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하나님을 알자
D. A. 카슨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응어리진 생각들을 분출할 기회다. 아무튼 내 블로그니까 싸질러 보는거야

물론 이 주제로 논문이나 책을 써볼 요량은 있다. 이 글을 잘 보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힘써 하나님을 알자. 이책은 참으로 나에게 감사한책이다. 아무래도 내가 가야할 신학적 방향에 대한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는 신학적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서 한번쯤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런 지식에 대한 비판은 칼바르트로도 충분하다 근데 그 칼 바르트도 자기가 성령의 이야기를 한것인지

자기가 생각한 하나님을 덧씌운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내가 보기엔 자기 생각을 성경에 덧씌운 한명의 신학자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칼바르트도 비판할겸 성경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 하는 웃긴 놈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길가메시 서사시나 벌하우젠의  JEDP문서설이나 두자료설이나 성서학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일단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이야기 해보자, 그것이 성경에 영향을 준건 사실이겠지만, 사실 그 당시 시대는 양식비평을 하고 있는 자에게는

그것을 그대로 썻다기 보다는 하나의 전해내려 오는 설화 양식이지 이것을 그대로 베껴 썻다는것은 무리가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옆에 놓고 창세기를 썻다고 이야기를 하는 성경학자가 있고 혹은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성경이

하나의 신화쯤으로 이야기 하는 놈들이 있는데 웃긴 짓거리이다. 사실 고증하는것도 어차피 하나의 가정이나 설화이고

가설인것을 왜 인정 못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또한 벌하우젠의 JEDP문서설 이 문제도 그렇다. 모세오경이 다른 사람이 썻다는 것의 증거는 사실 문서적 증거 말고는 거의 없다.

이것을 통해 얻을수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 모세가 쓰지 않고 이책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썻다는증거를 원서적으로 문헌 비평을 했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은 성경을 그리 믿을 만한 책이 아니야 내지는 성경은 신화야 이 율법은 완전하지 못해

우리가 얻을수 있는 지식은 이걸로 됬어. 창세기에 있는 창조론은 허무맹랑한거야

웃기는 짓거리다. 여호와 문서 야훼 문서 그 증거를 발견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입장을 취하고 성경을 읽는데, 오히려 방해만 줄 뿐이다.

이면에서 난 회의를 느낀다. 과연 우리가 이 증거를 통해서 얻어야 할 회의의 결과로서 하나님에 대해서 얻는 말씀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시는게 무엇인지를 모르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사실 나도 신명기를 읽어보면 이게 모세 혼자 썼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모세가 썻다고 믿고 싶다.

 

근데 이 모든 문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두자료설에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또한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복음서에서 두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불충분하며

 우리는 Q자료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며 마가복음과 두자료가 존재해서 우리가 원복음에 접근할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곧 허사가 될게 분명하고 우리는 가장 웃기는  상황에 처한다 모든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무것도 없음에 봉착하게 되는것이다.

 

나도 신나게 성경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으면서 아 이게 원복음이지 하면서 자위할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이게 원복음이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 시대에 가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이게원복음이라고 이야기할 근거가 없다.

 

아무튼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성경을 읽을때 방해되는 헛소리 내지 잡소리만 늘어놓는게 바로 현시대의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것이다.

알아도 그만이고 알아봤자. 헛소리만 하는 이상한 신학들이 바로 지금이고 , 나중에 후대에서 성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하늘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전부 가장 비참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할수 있는 시대가 바로 이시대라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신학을 하는것인지 신에 대해서 이건 신화야 거짓이야 설화야 하고 주장하는 학문을 하는것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바울이 썻냐 안썻냐 거짓이 아니냐 이건 원복음이냐 가짜냐 이건 성령이 감동안했다. 저건 진짜고 가짜다

근원적인 하나님의 영감의 잣대는 우리이성이고 우리인간의 몫인것이다.

웃긴짓거리다

한마디로 월권행위이다. 신이 있어야 할자리에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말씀의 위치를 판단하는 자격을 부여한것이다.

 

우리는 진짜 신학을 하고 있는가? 바울이 전하려던 복음이 무엇이고 예수님께서 전하려던 복음이 이시대에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을까?

공허한 헛소리나 지껄이면서 우리가 진짜 복음이야 우리가 가짜 복음을 판별해줄게 하는게 아닌가?

그게 신학인지 본질적으로 의문이 든다. 조직신학 하는 사람들 조차 아예 입에 담기 힘들정도로 비판하고싶다. 그들은 또 어떠한가

자기 신학이라고 이야기 하질 않고 허무맹랑한 철학을 이야기 하면서 이게 진짜라고 이야기 하는 그런 사조를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아무튼 이런 모든 논쟁을 하려면 난 좀 배워야하겠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책을 읽으면서

이책은 시종일관 신학을 하고 있는 아주 귀중한책이다. 신앙에 대한 학문이고 신에 대한 학문이면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배워야 하는게 기독교이다.

 

이책은 그것에 대해서 구약부터 신약까지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한마디로 복음주의는 신학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무슨소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신학은 아주 귀중한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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