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포클레인이 밀어버릴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현재는 비교 대상이 필요했다. 마포의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다녀온 날, 나는 가난했다. 원룸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난곡의 쪽방을 목도한 날,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 P58

계층도, 세대도, 삶의 궤적도 다른 다양한 여성들을 지배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불안‘일 것이다.
- P63

나는 보는 사람, 보면서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이 두려움과 무력감을 부끄러워하는 사람,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들의일이 ‘나‘의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그 바람이 부끄러워서 다시 보호막 안에 숨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보고 싶은 사람, 텔레비전을 부숴버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두 마음을 오락가락하며 글을 썼다. 스스로를 고립한 채 작은방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히키코모리에 관한 단편소설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 여섯 달째였다.
- P64

2년 뒤인 2006년 봄 내가 그 소설로 등단했을 때,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 정남규가 검거되었다. 열세 명이 사망하고 스무 명이 중상을 입은 뒤였다. 왜 서남부 지역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강남구 등 부유층이 사는 동네엔 CCTV가 너무 많아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습니다. 살인을 쉽게 하기 위해 방범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 서민이나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범행 장소로 삼았습니다. 여름에는 김선일 씨를 살해한 알 자르카위가 미군에게 사살되었다. 가을에는 난곡 뉴타운에 입주가 시작되었다. 대기업 브랜드의 로고가선명한 아파트에는 입주민을 환영합니다‘ 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럭였고 구청장은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를 했다. "달동네와 판자촌은 잊어주십시오. 이제 난곡은 청정한 자연환경을 가진 살기 좋은 신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텔레비전을 처분하고 원룸을 떠났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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