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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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열등감과 콤플렉스 성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성격과 외모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언제나 한결같이 부지런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그녀에겐 딱 하나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외모가 지나치게 사내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도 결혼을 했고 집도 있으며 심지어 토끼같은 자식들이 있었다. 딸은 그녀를, 아들은 그의 외모를 닮았다. 그는 그걸 싫어했다 그래서 외박이 잦았다. 그래서 그녀는 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이렇듯 전화를 가까이 두면 사람이 거기에 휘둘린다. 전화는 남성 사회의 전형적인 테크놀로지이기 때문이다[P. 270] 확실히 기계들이 곁에 있으면 사람은 그거에 의존해서 점점 몸을 쓰지 않게 된 것 같다. 미래 인간은 아예 안 움직이게 될지도 모르겠군. 
 
   문제의 시작은 이렇다. 그녀의 남편인 는 이제 그녀가 불만스럽다. 기보다 키도 크고 볼품없는데다 현재 그는 외도 중이기 때문이다.  왜냐, 그는 꽤 잘생긴데다 현재 잘나가는 회계사인 거랑 상관없이 첫사랑한테 차였다고 홀라당 그녀랑 결혼해서 첫사랑한테 복수한 놈이니까. 그렇지만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내라 그녀를 교외에다 쳐박아버렸다. 절대 이혼을 안 하는 그런 책임감 강한 사람이다. 덕분에 그녀는 그가 자길 사랑하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불쌍한 사람이 되버버렸다.  우울은 불안이 변형된 형태지만, 그보다 훨씬 수동적이고 유쾌하며, 사람을 행동으로 내몰기보다는 상념으로 이끌어 가는 감정이다 [P. 190]. 그래서 그렇게 그녀가 공상의 나래를 펼쳤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게 그녀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원래 그녀는 착한 사람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사사건건 남편이란 작자와 부딪치는 게 문제지만. 그녀외도녀질투하기 시작한다. 아니 원래부터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언제나 남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자들을 속으로만 부러워했으니까. 그러다 짠~하고 정면으로 그런 사람이 튀어나온 것뿐이다. 이젠 대놓고 질투할 수 있게 계기를 마련해준 것을 물리치지 않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다만 그녀에 대해 잘 알고자 몇가지에 손을 댔을뿐이다. 

   그녀와 달리 외도녀는 참 낭만적인 사람이다. 이 낭만이 문제를 키워버렸지만 그래도 그녀는 꿋꿋이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이용해서 외도녀를 파멸로 몰고 갔다. 외도녀는 지성과 미모와 재력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그 작자를 사랑하는 바람에 평범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녀는 외도녀를 파멸시키기 위해 그녀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자신은 자신의 복수를 위한 베이스를 마련해갔다. 그녀는 운명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느님도 믿지 않는다. 그녀는 하느님이 정해놓은대로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될 작정이다....창조주에게 반하고 그녀 자신을 다시 만들어갔다.[P. 213 ] 그래서 그녀는 모든 애정의 대상을 그녀는 내버린다. 버리지 않으면 자유로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P. 213 ]
 
  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간호보조사로 돈도 좀 벌고 그 돈으로 회사를 차려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전업주부들이도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약간의 사례비를 받고 회원들의 고민상담을 해주며 그들을 쫌 이용해 먹을뿐이다. 또 남편이름으로 자금횡령을 한 것이 법정에 회부되었길래 사건 담당 판사의 가정부로 그를 감옥에 보내버렸을뿐. 성형외과에 사진을 들고 갔더니 살부터 빼면 해주겠다길래 청빈하게 살던 성직자의 가정부로 갔다가 파계승으로 만들었지만 살이 더 쪄버려 여성공동체에 들어가 초췌해져서 성형수술도 감행했다. 자신과는 상관없이 태어난 이 세상에 그녀 자신을 맞추기 위해 무척아나 노력했으니까요. 하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그녀는 혁명가가 아니에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그녀 자신을 바꿀 수밖에 없잖아요  [P. 273] 당당한 말이다. 하지만 슬픈 현실인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왜 동물의 세계와 달리 인간계는 남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걸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낸 당찬 사람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악녀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녀들을 우리가 부러워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이루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그 사실을 실현했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들이 혼자라 외로워도 '자업자득이지' 라고 비꼴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기꺼이 그 고통을 받겠어요. 불평같은 건 하지 않아요[P.198].라고 말할 용기가 나는 아직 없다. 언제나 저렇게 될 수 있길 바랐건만 좀체 망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잘 보인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게 되니까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해서 제목은 비로소 완전해진다. 그녀는 바로 에덴 그로브 출신의 순박한 아녀자에서 악녀로 변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녀가 행복해졌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이게 현실인지도 알 수 없다. 번역가의 후기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종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 뭐, 알 게 뭐야. 언제나 내식으로 생각하는 탓에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다들 그렇지 않은가?  같은 것도 말하기 나름이잖아요. '' 경우에는 신념이지만, '' 경우에는 독선이고 '그' 의 경우에는 오만이 되죠 : 도대체 오만이란 게 뭐죠? [P. 253]


소설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겐 참 낯선듯하다. 목차가 없고,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려는 노력을 전혀 안 하는 나로써는 정말 어디까지, 아니 내가 받은 느낌이 그들이 원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 이 몸은 추천사는 물론이고 작가가 쓴 말, 번역가가 쓴 후기도 전혀 안 읽기 때문이다.] 난 언제나 내가 느낀바가 중요하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싶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용파악보다는 그것으로 내가 느낀 바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런 습관이 생긴 이레로 서평이라고 쓴 것도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을 나열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바꿔보려고 한다. 특히 소설이라면 그 효과가 더 나타나기 쉬울 것 같아서 이번엔 다르길 바라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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