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만난 건 2018년 평화연수 기행에서였다. 여행지로만 기억되었던 아름다운 제주의 속살을 만난 날 하염없이 울었다. 비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된 날이었다. 무지가 만들어 낸 철없음을 반성하며 울고 또 울었다. 이유도 모른 채 삶을 마감해야 했던 많은 이들의 삶 앞에 역사를 잊지 않겠다고, 억울함을 알리고 이제라도 올바른 길을 찾아가야 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학생들 앞에서 4.3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월호, 이태원 사건, 채상병의 사건을 마주하며 학생들에게 슬픔과 비극이 아닌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세월호 이후 수많은 계기 교육을 통해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으니까. 


제주의 4.3은 해방 이후 외로운 섬 제주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정치적인 사건을 통해 국가의 역할에 대한 조명과 이해가 앞섰다면 ‘동백꽃, 울다’에서는 4.3을 겪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화센터에서 그림 그리기 수업을 통해 옛 기억을 그려내는 왕할망의 이야기는 색을 잃어버린 사람이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고, 옛 기억들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역사적 비극이자, 가족과 친구, 이웃을 잃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왕할망에게 그림을 권하는 손주와 왕할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손주는 어쩌면 너무나 빠른 세대의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삶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과거의 성찰 어딘가에서 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빼꼼 봉오리를 맺고 있다. 언젠가는 피어날, 또다시 언젠가는 지게 될 동백이 올바른 순간들을 만나게 되길 희망하는 동화. 동백꽃,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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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B의 은유 - 윤슬빛 소설집 꿈꾸는돌 38
윤슬빛 지음 / 돌베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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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승섭은 '장애의 역사'에서 살아가면서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회적 권력을 지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낯선 타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불편한 시선, 불편한 환경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우리'라는 말로 결집력이 강한 사회이다. '우리'에 소속될 때에는 몰랐던 이야기들은 '우리'의 틀을 벗어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배제의 힘이 작동한다.

윤슬빛 작가의 '플랜 B의 은유'는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섬세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사회적 편견과 개인들의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마냥 낙관적이지도 마냥 어둡지도 않게 그려내면서 한 존재로서 단단하게 살아갈 힘을 길러주고 있다.

어쩌면 개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는 소수자성을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존재로서의 귀중함을 알려주는 듯 하다.

인간의 존재함은 차이를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전체성에 익숙해있던 우리의 사회에서 차이는 차별의 다른 이름으로 발현된다. 인간의 존재함은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들을 고립되거나 차별로 느끼지 않도록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케 한다.

삶이라는 근본적인 의미와 존재로써 살아감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여자친구가 생긴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라고 말해 주려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나도 모르게 거르지 않은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야, 넌 내가 남자 좋아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냐?"

"헉, 설마 나냐?"

"너겠냐?"

.........

"네 맘이 중요하지 내 맘이 왜 중요한데." 하고 덧붙였다.

18쪽 플랜B의 은유 중

그 모든 계획들이 실패하더라도 일상은 또 다른 반짝이는 순간들로 채워진다는 것. 은유는 이미 오래 전에 그걸 배운 것 같았다.

29쪽

여기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아님 다른 곳으로 또 떠나거나, 다들 뭔가를 잊기 위해 떠나는 걸까?

어떤 건 잊고 어떤 건 잊지 않으려고 떠나는 게 아닐가? 다 잊어버리면 좀 슬프니까.



너는 무엇을 잊고 싶었어? 무엇을 잊지 않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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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날 메모리 도넛문고 9
민경혜 지음 / 다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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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인간이 살아갈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핍이 오래 지속되거나 극단적이면 몸과 마음은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만난 메모리에서 교복 입은 두 소녀의 묘한 눈빛의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수줍은 듯 주변을 살피는 단발의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한 온화함, 머리띠 소녀의 앙 다문 입과 부러운 듯 힘을 준 눈빛이 손을 통해 거울 속의 자신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체린과 아라는 어릴 때부터 친했지만 아빠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서로 달리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두 인물은 관계 맺는 다는 것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결국 오해와 상황으로 인해 멀어진 관계는 체린이 유명 연예인이 되면서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아라는 체린의 존재만으로도 힘겨워 하는 시간을 보내고, 체린은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허기 속에서 진정한 화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어른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아라의 엄마는 아라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만, 온전한 가족 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아라의 눈치를 보며 아라에게 해야할 말들을 하지 못한다. 수많은 사회적 압박 속에서 때에 맞는 말과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건 어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이름을 지워갈 때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계 생명체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이 만들어낸 외계 생명체는 어쩌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관계 맺음의 욕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4쪽

다만 한 선생은 최근 아라에게서 극심한 불안과 분노의 파동을 느꼈다. 한 선생이 직접 아라를 스캐닝해 문제점을 알아내고 해결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지만 지구인의 생활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었다. 한 선생은 고민 끝에 은경에게 아라의 상태를 에둘러 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지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차마 못 본척 눈감을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지구의 학생들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의 부몽조차도 자녀에게 무심한 경우가 많았다. 한 선생의 눈에는 이 어린 학생들이 늘 위태로워 보였다. - P14

한 번 떼굴떼굴 굴러간 버스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체린은 그 커다란 버스가 무서웠다. 그래서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그저 그럿게 자신의 앞에서 멈췄다가 또다시 돌아가는 커다란 버스 바퀴의 숫자를 세고 또 세었을 뿐이었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엄마가 자신을 찾았을 때 체린은 또다시 엄마가 잡아끄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할머니를 지워 버렸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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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녀 아틀리에 도넛문고 8
이재문 지음 / 다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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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아틀리에를 읽고

 

내가 저주의 마법을 부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아빠와 둘이 살고 있는 은서는 백반증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고 있다. 우연히 자신에게 불쾌함을 초래한 친구들이 곤경에 처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저주를 내리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된다.

학교 앞에서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마녀할머니가 아틀리에에 낙서한 범인을 찾으러 온 날 지각을 하여 선생님과 실랑이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마녀할머니의 심부름을 하게 된다.

은서는 저주를 풀기 위해 마녀 할머니의 제자가 되기로 한다. 마녀 수업을 한다지만, 어쩌면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삶을 존재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하람은 허언증이 있어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하람이 허언증을 갖게 된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일진 가까이 있으면 힘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형편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힘 있는 자에게 굴복하고 마는 모습을 보였다.

일진 일당이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세탁소를 부수러 가자고 했을 때에도,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세탁소임에도 일진 무리에서 쫓겨날까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일진의 무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하람을 놀리자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인식하게 된다. 그 뒤로 일진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틀리에를 찾아가며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아 간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들추어 내다.

서윤은 호기심이 강하고, 특별한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일진의 우두머리였던 도준은 서윤네 가족과 가까이 지내던 사이였다. 서윤과 도준도 가까이 지냈지만, 도준은 어느날부터 변해가기 시작했다. 도준은 부모의 기대를 일부러 저버리기 위해 엉망인 생활을 하고, 도준의 부모는 권력으로 도준의 잘못을 무마한다. 그런 도준을 꼼짝 못하게 하는 건 서윤이다. 서윤은 백반증으로 친구가 없는 은서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유전병이 있던 쌍둥이 오빠의 존재를 은서에게 들킨 뒤로 은서에게 한없이 냉랭하기만 하다. 서윤에게 오빠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서윤은 오빠의 병으로 인해 가족을 잃어간다. 가족과 어떤 교류도 이루지 못하는 서윤 또한 하루하루의 삶이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서윤이 도준 무리와 함께 있다가 아틀리에의 문고리를 잡았다가 피부병에 걸리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된 은서는 서윤을 돕고자 한다. 물론 마녀 할머니의 심부름이었지만, 은서는 서윤의 이름 모를 피부병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는 사이 은서, 하람, 서윤은 아틀리에에 모이게 된다. 아틀리에는 이들 셋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삶의 문제와 직면하게 한다. 자신감의 부족이든, 과시의 허세든, 감추고 싶은 비밀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든.

어쩌면 마녀 할머니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꿰뚫어보고 해결해주는 마법사가 아닐까.

민희 선생님은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존재다. 마음의 병을 지닌 아이들을 찾아 어리숙한 척 다가가 문제를 직면하도록 돕는다.

소설 속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민희 선생님이 발굴해 내는 아이들의 문제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어른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전학을 가게 된 도준은 제대로 된 어른의 우산없이 어디선가 비를 맞으며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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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자존감 연습 - 사랑받아 마땅한 나, 너, 우리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생각하는 청소년 24
그림책사랑교사모임 외 지음 / 맘에드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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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자존감 연습 


한국인이 갖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눈치’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는 눈치의 기준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타인의 시선을 향해 있는지를 향해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인, 특히 소속 집단의 동질성을 중시 생각하는 청소년 시기에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자존감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시선이나 타인의 시선을 잣대로 자신을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자존감 연습>은 자존감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자기 비하, 비교하기, 완벽주의, 괴롭히기, 뒷담화 등의 상황을 빗대어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감정과 자존감과의 관련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도록 돕고 있다. 나아가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을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구체적인 상황에 빗대고 있다. 

우리말 중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를 의미한다. 나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다움(美)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책 <나쁜 빵점>은 나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빵 아저씨는 ‘빵점!’이라는 말을 ‘빵답다’라는 말로 바꿔서 해석하고 각자 자신의 장점을 찾아보라고 격려(19쪽)한다. 나다움을 찾는 것은 결국 각자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결국 자존감의 핵심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주어도 자신이 받아들이고,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용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만 지나치게 얽매여 세상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억지로 맞추며 살아가(32쪽)지 않고 나다움의 발견을 통해 자신을 수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되짚고 있다. 아들러는 열등감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고 한다. 열등감을 통해 극복해야 할 것, 목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다름에 대해 주눅들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타인의 말에 휩싸여서는 안 되지만 타인에 대해 쉽게 말해서도 안 된다. 최근 벌어진 우리나라의 사건들은 언론에 의해 개인의 삶을 난도질하기에 이른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정도로 타인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소문 들었어?>에서는 소문은 먼저 슬그머니 다가오지만, 진실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찾을 수 없(65쪽)다고 말한다. 스스로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삼가야 하고, 또한 타인의 행동과 말을 평가하는 말이 진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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