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날 메모리 도넛문고 9
민경혜 지음 / 다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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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인간이 살아갈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핍이 오래 지속되거나 극단적이면 몸과 마음은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만난 메모리에서 교복 입은 두 소녀의 묘한 눈빛의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수줍은 듯 주변을 살피는 단발의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한 온화함, 머리띠 소녀의 앙 다문 입과 부러운 듯 힘을 준 눈빛이 손을 통해 거울 속의 자신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체린과 아라는 어릴 때부터 친했지만 아빠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서로 달리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두 인물은 관계 맺는 다는 것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결국 오해와 상황으로 인해 멀어진 관계는 체린이 유명 연예인이 되면서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아라는 체린의 존재만으로도 힘겨워 하는 시간을 보내고, 체린은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허기 속에서 진정한 화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어른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아라의 엄마는 아라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만, 온전한 가족 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아라의 눈치를 보며 아라에게 해야할 말들을 하지 못한다. 수많은 사회적 압박 속에서 때에 맞는 말과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건 어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이름을 지워갈 때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계 생명체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이 만들어낸 외계 생명체는 어쩌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관계 맺음의 욕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4쪽

다만 한 선생은 최근 아라에게서 극심한 불안과 분노의 파동을 느꼈다. 한 선생이 직접 아라를 스캐닝해 문제점을 알아내고 해결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지만 지구인의 생활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었다. 한 선생은 고민 끝에 은경에게 아라의 상태를 에둘러 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지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차마 못 본척 눈감을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지구의 학생들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의 부몽조차도 자녀에게 무심한 경우가 많았다. 한 선생의 눈에는 이 어린 학생들이 늘 위태로워 보였다. - P14

한 번 떼굴떼굴 굴러간 버스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체린은 그 커다란 버스가 무서웠다. 그래서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그저 그럿게 자신의 앞에서 멈췄다가 또다시 돌아가는 커다란 버스 바퀴의 숫자를 세고 또 세었을 뿐이었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엄마가 자신을 찾았을 때 체린은 또다시 엄마가 잡아끄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할머니를 지워 버렸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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