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 2022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 2023 천보추이 국제아동문학상 최우수 그림책상 수상 그림책향 34
서선정 지음 / 향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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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의 강렬한 어느 날’.

이빨이 달린 파리지옥, 눈알이 튀어나온 식물, 뾰족뾰족 가시 돋은 사마귀. 흰 선과 검은 선의 교차는 여느 날과 다른 날이 될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흰 선과 검은 선은 횡단보도.

횡단보도 건너 친구와 마주한 파란 헬맷을 쓴 아이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짐작이라도 한 듯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구불구불하게 혹은 물을 떨쳐내는 빨래처럼, 혹은 뾰족한 가시를 감싸는 빨판......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아니 풍선을 타고 날아간다.

드디어 친구와 마주한 곳에서 우리의 세계는 여러 시간과 공간 속의 하나임을 알게 된다.

친구와 나란히 서서 여러 세계를 보며 그럼 이제 신나게 놀아볼까?” 하는 말은

마치 세계를 향한 첫 걸음에 선 듯한다.

다시 횡단보도.

흰 선과 검은 선의 교차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인 것 같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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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 시민의식과 민주적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그림책 수업의 힘
그림책사랑교사모임 지음 / 맘에드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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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지 의문이 들었다. 

일상에서 민주적인 문제 해결보다 큰 담론으로서 민주시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는데, 저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이 학교 일상에서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가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이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며 자발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하는 동안 어느새 스스로 깨닫는, 즉 퍼실리테이션이 역동적으로 일어나게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P.7

커다란 주제인 '인권, 자유, 평등, 평화, 다양성, 사회적소수자, 연대, 사회참여, 환경, 윤리적 소비, 미디어 리터러시, 민주주의와 선거'는 당위적으로 허구적 메아리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실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계기교육의 구호는 무엇을 남겼는가? 아이들에게 행복할 권리와 안전, 사회적 정의를 남겼는가? 오히려 거센 담론 속에서 '배 타기 무서워. 가라앉을지도 모르잖아.' 라는 거부감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소소하게 일상으로 스미는 교육, 부드럽고도 다정하게 다가가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더 힘있는 교육임에도, 급한 마음에 서두르고 구호를 남기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의 힘은 다양한 방식의 수업 방법을 통해 일상 속에서 부드럽게 다가간다는 점이다. 저 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 가까운 곳의 이야기라는 것을 통해 '나'의 이야기가 되어 생각의 고리를 이어가게 한다. 

어쩌면 민주시민교육이라기 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아주 작은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그 걸음이 결코 작지 않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옆에 한 사람씩 손을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작기에 함께할 힘을 모을 수 있고, 그 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다가간다.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삶의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는 민주시민교육,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이야기 나눠봄직한 주제들을 편안하게 풀어내 주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 일상에서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가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이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며 자발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하는 동안 어느새 스스로 깨닫는, 즉 퍼실리테이션이 역동적으로 일어나게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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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리에게 변혁의 길을 묻다 - 파울루 프레이리 교육학의 사상적 뿌리, 2023 세종도서 학술부문
심성보 지음 / 살림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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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리에게 변혁의 길을 묻다

심성보

 

바람이 서늘해지는 11월 초, 제천 간디학교에 갔다. 이병곤 교장선생님은 심성보교수님 북콘서트에 토론자로 참여해야 한다며 서둘러 학교를 나서고 있었다.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이병곤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심성보 교수님의 근저를 검색했다. <프레이리에게 변혁의 길을 묻다>. 초록 바탕 위에 프레이리변혁이 눈에 들어왔다. 페다고지를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진보 교육이니 보수 교육이니 죽은 교육이니 살아있는 교육이니 하는 말들이 나에게서 모두 튕겨 나가기만 했다. 너무나 행복한 학교생활이었다고, 그래서 입시 블랙홀에 빠진, 경쟁이라는 말로 교육을 말해 버리면 나의 행복한 학창시절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로 거슬러 올라가 루소와 페스탈로치, 부버, 로저스, 프롬, 라캉, 푸코, 듀이, 프레네, 하버마스, 코르차크, 비고츠키, 랑시에르, 일리치, 그람시, 게바라에 이르는 교육자와 철학자를 프레이리와 연결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프레이리 교육학의 사상적 뿌리는 저 멀리 고대 아테네까지 갔지만, 관통하는 한 가지는 앎을 실천하고, 배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머물러있지 않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각자가 지닌 배움의 의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배움을 조직하고 앎과 행이 일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었다.

 

학교에 교사로 섰을 때, 약간의 자만심과 우쭐함 그리고 아이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며 학교라는 공간은 견디기 싫은 그래서 자꾸 도망가고픈 곳이 되어버렸다. 그제야 학교 안의 아이들이, 학교를 지배하는 시스템이, 학교 안의 교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진보 교육, 학습자 중심 교육을 읊조리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렴풋이 답답함의 근원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대학 시절, 일주일의 고단을 녹여내 주었던 건 무한도전이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던 구성원들의 행동이 연출된 것이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흔쾌히 웃었다. 그 잔인함이 학교에, 교실에서 아이들이 연출이 아닌 실제의 삶에 투영되어 가는 것을 보며 씁쓸해하던 기억이 난다. “얘들아, 저건 연출이야. 쟤네가 카메라 밖에선 얼마나 돈독한지 알아?” 하며 함께 잘 사는 삶을 말로 내뱉는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린 교실의 공기를 느꼈다. 지루하게 박제되어 버린 말은 교과서 안에 갇혀버린 글자처럼 책장에 갇혀서 더 단단하게 굳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삶과 멀어지는 배움, 지금 우리의 배움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이들도 사라지고, 교사도 소멸되어 가는 공간에서 배움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무 멀리 와 버려 닿을 듯 닿지 않는 배움 앞에서 무엇을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은 가까이 닿을 수 있는 배움이 무엇인지, 배움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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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스콜라 창작 그림책 38
허정윤 지음, 이명애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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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몸은 힘들고, 삶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고. 

'지각'이라는 말에 까짓 늦으면 어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늦어도 괜찮다고 하는 말이겠지 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체에 나도 모르게 책을 펼치고 있었다. 

길이 막혀서? 아파서? 혹은 무언가 피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표지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이야기 속에 

작은 생명체 하나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작은 생명체는 위태롭게 자기 길을 간다. 

멈칫 멈칫 돕기를 위한 눈짓은 있지만, 쉽게 나서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 

그리고 잠시 멈춰 선, 누군가의 손길. 

그래, 우리는 서로 이렇게 도우며 살고 있는 거지 싶었다. 

늦어도 늦지 않았다. 

어느 엄마가 강아지 산책을 시키기 위해 딸을 내 보냈더니 비가 왔다고 한다.

어쩌나 하며 밖을 내다 보다 엄마가 본 풍경 

딸 아이가 강아지의 야외 배변봉투를 머리에 쓰고 있고, 강아지는 아이의 가방에 있었다. 

강아지를 위하는 아이의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삶의 무게는 사소한 따뜻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작은 생명체를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잠깐의 멈춤. 

그런 것이 필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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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 고슴도치의 적당한 거리 찾기 필로니모 2
알리스 브리에르아케 지음, 올리비에 필리포노 그림, 박재연 옮김 / 노란상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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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브리에르아케 #올리비에필리포노 #박재연 #필로니모2쇼펜하우어 #고슴도치의적당한거리찾기 #노란상상

 

어릴 때 사촌이 집이 온다고 하면 설레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사촌이 오면 신나게 놀며 잠을 잊기도 일쑤지만 각자 살아온 생활이 달라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그러다 집에 간다고 하면 아쉬워서 눈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방울을 감추느라 일부러 햇빛 가득한 곳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기도 했다.

 

뾰족한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는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가까이 간다. 그러나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가 된다. 다시 모인다, 다시 흩어진다. 적당한 거리는 한 번에 찾아지지 않는다.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책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예의라 말했지만, 서로를 지켜주는 삶의 지혜라 생각한다. 이 지혜는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는 모두가 다른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곧 삶의 경험을 통해 완숙해져가는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수많은 타자와의 만남 안에서 자신의 적당한 거리를 찾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 사실 고슴도치를 만져보면 가시가 뾰족하거나 따갑지 않다. 우툴두툴한 느낌이랄까? 고슴도치가 서로의 추위를 달래기 위해 안았다가 가시에 찔린다는 건, 고슴도치 입장에서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아낄 수 있는 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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