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 세계 명시 필사책
김옥림 지음 / 정민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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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도서제공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시집이면서 동시에 필사 노트에 가깝다. 김옥림이 엮은 이 책은 윤동주, 신경림, 릴케, 예이츠 등 한국과 해외의 시인들 가운데 ‘말’에 오래 남는 시들을 선별해 한 권에 담았다. 표지에 적힌 ‘세계 명시 필사책’이라는 설명처럼, 이 책의 핵심은 읽는 데 있지 않고 쓰는 데 있다. 시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문장을 손으로 옮기며 시와 같은 속도로 호흡하게 만든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친절한 해설이나 감상 가이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독자에게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대신 충분한 여백을 남겨둔다. 그 여백은 생각을 채우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문장만 따라 써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은 집중이 잘 되는 날보다, 오히려 마음이 흐트러진 날 더 잘 맞는다.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고, 감동을 느끼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말을 천천히 쓰는 행위’ 자체다.

필사를 하다 보면, 같은 시라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눈으로만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갔던 단어들이 손끝에서 자주 멈춘다. 어떤 문장은 유독 오래 걸리고, 어떤 문장은 쉽게 써 내려간다. 그 차이에서 지금의 내 상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책이 말하는 ‘연습’이란,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한 말의 연습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선정된 시들 역시 감정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위로나 다짐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문장들이 많다. 그래서 한 편 한 편이 짧지만 가볍지 않고, 필사를 마친 뒤에도 문장이 오래 남는다. 하루에 한 편씩, 혹은 몇 줄만 써도 충분한 책이라 부담 없이 곁에 두기 좋다.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독서 경험을, 시가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에게는 가장 낮은 문턱의 입구를 마련해준다. 말을 쉽게 쓰고 쉽게 소비하는 시대에, 이 책은 말을 다시 아껴 쓰게 만든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필사를 마치고 나면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어떤 말이 남았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위로의 책이라기보다, 말과 마음을 다듬는 책에 가깝다.

* 이 리뷰는 리뷰의 숲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대에게줄말은연습이필요하다 #정민미디어 #시집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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