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집필될 당시 국내는 엄혹한 유신독재 체제 시절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전태일 평전은 78년 11월 ‘불이여, 나를 감싸안아라-어느 한국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판으로 최초 출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83년 6월에 출판사 돌베개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저자는‘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 엮음’이었다. 그러나 평전의 저자는 따로 있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는 이 평전의 저자를 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 글을 쓴 사람은 유신독재가 찾고 있는 지명수배자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변호사 조영래다.
조영래는 코리아헤럴드 기자를 하다 돌연 법대 대학원에 입학한다. 70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전태일 분신 사건을 접한 뒤 서울대 법대 교정에서 추도 시위를 주도한다. 그는 이후 전태일 유족과 평화시장 노동자, 장기표, 시민사회단체 등과 접촉을 넓혀갔다. 저자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되었을 당시 장기표로부터 전태일이 쓴 수기를 넘겨받아 전태일 평전을 썼다. 전태일의 수기를 보관해 온 어머니는 조영래에 대해 ‘언제나 온화한 마음과 말씨로 함께 있는 사람을 더 없이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회상한다. 조영래는 ‘많이 배우고, 지식도 많고, 머리도 남달리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는 언제나 약한 자, 억눌린 자 편에 서는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자기 이름으로 출판 예정이었던 개정판이 나오기 전 세상을 떠났다.
전태일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었다. 그의 비참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사회에 악의를 품을 만도 한데, 구두닦이, 신문팔이와 같은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인간해방과 사회개혁의 높은 이상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그 험난한 생활에서 비롯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비롯된 사회개혁의 높은 꿈과 사명감 때문’(p.38)이었다. 특히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의 삶은 그를 각성하게 했다. 어린 여공들은 14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을 위해 약을 먹어야 했고, 열악한 작업 현장은 그녀들이 피를 토하며 죽게 했다. 2년이 넘도록 그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어린 여공들의 참상을 접하면서 안타까움과 울분 속에 살아왔다. 이 고통의 기간을 거쳐 눈앞에 보이는 불의한 기업주의 횡포를 명료하게 목격했을 때, ‘그는 가족들에게 돈 몇 푼을 다달이 더 보태려고 고분고분 죽어지내는 것보다는 이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여 무언가 싸움에 나가는 것이 올바른 길’(p.110)이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은 ‘바보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했지만, 기업주들만이 아니라 근로감독관, 노동청, 아니 그 이상까지도 상대로 하여 싸워야 하는 현실을 깨닫는다.
전태일의 투쟁은 외로웠다. 그가 아무리 싸워도 세상은 그를 무시했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개인사를 아는 사람들은 강원도 어떤 탄광에서 갱도가 매몰되어 죽었다는 것은 모른다. 그가 사는 세상에서는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노동자들의 참상에 대해 대중은 무관심하고 무기력했다. 그는 생명을 건 투쟁이 아니고는 이 철벽을 돌파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한다. 사실상 그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에 의해 강요된 것’(p.291)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그는 평화시장에서 불꽃으로 사라진다.
전태일의 삶은 우리 노동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은 시대가 변했음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탄할 것이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회구조와 언제나 강자 편에 있는 언론과 기관들은 전태일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에나 존재한다. 택배기사가 과로사하고, 김용균 씨가 석탄 운반 시설 점검 중 죽고, 실업계고 현장 실습생이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에 시달린다. 전태일의 노동운동은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만큼 절실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투쟁이었다. 그의 죽음과 이 평전은 우리 현실이 바뀐다 해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산물이다.
조영래는 생전에 “전태일 평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 써졌다고 생각하네. 첫째는 지식인의 관점에서 써진 것이고, 두 번째는 본의 아니게 죽음을 미화한 게 아닌가 생각하네. 그래서 지식인이 아닌 노동자가 다시 썼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하네”라고 말했다. 저자는 ‘평소에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연이어졌던 이 땅의 숱한 죽음들을 보면서 행여 이 책이 그러한 죽음들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나 자책하는 말을 되뇌이곤 했다’고 한다. 저자와 전태일의 투쟁이 닮아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사람이든 비참하지 않게 살고, ‘헛되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 덕에 ‘노동’이라는 말을 자유롭게 들먹일 수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다.
1) 2) 이소선 평전 <어머니이 길> 93화 '전태일 평전> 저자, 그는 출간된 책을 볼 수 없었다.' (민종덕, 오마이뉴스)
3) http://www.chuntaeil.org 「개정판을 내면서」 (전태일 재단,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