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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 전10권 세트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0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은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사람 사는 것, 허투루 사는 것 같지만, 머리카락 한 올, 옷가지 하나, 몸짓 하나도 가지런히 하여
마음을 곧추 세우고 사는 법들이 이 책들의 곳곳에 들어 있다.
돈이 지상 최대의 목적이 되어버렸음을 공공연히 얼굴 붉히지도 않고, 또 진지하게 읊어대는 이 세상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 혼불이 인터넷 서점에서는 모두 품절이라...
몸소 시내의 오프라인 서점들을 뒤졌더니, 고이고이 있으시더라.
때로는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받는 편리함보다는
발품 팔아 돌아다녀서 얻는 것이 많을 때가 있다.
참고로 본인은 부산의 영광도서에서 구매하였음.
서울지역의 서점의 현황은 알 길이 없겠삽고,
책을 읽어볼 욕심이 있으신 분들은 일단 오프 서점을 통해 알아보시고,
안되면, 부산이나 지방 대형서점들에 문의하여 주문하시면 되겠삽나니.
위에 마이리뷰를 보니 지겹다는 평을 주신 분이 몇 있으신고로...
뭐 저 또한 개인적인 의견인지라 부디 괘념치 않으시기를.
최명희의 <혼불>은 기존의 대하소설 또는 기존의 서사문학이 갖고 있는 사건진행을 과감하게 무너뜨려버린다. 가령 첫 부분의 대나무밭에 대한 묘사는 서너 장은 기본이다. 그러다보니 서사진행이 더디기 마련.
그러나 그러한 묘사들은 단지 묘사에 그치지 않고, 서사진행과 절묘하게 어우려진다. 그게 이 소설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는 뻔히 아는 심청전이나 춘향전같은 이야기들을 수많은 버전으로 보고 들어왔다. 그리고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판소리 공연으로만 몇 십 번을 보신 분들도 계시다. 왜 그럴까?
이야기는 사건의 개요와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는 헐리우드식 스타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춘향전과 심청전을 요약하자면 <권선징악> 정도랄까...
우리는 요약본을 스피디하게 읽어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주제나 줄거리가 이야기의 전부는 아닌 셈이다. 오히려 이야기를 풍부하게 살려내는 것은 수없이 많은 옆가지의 이야기들, 방자가 춘향에게 말수작거는 장면들 같은,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디테일은 이야기를 우리들의 삶의 차원으로 섬세하게 옮겨놓는다. 뭐 굳이 비교하자면, 슈퍼마리오 게임과 최신의 RPG게임의 차이랄까. 뭐... 슈퍼마리오도 재미있지만, 최신의 RPG는 또다른 차원의 느낌을 전해준다.
이 디테일을 놓치게 되면, 당연히 이야기는 지겨워질 수 밖에. 전율이 일어날 만큼 푸른 대밭 속에서 그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 숨막히는 가상체험이 지겹다니!
최명희의 혼불은, 어떤 분이 평했듯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비단을 짜내듯이 써낸, 풍부하고 절묘한 디테일들이 이 허구를 삶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허구와 실제의 무한한 작용을 이 소설 속에서 발견하고, 또 거기서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