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
가오리.유카리 지음, 박선형 옮김, 하라다 스스무 감수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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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

 

 

 

 

 

 

 

 

저자 가오리, 유카리 그리고 하라다 스스무

치바현에 살고 있는 쌍둥이 자매 작가로 도시샤 여자대학 졸업 후 함께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쌍둥이 자매의 따듯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를 다룬 만화와 에세이를 다수 집필했고,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자는 신조로 전문적인 주제를 글과 그림으로 쉽게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문화의 차이에 관심이 많아 지속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저서도 다수 출간했다. 주요 저서로는 [쌍둥이 가포와 유포] [쏙 빼닮은 쌍둥이] [어! 한국에서는 그런가요?] 등이 있다.

 

 

 

 

 

 

 

 

 

 

 

 

 

 

 

 

 

“가능하면 훌륭하게 하고 싶다, 가능하면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 가능하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일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한없이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
p. 227

 

 

 

개강 3주 차에 접어들면서 나는 자기 비관에 빠져버렸다.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욕을 먹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는데 지난 3주간 그 악몽에 시달린 것 같다. 나는 왜 일을 잘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항상 실수하는 걸까 하며 그에 따른 타인의 시선을 상상하고 내 멋대로 해석했었다. 물론 그중 정말 악의가 담긴 시선이 나에게 닿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생각해보면 그 시선이 어떻든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은 항상 완벽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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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어’ 정말 많이 되뇌던 말이다. 친구에게도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다.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타인과 관계하며 살아가야 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내가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책 중간중간에는 귀여운 삽화가 그려져있고 우리가 마음을 정리할 때 필요한 방법이 도식화로 표현되어있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예시와 철학가, 심리학자들의 말들로 여느 에세이들과 달리 구체적으로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정말 좋은 의사를 만난 기분. 물론 나의 상처가 다시 곪아 터지고 또 나는 같은 반복을 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 나온 대처법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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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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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사과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단편 「영이」로 제8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02』 『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가난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과 완전히 섞여서도 안 되지만 완전히 격리되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멀리서,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쌍방 간의 두려움이 유지되며, 살얼음 같은 평화가 지속될 수 있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준의 두려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그것은 통제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자 가장 까다로운 예술이다.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느껴질 때, 두려움의 대상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용감해진다. 무엇이든 하기 시작하고, 그것은 야만의 시작이다. 인간들이 통제에서 벗어나 균형을 파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악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것은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은다. 악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정회장의 독특한 사명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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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9, 50






위의 부분을 통해 이 책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균형’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 균형이 삶의 균형이든 정신의 균형이든 거기서 살짝 벗어난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균형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있다고 느꼈다. 여기에는 제각기의 삶을 사는 주인공들이 있는데 크게 나눠보면 서민층과 부유층이다. 신기한건 책에서 분명 모든 주인공의 삶과 생각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보여주는데 왠지 모르게 부유층의 삶은 안개속에 있는 것 같이 뿌옇게 보이고 잘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서민층을 연기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삶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기분으로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장까지 읽고 다시 돌아와 첫장부터 읽어보았는데 전혀 새로운 책, 새로운 주인공을 읽는 것 같았다. 목차는 이야기의 시작, 1부, 2부, 3부, 악몽의 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느 책과 같이 3부부터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내용은 굉장한 충격을 가져온다. 악몽의 끝을 읽고 나서 아 이게 악몽이구나 악몽이 끝났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이게 악몽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심지어 이 책이 현실보다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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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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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 엘란 마스타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났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다. 이 책은 그의 첫 번째 소설로 201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최고의 화제가 되었으며, 현재 파라마운트사에서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영화 <왓 이프(What If)>의 시나리오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토론토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살 뻔한 세상에서 왔다.

오늘날, 바로 서기 2016년에 인간은 풍요롭고 목적이 분명하며 놀라움으로 가득한 첨단 기술 유토피아 파라다이스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만 빼고.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뭐, 아이폰과 3D프린터가 있고, 드론인가 뭔가 하는 것에 놀라는 세계에 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주 가족 젯슨>에 나오는 이야기랑은 아주 딴판이지 않나. 원래는 그랬어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이 아니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의 시작 부분은 이렇다. 시간 여행이나 평행 세계를 소재로 삼은 다른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자신으로 인해 모든게 실패로 돌아갔음을 말하고 있고 그 실패의 현장은 거의 책의 절반에 다다르고 나서야 마주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어떻게 실패한건지, 과연 되돌릴 수 있을 것인지를 궁금해하게 되고 책은 마치 내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예상을 벗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또한 아주 정밀하게 묘사되는 시간여행 장치와 기술, 원리들은 그것들이 정말로 이 세계 어딘가 또는 평행 세계에서 실존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중 하나를 짧게 요약해보았다. 이 부분에서 최근에 봤던 '양자 역학'이 다뤄진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가 생각나기도 하고 엄청난 스케일의 SF 영화 한 편을 보고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발명한 시간 여행의 원리 :
신체의 해체와 재생 메커니즘


 1. 사실 지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하루 앞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해도 같은 장소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원래 시간으로 되돌아오는 것만이 아니라 원래 위치까지 아주 세밀하게 지정해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에 끼거나 갇혀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2. 아버지의 아이디어는 최초의 엔진인 구트라이더 엔진에서 나온 타우 방사선 신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방사선의 흔적을 따라간다면, 이 세상을 영원히 뒤바꿔놓았던 순간과 공간인 라이오넬 구트라이더의 연구실로 누군가를 시간여행을 보낼 수 있는것이다.


 3. 또한 시간 여행을 갔을 때 물체 사이를 몸이 뚫고 지나갈 수 있고, 물체가 몸을 뚫고 지나갈 수도 있게 해주는 디퓨전 구체라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과거로 떠난 시간 여행자들은 비물질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4. 비물질 필드는 최대 14분간 지속되는데 그 이상 넘어가면 몸이 분해되어 사망한다. 디퓨전 구체는 실험자의 유전자 순서를 코드화했고 7천자의 원자를 흩은 다음 시공간 너머로 쐈다가 다시 완벽한 순서대로 재조합한다.







페니 : 그렇군요.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는 게, 사실은 누군가가 다른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빌린 거라면 어떨까요? 어쩌면 모든 아이디어가 알고 보면 우리가 모르게 표절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 아이디어들이 뭔가 은밀하고 입증할 수 없는 현실의 틈바구니를 통해서 우리에게 온 것 아닐까요?

톰 : 그렇다면 다른 현실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다른 나 역시 또 다른 세 번째 현실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세 번째 나에게서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는 말인가요?

페니 : 모르겠어요. 그냥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인접한 세계의 수는 제한 되어 있을 수도 있죠. 그래서 우리 세계 말고 또 다른 여러 버전의 세계에서 우리는 항상 아이디어를 슬쩍하고는 우리가 생각해 낸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요.

톰 : 그중 어떤 세계는 다른 세계보다 훨씬 수준 높은 아이디어를 가진 우수한 세계라 해도 말이지요. 재수 없게 굴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살던 세계는 지금 이 세계에서 배울 만한 게 별로 없어요.

페니 :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게 다 인간이 한 거라고 너무 크게 추켜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어쩌면 굉장한 지성을 지닌 외계 생명체가 우리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로 발전할 개념을 심어놓은 다음, 다른 차원으로 떨어진 인간들이 이 벽을 어떻게든 뚫고 통과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어떤 아이디어들은 서로 주고받을 수 있지만, 또 어떤 아이디어들은 나눌 수가 없어서 원래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거라면요. 그래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어디든 자유로이 이동하고 그 누구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일지도요.

p. 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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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토피아 -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성차별과 섹스 파티를 폭로하다
에밀리 창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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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OPIA는 브로 문화 Bro culture와 유토피아 Utopia의 합성이다. 브로 문화는 테크놀로지 산업과 실리콘밸리를 특정짓는 표현으로, 남성 우월주의와 남성 중심 문화를 가리킨다.






전 세계 공학도들은 실리콘 밸리의 유토피아적인 일상을 꿈꾼다. 하지만 실상은 여성에게 '브로토피아'라는 모습으로 다가간다. 그곳은 여성 혐오 문화가 만연하고, 구조적으로 이들을 압박하고 무시한다. 이 책은 왜 기술 산업계 회사들이 브로 문화에 휩싸여 있는지 그 뿌리부터 접근한다. 저자는 그곳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 통계 자료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성추행, 성차별, 섹스파티가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는지 폭로하고 있다.





저자 에밀리 창

<블룸버그 테크놀로지>와 <블룸버그 스튜디오 1.0>의 앵커이자 총괄 제작자로서 기술 기업과 미디어 기업들의 고위 경영자, 투자자, 기업가 등과 정기적으로 대담을 나눈다. 창은 CNN의 베이징과 런던 특파원을 역임했고 기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지역 에미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했다. 현재 창은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한다.







"컴퓨터 사업은 반사회적이고 수학적 성향이 강한 남성들을 의도적으로 채용했고, 그리하여 반사회적이고 수학적 성향이 강한 남성들이 프로그래머 세상을 접수했다"고 엔스멩어가 저서에서 밝혔다.



이렇게 사회에 만연해진 '컴퓨터 너드' 정형은 위의 사진 속 내용과 같이 남성에게만 허락된 정형이었고, 53쪽에 있는 "반사회적인 남성들이 수학이나 컴퓨터를 더 잘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통해 그것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진, 정말 바보 같은 정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IT 업계는 '좋은 엔지니어가 될 만한 인재'에 여성이 남성만큼 많이 채용될 수 없는 이유를 '파이프라인 문제'라고 변명하고 있는데, (IT 기술 보유한 여성 대학 졸업자가 충분하지 않아 인력 공급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 파이프를 누가 만들었는가? 기술 산업이 '너드 정형'을 만들어 너드들만 선별했고 수십 년 뒤에 지위를 가진 그들은 자신만만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브로들을 직접 간택했다. 이들은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엔지니어, 아니 컴퓨터 세상에서 철저히 배제시키고 고립시킨 것이다.






 

 

위 내용은 책의 시작 부분 CHAPTER1 너드부터 브로까지 : 기술은 어떻게 여성들을 배척했을까? 의 일부 부분만을 가지고 온 것으로이 뒤로 저자가 더 상세하고 많은 내용을 풀어가고 있으니 책을 사서 뒷부분을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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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 - 상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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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下 편 마지막 장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편집자가 수차례 바뀌며 30부작이던 드라마를 28부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놓치고 만 감정, 뒤틀린 연결……. 그러나 이 모든 아쉬움을 소설을 집필하며 잊을 수 있었습니다. 삭제된 감정선과 중요한 연결고리까지 소설 속에서 되살려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소설 ≪사임당, 빛의 일기≫는 제게 숨구멍과도 같은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라고 이 책을 설명했다.

 그렇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로서, 책을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은 드라마가 놓친 부분들을 메꿔준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시대와 현대 시점을 개연성 없이 오갔던 드라마 연출로 인해 정신없이 보았던 사건 발생과 추리들을 책으로 다시 접하니 나의 페이스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고 해석해나갈 수 있었다. 또한 인물들의 대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인물의 감정선, 독백들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더욱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고전적인 연출 이외에도 역사왜곡, 판타지, 불륜 등의 수많은 논란을 낳은 작품이지만 책으로 다시 읽으면서 이 이야기는 논픽션이 아닌 픽션, 즉 역사 속 인물에 새로운 스토리를 재구성해 만든, 지금 시중에 팔리고 있는 수많은 역사 판타지 책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이 포스팅을 읽는 사람들 중에 ≪사임당 빛의 일기≫를 중도 하차하거나 논란으로 인해 아예 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책으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는 중이라면 끝까지 읽고 나서 꼭 다시 上 편으로 돌아와 序章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모든 스토리를 알고 읽는 나의 마음과 모르고 읽었던 나의 마음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똑같은 나뭇잎이라도 봄의 연녹색과 여름의 진녹색, 가을의 단풍이 다 다릅니다. 햇살에 따라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빛을 품는 것이지요. 그 모든 걸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저만의 느낌으로 그려내고 싶습니다! 왜 여인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이리도 많단 말입니까!"

삶이 참 어렵다. 매 순간이 풀어야 할 문제 같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기에 버틴다.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딸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안정을 되찾는다. 눈물을 그치고 기와집 담장에 피어 있는 분홍빛 패랭이를 보며 웃어본다. 북평촌에서 보던 꽃을 낯선 땅에서 보니 더욱 반가운 것이다.

이 모든 참담한 현실이 광화문 거리를 걷는 지윤의 발목을 붙들었다.
지윤은 사임당 일기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어쨌든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삶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므로.

"부끄럽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는, 제가 선택한 삶을 온전히 책임지며 살고 있으니까요!
비가 새는 누옥에, 계집종 하나 겨우 거느리고, 물기 마를 새 없이 온갖 집안일을 직접 하고 살아도,
비겁하지는 않으니까요!
제가 선택한 삶을 당당하게 책임지고 있으니까요!
최소한 공처럼 삶을 낭비하며 허송세월하고 있진 않습니다!"

은수가 천진하게 웃으며 지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지윤은 사랑스런 아들을 품에 꼭 껴안았다. 문득 이겸이 보았다는 그 따스한 장면이 떠올랐다. 자식들을 품에 안고 재우는 사임당의 모습과 새끼 강아지들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 개의 모습.
그것은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모견도의 탄생 비화였다.

"두 개의 눈, 두 개의 날개가 합쳐져야 날 수 있다는 전설의 새, 비익조 말입니다. 이는, 재주는 있으나 형편이 어려워 그 뜻을 펼칠 길이 없는 예인에게 눈과 날개를 달아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재주 있는 예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반상의 차별, 성별의 차별 없이 비익당을 개방할 것입니다."

"자, 이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아라. 여기 이 풀벌레조차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벌레도 꽃도 풀도 바람도 그리고 시냇물조차도.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듯하나, 그렇지 않아. 이제부터 너희가 채워갈 세상을 생각하면, 이 어미는 벌써부터 가슴이 뛴단다."
사임당은 사랑스런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삶이 아름다워지고 추해지는 것은,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희망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임당은 부디 자신의 아이들이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길 원한다.

먹물을 끼얹은 듯 까맣기만 하던 세상에 실낱같은 빛이 드리운다. 동이 터오고 있는 것이다. 겨울잠을 자느라 앙상해진 숲이 시나브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염료로도 표현될 수 없는 신비한 빛이 한양을 끼고 도는 한강 위로 넘실거린다. 사임당은 무연한 눈길로 절벽 너머 한양을 바라본다. 저곳에 삶이 있다. 고비마다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살아내는 그런 삶, 울고 웃으며 주어진 한 생을 꾸역꾸역 버티어내는 삶,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아등바등 살아내는 그런 삶이 저곳에 있다. 그리고 지금, 한 줄기 빛이 삶을 깨우고 있다. 사임당을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 빛이 드리운 삶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달과 별만이 빛을 발하던 겨울 숲길 양옆으로 환한 지등이 꽃처럼 피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등이 밝혀진 길고 긴 길에는 매끈하고 하얀 조약돌이 고르게 깔려 있다. 꿈을 꾸는 것인가.

"관직이 있고 없고가 그리 중요합니까? 전국시대 사상가이며 병법가인 묵자墨子도 평생 관직에 오르지 않았으나 약자에 대한 한없는 동정으로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었고, 대시인 도연명陶淵明 또한 평생을 주유周遊하여 훌륭한 시와 글로써 후세에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종이를 만드는 일입니다. 종이는 아이들 공부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구이고요. 그것을 만드는 일이 어찌 부끄럽단 말입니까? 여러분이 좔좔 외우라 독려해대는 ≪사서삼경≫도, 종이가 없다면 어찌 읽을 수 있겠는지요?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가 대나무에 글씨를 새긴 죽간竹簡이라도 들고 다니라는 겁니까?"

"행색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지난 시화전엔 무명옷 차림이었고 오늘은 비단옷을 입었습니다. 하나, 저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함이 없지요! 박꽃은 그 행색은 초라하나 한 덩이의 박으로 많은 식구들을 먹이기에 충분하고, 연꽃은 비록 화려하나, 그 열매는 대추나 밤만 못한 법입니다!"

"운평사 고려지를 꼭 재현하시오. 그리하여 이 종이에 그대의 그림을 그리시오! 나는 조정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릴 것이오.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열심히 일한 백성이 수고를 인정받고, 굶주리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바른 세상을 만들 것이오. 그러자면 그대가 꼭 성공해야 하오. 제대로 된 고려지를 만들어, 내가 그려갈 그림의 토대를 만들어주시오!"

"어찌 그런 말을 해……. 대장간 일이 얼마나 중한데. 대장장이가 없다면 농사에 필요한 괭이며 호미를 누가 만들어줄 것이냐? 이 세상에는 선비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농민도 어부도 대장장이도 다 필요하다. 그들 모두가 어우러져야 제대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다."
"그렇군요."
아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이 어미도, 아비도, 상감마마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제 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그 작은 점들은 선이 되어 미래의 너와 이어질 거다. 그러니 매 순간, 네 앞에 놓인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지치지 말고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너 자신을 믿어라. 알겠느냐?"
"어머니……."

매창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그 모습에 사임당의 가슴이 무너진다. 맑은 눈을 가지라 가르쳤다. 눈이 탁해지면 세상을 맑게 볼 수 없다 일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되, 정체되지 않도록, 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한다 말했다. 해서 어떠한 편견도 없이 세상을 바라보라 했다. 그렇게 가르쳐왔다. 하지만 세상이 탁하고, 세상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은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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