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가운 밤 ㅣ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세번째 만나는 시공사의 [세계문학의 숲] 차가운 밤... 루신, 라오서와 함께 중국3대 문호로 꼽힌다는 바진...
그런데 난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중국 3대 문호라 불리우는 작가중 한사람의 작품을 접하게 되는구나.. 중국작가의 책은 .. 거의 처음 읽는 것 같다.. 어릴적 중국 동화(이것도 세계 동화전집 비슷한 책을 통해 읽은 듯... ) 말고는.. 중학교때 꽤 인기를 끌었떤 "경요"의 소설조차도 중국이 아닌 대만 작가였던거 같구나... 일본작가들의 작품은 활발하게 소개되고, 알려져 있는것에 반해 중국작가는 많이 소개되고 있지 않은듯.. 아무래도 가깝지만 먼 나라이기 때문인가.. 아님 내가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건가? 이 작품은 어떤 사건이나, 갈등보다도 원시안이라는 인물의 심리가 주를 이루는데,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있어서 그런가.. 문체도 쉽고,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재미있게 잘 읽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의 침략이 있었던 시기 (1945년즈음 인가보다.. 책 말미에 일본의 항복이 나오는걸 보면..) 중국의 한 지식인 왕원쉬안의 삶.. 읽는 내내 주인공의 무기력함과 우유부단함에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것도 같아 안타까웠다.. 대학시절 이상적인 교육자를 꿈꾸었떤 왕원시안.. 그런 꿈을 함께 꾸고 나눌 동반자 수성과 결혼했으나,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는 어수선해지고, 자신의 꿈이 아니라 당장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리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 수성은.. 그녀 역시 고등교육까지 받았고, 원시안과 함께 미래를 꿈꾸었으나, 역시 생계때문에 은행에 다니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조차 힘든 현실.. 그리고 하루도 편할날 없는 어머니와 아내 수성의 갈등.. 그 가운데서 역시나 우유부단하게 방향을 잡지 못하는 원시안.. 회사에서조차도 그는 쫑선생외에는 이렇다하게 친분있는 사람도 없고.. 한마디로 빛이 없는 삶.. 그런 원시안에게 아내는 유일한 빛이자 삶의 의미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거리를 방황하는 원시안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경보가 울려 잠시 몸을 피해있다가 다시 거리로 나온 원시안.. 잠시 혼란속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잊어버린 듯... 그는.. 아내를 찾으러 나왔다.. 어제밤 말다툼 끝에 집을 나간 아내는 사람을 보내 자신의 물건을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다.. 돌아와줬으면 하는 마음과는 달리 차가운 몇마디로 답신을 보낸 원쉬안은 그렇게 또 아내를 찾아다닌다. 아내와의 갈등의 원인은 어머니.. 작품 끝까지 평행선을 긋는 어머니와 아내 수성의 갈등은.. 결코 풀리지 않은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 가운데서, 두 사람 중 한사람도 포기할 수 없는 원시안은 그렇게 괴로워만 하고 있다.. 오자를 교정하는 일을 하는 원시안의 회사 그리고 그에게는 무관심한 동료들.. 아들의 관심만을 바라는 어머니.. 집 보다는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내.. 어느곳도 원시안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렇게 내내 무기력한 주인공은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그런 원시안에 비해 아내 수성은 아직 젊고, 삶에 대한 열정이 있다. 자신에게 언제나 증오와 미움만 비치는 어머니와의 끝없는 갈등, 한때 함께 꿈을 꾸었지만, 지금은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남편.. 자신에게 별 관심도 없는 아들.. 그런 답답한 현실에서 생을 마감하기에 그녀는 아직 젊고, 열정이 있다. 그리고 회사와 천주임은.. 그런 그녀의 미래없는 삶에 손을 뻗어준다.. 그안에서 그녀는 고민하고, 갈등한다. 갈등하게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남편.. 그래도 한 때 같은 꿈을 꿨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배려하는 사람.. 그래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쉽게 버릴 수 없기에.. 그런 갈등을 안고있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라는 존재는 오히려 그녀가 선택하기 쉽게 만들어준다(이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며느리에 대한 미움과 증오만을 보인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외아들의 사랑에 대한 집착인지.. 아들은 꺼져가는데, 여전히 생기 발랄한 며느리에 대한 반감인지..)나는.. 이 작품에서 수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선택을 이해한다.. 달리 어떤 선택이 있을까.. 그냥 남아 있는다는 건.. 그녀에게 있어 삶에 대한 의미를 모두 내던지고 함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히고 마는 거니까.. 그만큼 왕원쉬안은.. 그와함께 하는 삶은.. 미래도 빛도 없는 굴레였다.. 병까지 얻고, 회사에서도 쫓겨난 원쉬안은 그녀를 보내준다.. 자신이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 듯... 그리고 계속 편지로 안부를 물으면서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함께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살아남는 그.. 그런 원쉬안에게 어느날 도착한 수성의 "이제 그만 나를 놓아달라"는 진심어린 편지.. 너무나 크나큰 충격에 거리를 헤매고, 술을 마시고, 울부짖어보지만, 그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녀를 붙잡을 염치조차도.. 아무렇지 않은듯 답장을 보내지만 그의 삶에 유일한 빛이 사라지고 그의 생명의 빛은 그때부터 급속도로 꺼져간다.. 그만 진실을 알리라는 어머니의 말에도 .. "나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요.." 라고 답하는 원쉬안.. 다시 복직하고 일을 하지만 몸은 점점 더 나빠지고.. 이렇다할 치료를 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는 서서히 죽음에 이른다.. 주변의 권유에도 괜찮다며 미련하게 버티는 원쉬안이 너무도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는 아내의 돈으로 병원을 가고, 돈을 쓰고.. 그러기엔 자신이 염치없다고 느끼는 듯.. 하지만 더 깊숙한 내면을 보자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수성에게 보내는 편지만은 어머니에게 부탁하지 않았던 원쉬안.. 끝까지 자신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았던 원쉬안.. 그는 고통스럽게.. 아들과 어머니곁에서 생을 마감한다..
두달동안이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수성은 어느날 집을 방문하고.. 이미 아래층 사람이 이사와서 살고 있던 자신의 예전 집에서 원쉬안의 죽음을 전해듣는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편지만 받았던 수성은 자신이 떠난 사실을 후회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사실을 다 받아들이지는 못한듯.. 남편이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어머니와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어떻게 내 하나뿐인 아들을 찾아야하나... 걱정을 하며 다시 거리로 나가는 그녀.. 일본이 항복하고 전쟁이 끝난지 두달이 지났지만, 거리도 사람들의 삶도 아무런 변화는 없다..
읽는내내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원쉬안이 너무 답답했다.. 왜 좀더 살려고 하지 않았을까.. 지식인이라는 굴레가 더욱 그의 삶을 움츠러들게 한건 아닐까..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에서 원쉬안이 다른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선택이란게 존재하긴 한걸까.. 책을 덮고 나니 한사람의 허무한 삶에, 그럴수 밖에 없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한번이라도 마음 굳게 먹지 못하고, 그냥 꺼져버린 젊은 인생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