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내게 한결같이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그 시대의 천재 이가환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단지 반대당파에 속한다는 이유로 천재를 죽이지는 않는가?"
이승훈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몰지는 않는가?"
정조는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나처럼 부친을 죽인 적당賊黨과 타협하며 미래를 지향했던 정치가가 있는가?"
정약전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민중과 자연에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정약용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들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일부러 며칠씩 그런 질문을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며칠은 더욱 괴로웠다. 그들의질문을 외면하는 것은 도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그들과 대면해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는 이들과 대면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그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 이 시대는 정약용과 그 형제들이 살아갔던 시대와 만남으로써 새로운 문을 항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기때문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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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p.83)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 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끝내 화만 남은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필요했다. 나는 이웃들을 좋아할 수 없었지만 차마 미워할 수도 없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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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나도 바보들이야, 빅토리아 거리를건너며 그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늘만이 아시기 때문이지,
왜 우리가 삶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왜 삶을 그렇게 보는지, 구성하고, 하나를 중심으로 쌓아 올리고, 무너뜨리고 그리고 매순간새롭게 삶을 창조하는지 말이야. 하지만 더할 수 없이 가장 초라한 여인네도, 비참한 이들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자들도 문간에주저 앉아서 (파멸을 축하하여 마시며) 똑같이 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의회빕으로도 다룰 수가 없는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들도 삶을 사랑했다. 사람들의 눈 속에, 그네 속에, 터벅터벅걷는 무거운 발걸음, 포효하는 소리와 소란함 속에, 마차들, 자동차들, 버스들, 화물차들, 휘적휘적 흔들며 지나가는 샌드위치맨들, 취주 악대들, 손잡이를 돌리는 휴대용 풍금들, 승리의 기쁨, 짤랑짤랑 울리는 소리, 머리 위에서 어떤 비행기가 내는 이상하게높은 소리들 속에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있다. 삶이, 런던이, 유월의 이 순간이 말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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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포클레인이 밀어버릴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현재는 비교 대상이 필요했다. 마포의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다녀온 날, 나는 가난했다. 원룸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난곡의 쪽방을 목도한 날,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 P58

계층도, 세대도, 삶의 궤적도 다른 다양한 여성들을 지배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불안‘일 것이다.
- P63

나는 보는 사람, 보면서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이 두려움과 무력감을 부끄러워하는 사람,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들의일이 ‘나‘의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그 바람이 부끄러워서 다시 보호막 안에 숨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보고 싶은 사람, 텔레비전을 부숴버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두 마음을 오락가락하며 글을 썼다. 스스로를 고립한 채 작은방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히키코모리에 관한 단편소설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 여섯 달째였다.
- P64

2년 뒤인 2006년 봄 내가 그 소설로 등단했을 때,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정남규가 검거되었다. 열세 명이 사망하고 스무 명이 중상을 입은 뒤였다. 왜 서남부 지역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강남구 등 부유층이 사는 동네엔 CCTV가 너무 많아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습니다. 살인을 쉽게 하기 위해 방범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 서민이나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범행 장소로 삼았습니다. 여름에는 김선일 씨를 살해한 알 자르카위가 미군에게 사살되었다. 가을에는 난곡 뉴타운에 입주가 시작되었다. 대기업 브랜드의 로고가선명한 아파트에는 입주민을 환영합니다‘ 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럭였고 구청장은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를 했다. "달동네와 판자촌은 잊어주십시오. 이제 난곡은 청정한 자연환경을 가진 살기 좋은 신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텔레비전을 처분하고 원룸을 떠났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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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태일 평전』(아름다운 전태일, 2011)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시위 도중 분신 자살한 전태일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책이다. 이 평전은 그의 어린 시절과 각박한 현실에 눈뜨게 한 평화시장의 재단사 시절을 통해 전태일이 노동운동을 시작한 이유와 그의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또 그가 분신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다루며 노동운동에 헌신한 그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 평전은 이후 노동단체, 농민단체는 물론 지식인, 종교인, 해외에서까지 노동운동 역사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한다.

이 책이 집필될 당시 국내는 엄혹한 유신독재 체제 시절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전태일 평전은 78년 11월 ‘불이여, 나를 감싸안아라-어느 한국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판으로 최초 출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83년 6월에 출판사 돌베개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저자는‘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 엮음’이었다. 그러나 평전의 저자는 따로 있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는 이 평전의 저자를 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 글을 쓴 사람은 유신독재가 찾고 있는 지명수배자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변호사 조영래다.

조영래는 코리아헤럴드 기자를 하다 돌연 법대 대학원에 입학한다. 70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전태일 분신 사건을 접한 뒤 서울대 법대 교정에서 추도 시위를 주도한다. 그는 이후 전태일 유족과 평화시장 노동자, 장기표, 시민사회단체 등과 접촉을 넓혀갔다. 저자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되었을 당시 장기표로부터 전태일이 쓴 수기를 넘겨받아 전태일 평전을 썼다. 전태일의 수기를 보관해 온 어머니는 조영래에 대해 ‘언제나 온화한 마음과 말씨로 함께 있는 사람을 더 없이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회상한다. 조영래는 ‘많이 배우고, 지식도 많고, 머리도 남달리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는 언제나 약한 자, 억눌린 자 편에 서는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자기 이름으로 출판 예정이었던 개정판이 나오기 전 세상을 떠났다.

전태일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었다. 그의 비참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사회에 악의를 품을 만도 한데, 구두닦이, 신문팔이와 같은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인간해방과 사회개혁의 높은 이상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그 험난한 생활에서 비롯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비롯된 사회개혁의 높은 꿈과 사명감 때문’(p.38)이었다. 특히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의 삶은 그를 각성하게 했다. 어린 여공들은 14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을 위해 약을 먹어야 했고, 열악한 작업 현장은 그녀들이 피를 토하며 죽게 했다. 2년이 넘도록 그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어린 여공들의 참상을 접하면서 안타까움과 울분 속에 살아왔다. 이 고통의 기간을 거쳐 눈앞에 보이는 불의한 기업주의 횡포를 명료하게 목격했을 때, ‘그는 가족들에게 돈 몇 푼을 다달이 더 보태려고 고분고분 죽어지내는 것보다는 이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여 무언가 싸움에 나가는 것이 올바른 길’(p.110)이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은 ‘바보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했지만, 기업주들만이 아니라 근로감독관, 노동청, 아니 그 이상까지도 상대로 하여 싸워야 하는 현실을 깨닫는다.

전태일의 투쟁은 외로웠다. 그가 아무리 싸워도 세상은 그를 무시했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개인사를 아는 사람들은 강원도 어떤 탄광에서 갱도가 매몰되어 죽었다는 것은 모른다. 그가 사는 세상에서는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노동자들의 참상에 대해 대중은 무관심하고 무기력했다. 그는 생명을 건 투쟁이 아니고는 이 철벽을 돌파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한다. 사실상 그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에 의해 강요된 것’(p.291)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그는 평화시장에서 불꽃으로 사라진다.

전태일의 삶은 우리 노동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은 시대가 변했음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탄할 것이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회구조와 언제나 강자 편에 있는 언론과 기관들은 전태일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에나 존재한다. 택배기사가 과로사하고, 김용균 씨가 석탄 운반 시설 점검 중 죽고, 실업계고 현장 실습생이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에 시달린다. 전태일의 노동운동은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만큼 절실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투쟁이었다. 그의 죽음과 이 평전은 우리 현실이 바뀐다 해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산물이다.

조영래는 생전에 “전태일 평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 써졌다고 생각하네. 첫째는 지식인의 관점에서 써진 것이고, 두 번째는 본의 아니게 죽음을 미화한 게 아닌가 생각하네. 그래서 지식인이 아닌 노동자가 다시 썼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하네”라고 말했다. 저자는 ‘평소에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연이어졌던 이 땅의 숱한 죽음들을 보면서 행여 이 책이 그러한 죽음들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나 자책하는 말을 되뇌이곤 했다고 한다. 저자와 전태일의 투쟁이 닮아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사람이든 비참하지 않게 살고, ‘헛되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 덕에 ‘노동’이라는 말을 자유롭게 들먹일 수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다.

1) 2) 이소선 평전 <어머니이 길> 93화 '전태일 평전> 저자, 그는 출간된 책을 볼 수 없었다.' (민종덕, 오마이뉴스)

3) http://www.chuntaeil.org 「개정판을 내면서」 (전태일 재단,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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