그를 속여 어둠속에 가둬 왔던 나치 고문기술자 슐체와 더불어 머리든 배든 서로 들러붙은 영락없는 샴쌍둥이다

마르코는 블랙키를 비롯한 지하세계 레지스탕스들에게 슐체는 글루코만에게 아직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고 속이면서 그들을 그들만의 세상속에다 꽁꽁 묶여놔 버리고 자신의 탐욕스런 사리사욕을 채워왔다. 마치 엠버시장 콜이 잦은 정전과 식료품조차 바닥나 불안에 휩싸여 동요하는 시민들에게 “다...아화앙해서는 아아됩니다. 두려어워 해애선 아안된니다. 무우서어하아리유가 전언히 엄써요오.” 라고 공회당앞에서 연설했지만 정작 시장 자신은 언제 끝장나버릴지 모를 엠버시 운명을 대비해 지하배관 드넓은 방에 모래더미처럼 많고 나무처럼 높고 운동장처럼 넓은 욕망덩어리를 그득그득 채워놓고 볼이 늘어지도록 배가 찢어지도록 더러운 식욕을 채워왔듯이.
언더그라운드나 로맹가리 소설의 어둠속 인간들은 가열찬 투쟁이나 극단적인 살인을 통해 “‘빛’ 혹은 ‘다른 세계’로 나가기”를 이루어 냈던 반면 리나와 둔은 판타지소설 특유의 미덕답게 다소 극적이게 다소 허황스럽게 이루어낸다. 즉, 현실난국극복 신념주의자(둔)와 다른 세상을 꿈꾸던 이상주의자(리나) 앞에 어느 날 ‘탈출안내문이 나타나고 해독하고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모험.. 모험.. 그리고 실현’ 이라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판타지의 전형(^^;)으로
메신저 리나의 취미는 상상속 혹은 꿈속에 본 다른 도시를 그리는 일. 손에 쥐기도 힘든 몽땅연필을 아껴 그리던 어느 날 24색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갖춘 색연필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말에 홀려 어린동생 포피를 업고 루퍼의 잡화점으로 가게 되고, 완벽한 새 색연필을 보자 1자루에 5달러짜리 욕망의 늪에 거침없이 자신을 밀어넣고 말았다. 색연필 두자루를 사고 그녀는 깨닫게 된다. 포피를 잃어버린 사실 하나와 엠버시에서 그간 유례가 없었던 4분 30초 긴 정전이 발생했음을.
지하배관공 둔은 학교졸업식 직업배정일에 “더 이상 번영하고 있지 않은 엠버,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엠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뽑은 직업 메신저를 리나와 맞바꾸고 지하배관에서 전기의 원리를 연구하고자 노력하지만 절망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리나가 자신의 욕망속에서 구원을 깨달은 것처럼 지하배관의 탐험은 길과 문을 익히는 계기가 되었고 리나와 함께 안내문을 보고 다른 세계를 향한 출구를 찾아 나서게 된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긴 법.
신념주의자 둔과 이상주의자 리나도 엠버시를 탈출하는 출구를 찾고서 최초의 발표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구정물을 먹는 돼지가 똥 통속일지라도 먹을 것만 많아 비룩비룩 살찌는데 불편하지 않다면 그 안락함을 물릴 리 만무하다는 이치를 인식하지 못해 리나는 시장에게 붙들리게 되고 어리석음의 다름 아닌 정전(어둠)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출구를 떠나는 모험은 지하감방에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잠든 밤 꿈속에서나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리나를 사로잡은 1자루 5달러짜리 욕망은 정전속에서 잃어버린 포피를 찾으러 다니던 리나에게 후회와 급속히 대체되면서 곧이어 빛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지만, 시장이 지하 배관에 켜켜이 쟁여둔 욕망덩어리는 생사를 함께 할 엠버시민을 향한 연민으로 더 나아가 엠버의 종말을 극복할 다음 수순으로 결코 승화되지 못하고 만다. 엠버시를 압도하는 어둠만큼이나 커다랗고 집요한 탐욕의 노예가 되어 비둥비둥 살진 콜시장은 그 옛날 엠버의 일곱 번째 시장을 닮아있다. 200년 전 이도시를 세운 건설자들이‘안내문’을 넣고 봉인한 상자를 엠버시장은 대를 이어 후대에 전해야 할 사명이 있음에도 기침병을 나을 비문을 얻기위해 상자를 깨려다 죽음과 함께 상자의 존재를 잃어버리게 만든 일곱 번째 시장의 비루한 욕망을.

인간의 욕망은 짧든 길든 크든 작든 한치 앞을 분별하지 못할 어리석음에 잡아둔다. 빵과 자유를 달라고 외쳤던 프랑스혁명을 급격히 반동화 시켰던 로베스삐에르가 나폴레옹을 불러냈듯,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자 하였던 사악한 한 여자가 불에 달궈진 신발을 신고 춤을 추다 죽어갈 운명에 자신을 자빠뜨리게 될 거란 사실을 모른 채 골방에서 독사과를 만들었듯, 욕망 그 시작은 찬란하게 빛났을지나, 그 끝은 쓸개즙처럼 쓰고 아이가 손에서 놓친 헬륨가스 풍선처럼 하늘높이 허망할 뿐이다. 하지만 콜 시장이 성난 시민들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거짓말로 세치 혀를 놀리듯 탐욕스러운 욕망이 다하는 최선이란 자신을 종국으로 내몰고 마는 익스프레스 원웨이 티켓임을 자신이 알 도리는 없는가 보다.
세상의 끝
엠버시가 세워지기 훨씬 더 전. 세상에 끝이 찾아왔던 모양이다. 그 곳은 뜨거운 태양이 뜨는 땅이었던가 보다. 그 곳엔 초록색 나무가 자라고 보라색 열매가 씨앗을 품어 번식하며 귀가 기다란 동물이 평화롭게 살던 땅이었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 세계가 끝나가자 엠버시 건설자들은 또 다른 세상을 세워 인류와 세상을 구원하고자 과학자, 건축자, 농부 들을 모아 세상의 끝으로 가 엠버시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언젠가 닥칠 엠버시의 끝을 대비해 엠버시의 난민을 위해 탈출안내문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200년도 못가 끝을 고하는 엠버는 또한 엠버 이전의 도시는 지구의 미래일수도 제국의 미래일수도 있겠지만, 무엇이건 간에 시민의 인간의 욕망과 닿아있지 않았을까? 엠버시의 일곱 번째 시장처럼 엠버시장 콜처럼 잡화상 루퍼와 그의 애인 리지들처럼 그리고 영악한 편리함과 사악한 배부름만 채우고있는 나처럼...
리나와 둔이 보트와 양초에 의지하여 도착한 또 다른 세계는 초록색 나무가 있고 주홍색 빛이, 뜨거운 태양이 있다. 어둠의 엠버시 너머 이 빛의 세계에서 그들은 아담과 이브처럼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건설책임자 일 것인지 두 번째 모험이야기가 궁금하다.
하늘에서 휙 떨어진 엠버시 탈출을 위한 비밀공문을 읽은 머도부인이 엑소더스 엠버시의 모세가 될것인지 첫 번째 이야기속의 평범한 모험과 긴장 말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좀 더 손바닥이 간질간질한, 바짝바짝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짜릿한 엉덩이가 들썩들썩한 모험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그리고 기왕지사 인간의 졸렬한 이기심도 극복할 대안을 마련한 다른 세상, 빛이 가득해서 빛의 밝기만큼 희망이 한무더기 가득 주렁주렁한 세상이었으면 좋을텐데 그 빛의 세계가. 천년이 가도 백만년이 가도 사랑이 있어 끄덕 없을 그런 세상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