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 창작은 삶의 격랑에 맞서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마이클 페피엇 지음, 정미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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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는 말은 자주 신화화된다. 우리는 그들을 신비화하거나 위인화하며, 천재성이나 광기 같은 극단적인 요소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은 훨씬 더 유기적이고, 균열과 반복, 모순과 유예로 구성되어 있다. 마이클 페피엇의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원제: Artists’ Lives)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예술가의 신화를 걷어내는 동시에, 그들이 예술 안에서 어떻게 자신을 구축하고 분해했는지를 세심하게 추적한 기록이다.

페피엇은 단순한 전기 작가가 아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유럽 현대미술의 현장을 통과하며, 직접 보고 듣고 질문하고 메모한 이력은 하나의 사료이자, 비평이다. 특히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오랜 우정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관찰은, 기존 베이컨 평전에서 포착하지 못한 미세한 흔들림까지 담고 있다. 베이컨의 자기 파괴적 습관이나, 반복되는 이미지의 강박적 재현이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어떻게 회화적 언어로 번역되었는지를 페피엇은 삶과 작품을 가로지르며 풀어낸다.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27인의 예술가를 다룬다. 구성은 단상과 회고, 인터뷰가 혼합된 복합적 서술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각 예술가에 대해 일정한 분석 틀을 고집하지 않고, 그 인물에게 맞는 형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코메티 장에서는 조형의 실패와 반복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지고, 앙리 미쇼 편에서는 언어 실험과 환각의 체험이 중심이 된다. 그만큼 페피엇은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따라 언어의 톤과 밀도를 조율할 줄 아는, 유연한 기술자다.

텍스트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거리의 감각’이다. 페피엇은 언제나 예술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너무 가까워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그 거리감 덕분에 그는 예술가를 단순한 인물로 환원시키지 않으며, 동시에 그들의 인간적 조건을 놓치지도 않는다. 그는 고흐를 단순히 불행한 천재로 보지 않고, 감각의 예민함과 그것이 그린 선의 밀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이컨의 회화 속 폭력성 역시 사적인 파괴 충동 이상의 구조적 탐색으로 읽어낸다.

이 책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하나의 ‘아카이브’로 읽힌다. 회고록이면서도 구술사적 성격을 띠며, 개인적 기억과 미술사적 맥락이 교차한다. 페피엇이 인터뷰한 장면들, 스튜디오에 앉아 있던 온도와 대화의 리듬까지도 독자에게는 하나의 사료로 작용한다.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예술이 태어나는 환경의 감각들—빛, 침묵, 냄새, 말의 박자 같은 것들—이 이 책에서는 살아 숨 쉰다.

페피엇이 다룬 예술가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낸 사람들”이다. 단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예술로 옮기는 방식으로 존재를 지속해온 이들이다. 예술은 그들에게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종종 실패이며, 때로는 그 실패를 견디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페피엇은 이들의 곁에서 그 과정을 함께 목격한, 드물게 절제된 시선의 기록자였다.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예술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예술가로 존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각기 다른 층위에서 작용하는 책이다. 그것은 예술가를 ‘기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들이 어떻게 흔들렸고, 주저했고, 그러나 끝내 붓을 들었는지를 말한다. 한 사람이 평생을 걸쳐 예술가를 관찰하고, 묻고, 기록한 이 서사는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는 예술가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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