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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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 대선 전후를 이 책과 함께 보냈다. 내란세력은 여전히 준동했고, 몇몇 대선 후보들은 최소한의 품위마저 장착하지 않고 정치와 시민을 모욕했다. 쏟아지는 기사와 논평들을 접하며 분노와 우려를 왕복한다. 회오리치는 감정에 휩쓸려 나 또한 사안들을 성급하게 판단하기 바쁘다. 사유는 없고, 날것의 감정만 출렁인다. 들끓고, 내뱉고. 기사 속 인물들과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다 자기 전에 이 책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내게 필요한 문장이 있었다. 사적인 울림을 주는 문장부터 정치 이슈로 복잡해진 마음을 정돈시켜주는 문장까지. 내가 잊거나 놓친, 해보지 못한 사유가 책 속에 있었다. 오래되고 내밀한 주된 관심사로 걸어 들어오는 저자들(이런 순간은 정말 감동이다), 궁금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했던 분야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책들, 환한 통찰로 이끈 문장들, 막연히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준 페이지들.

언론인 고명섭 선생은 책속에 76권의 책을 담았다. 그가 읽고, 다시 쓴 책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 과학, 미학, 사회학, 역사학, 시학, 신화학 등 전문서이다. 해당분야의 비전공자는 섣불리 손을 뻗어 펼치기 어려운 주제이고 책인데, 너무 흥미로워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쉽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읽는 내내 탄복했다. 읽어들 보시면,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책이 쓰여 진 시대적 배경, 책이 차지하는 지식사적 위치와 의미, 해당 책이 전하려는 요지와 저자가 그 책을 통해 길어낸 통찰을 유려한 문장으로 전한다.

저자가 선택한 책들은 저자의 사유를 거쳐 저자의 팬 끝을 통해 저자의 문장으로 재탄생한다. 한 권의 책은 필로소포스를 경유해 또 다른 책이 된다. 책 표지가 표현한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필로소포스가 철학의 숲으로 들어가 사유의 나무들 사이로 오래도록 거닐고 머물며 잉태한 사유의 열매들이 페이지마다 붉게 열려있다.

그 사유의 정원으로 초대된 독자는 손을 뻗어 그 열매를 베어 물고, 사유의 과즙을 음미한다. 이 사유의 과실들은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실천의 열매가 된다. 우리는 사유와 언어로 살고, 깨닫고, 실천하는 존재들이다. 철학의 숲으로 들어가니 사유의 향연이 열리고 있었다. 눈부시고 첨예하며, 달콤하고 쓰디쓴, 풍요로운 지혜의 향연.

아리스토텔레스를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경탄), 이준석의 TV토론을 보고 상한 마음을 <위대한 수사학의 고전들> 편을 보고 위로받았다. 현재의 이스라엘과 <미쉬나>의 유대인과 레비나스의 타자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다, 너무 아득해져서, 멈췄다. 1장은 예술론과 정치론, 종교론을 중심으로 근현대사유의 기반을 톺아본다. 2장과 3장의 흐름이 머무는 곳들에서 공감의 탄성이 연이어 나왔다. 플로티노스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저자 문장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4장의 타이틀을 보고 영성과 정치라는 낯선 조합이 궁금했는데, 이내 수긍하고, 현실 정치에서 삭제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사유한 막스 베버의 정치 윤리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사유와 유럽 사유의 차이를 언어로 분석한 줄리앙의 연구도, 영성으로 한국 현대 정치사를 분석한 김상봉 교수의 책도 무척 흥미롭다. 휠더린과 한용운을 다시 읽고 싶어져 마음이 급해진다.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룬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의 피와 함께 리영희 선생의 혼을 먹고 자랐다고 말한다. 이 장에서 저자가 일별하는 한국 현대사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쟁취한 독립이고, 어떻게 이룩한 민주공화국과 헌법이며, 어떻게 지켜낸 민주주의인가. 저자 말대로 선대의 피와 혼이 살린 국가이고 민주주의이다. 저자의 우려처럼 ‘거짓이 활보하고 추한 권력이 위세를 부리는 시대’이다. 하지만 저자의 단언처럼 ‘수난과 저항과 투쟁 속에서 형성해 온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우리 영성의 알맹이다’

저자의 안내대로 사유의 숲을 걷다보면 지혜의 나무들 아래로 뻗은 뿌리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종교와 과학, 정치학와 역사학, 신화와 미학, 철학과 문학. 이 책의 미덕은 학문들 간 사유의 맥락이 시공간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이데거 철학 속 휠더린의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동물학과 중세 연금술과 근대과학의 연결고리, 레비나스의 현상학 속 유대교 법전, 19세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완성시키는 20세기의 르네 지라르. 동서양의 사상이 만나 발효되는 다산의 ‘논어 읽기’. 이런 발견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인간이 지혜를 찾아 심은 사유의 씨앗들이 풍성하게 자라 울창한 사유의 숲이 되었다. 지혜의 나무들은 어느 것 하나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 학문들과 주고받는 영감과 그 화답들은 서로에게 양분이 되어 사유의 숲을 더욱 울창하게 가꾼다. 이 책이 말하는 철학의 숲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우리를 분노와 불안으로 내몬 정치가 망각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각자도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책은 일깨운다. 사유하지 않는 정치가와 시민은 공화국의 가장 위험한 존재이다. 저자에 의하면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악의 근원을 ‘사유 능력 없음’에서 찾았다. 사유 능력이란 상상력, 즉 나를 뛰어넘어 타자의 처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김상봉 교수는 영성을 세계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의 능력으로 정의한다. 레비나스에게 주체는 존재자 전체를 장악하는 근대적 주체가 아니라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윤리적 주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는 이 책이 보여주듯 우리는 선대부터 이어온 사유의 얼개가 주조한 존재들이다. 사유의 유산과 능력을 폐기해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들이 되는 걸까. 우린 어떤 존재들이 되길 원하는가. 안팎으로 어수선한 지금이야말로 차분하게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행히 이렇게 은혜로운 사유의 숲이 책 한 권에 숨 쉬고 있다. 힘차게 가지를 뻗으며 푸른 잎과 다채로운 꽃들로 수런거리는 지혜의 나무 아래를 걷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시라. 내 시선과 손이 그 나무들에 닿는 순간, 내 정신에도 푸른 잎이 돋아난다. 나도 그 숲의 일원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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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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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 나가면 볼거리, 먹거리가 천지이고, 매스컴 속 세상은 화려하고 윤택하기만 한데, 속살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배음처럼 깔린다. 살기 힘들다는 말 속에 내포된 복잡한 맥락을 생각하면 더 숨이 죄어온다. 기술과 문화의 드라마틱한 발전으로 삶이 누릴 수 있는 편리성과 유희성은 가파르게 상승한 반면, 우리의 삶은 더 쫓기고 마음자리는 강퍅해졌다.





안호기 기자의 <성장이라는 착각>. 맺음말의 타이틀 “성장, 인간이 만들어낸 퇴행”을 보고 반가웠다. 나는 언젠가부터 세계가 퇴행 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연은 끊임없이 파헤쳐지고 오염되고, 기온은 오르고, 숲은 불타고, 동물들은 비명을 지른다. 공동체는 사라지고, 타자의 의미는 빛이 바랬다. 관계의 중심에 타산이 들어앉고, 삶의 의미가 경제적 성과로 평가되며, 사회적 신뢰를 좀먹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약자에 대한 착취와 혐오, 폭력이 난무한다. 이것이 성장의 그늘이라면, 이런 성장을 반겨야 할까.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을 연료로 몰아붙여 얻어낸 성장은 그 자체로 퇴행이다.



머리말에 소개한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과 우리 사회의 현실 지표를 통해 저자는 말한다. “소득이 늘어도 시민의 행복은 늘지 않고 있다.” 지구와 시민의 삶을 볼모로 진행되는 성장 신화에 저자는 의문을 제기하고 그 출구로 “탈성장”을 제안한다.



탈성장 논의는 “선진국 또는 비슷한 수준으로 산업화한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저자에 따르면 탈성장은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편을 통해 사회를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만들어 성장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사회를 유지, 진보시키는 것이 아니라 퇴행시키는 성장 담론은 이제 적극적인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그 시작으로 탈성장을 공론장으로 끌어오고, 자본주의의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착취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탈성장과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 책의 문제의식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적당히 편리해지고,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일하고, 더 많이 심심하고 빈둥거리는 삶을 나는 희망한다.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성장에 포획된 현실을 진단해보고, 대안 담론들의 현재 위치를 가늠해 미래를 예측해 볼 예정이다.

저자 안호기 선생은 경제부장, 경제 에디터,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거친 경향신문 기자다. 경제 문외한인 나는 경제 관련 글 앞에서는 일단 주눅이 든다. 하지만 머리말을 읽었을 뿐인데 배테랑 언론인의 간명한 문장과 명확한 논리가 나를 안심시켜준다.



잘못된 환경론자들, 환경PC주의, 환경카르텔이라는 단어를 대선토론회에서 들은 신선한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전혀 신선하지 않았고, 경악했다.) 퇴행의 상징적 장면이 생중계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런 수사조차 혐오와 선동으로 몸짓을 부풀려온 정치꾼에게 득이 될까 우려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저 높은 곳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성장을 잡겠다고, 인간과 비인간의 땀과 피, 뼈와 재로 탑을 쌓아 기어오르자고 선동하는 자들에서 고개를 돌려, 이 책을 읽는다. 혐오를 혐오로 되갚지 않기 위해, 일단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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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의 시간 - 망가진 세상을 복원하는 느림과 영원에 관하여
사이 몽고메리 지음, 맷 패터슨 그림, 조은영 옮김 / 돌고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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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에게는 뭔가 아주 오래된 흙의 기운 같은 게 있어요.”

“거북에게는 뭔가 아주 오래된 흙의 기운 같은 게 있어요.” 위험에 처한 동물을 지나치지 못하는 동물을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란 크리스의 말이다. 크리스는 동물 구조 단체를 운영한다. “거북이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전 그게 거북의 눈 때문인 것 같아요.”, “거북의 눈은 정말로 특별해요.” 거북을 중심으로 사랑하고, 살아가고, 성장하는 이 책의 인간 주인공들, 나타샤, 알렉시아, 미카엘라, 맷, 클린턴의 말이다. 정작 이 책의 진짜 주인공, 거북은 말이 없다. 그들은 살아간다. 햇살아래, 비를 맞으며, 진흙을 헤집으며, 물속을 헤엄치며, 지금을 산다. 몇 개월 혹은 백 년을 산다. 나는 감히 거북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

“거북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착취되고 학대받는 동물이다.”

“거북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착취되고 학대받는 동물이다.” 사이 몽고메리가 거북에 관한 책 <세계의 거북>에서 인용한 말이다. 의료용으로, 장식용으로, 식용으로 거북과 그 알은 인간에 의해 수천 년 동안 착취되어 왔다. 오늘날 거북 밀거래 시장이 전례 없는 수준이라니 이 탐욕은 이어지고 있다.

“거북, 멸종은 없다.”

이런 조건에서도 “거북, 멸종은 없다.”라고 단단한 미래를 선언하는 단체가 있다. 거북생존센터가 바로 그곳. 이곳에는 세계적인 절멸위급종 거북들의 가장 크고 중요한 번식 군락이 있다. 사라 몽고메리는 관리자 크리스의 안내로 멸종 위기 거북들이 보호되고 번식되는 구역 구역을 꼼꼼하게 취재한다. 거북이 보여주는 생명의 풍요로움과 인내력이 경이롭다. 크리스는 말한다. “저는 빈 벽을 앞에 두고도 즐겁게 보낼 수 있어요. 따분함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의 것이죠.” 따분함을 견디지 못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을 생각해보면,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열등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오늘 한국 일보 기사를 보니 거북이 처한 위험은 특정 사람들의 탐욕 때문만은 아니다. 기후 변화와 플라스틱 오염으로 바다거북의 생존이 심각하다는 기사다.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의 99%가 암컷이라고 한다. 모래 온도가 주요 변인이다. 이러한 성비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바다 거북의 번식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제주 바다 거북 사체를 부검한 결과 바다 거북 1마리 당 평균 38개의 플라스틱을 삼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거북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언제나 편하고 쾌적한 것을 나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우리가 저 남자보다 먼저 여기에 오자꾸나.”

“내년에는 우리가 저 남자보다 먼저 여기에 오자꾸나.” 거북의 알을 깨뜨리는 남자를 보고 열한 살 된 맷에게 아버지 데이비드가 한 말이다. 그 여름 이후 데이비드와 맷은 매년 거북알을 찾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거북구조연맹의 나타샤, 알렉시아, 미카엘라. 그리고 맷과 함께 이들의 구조 활동에 참여하게 되고, 이 책을 쓴 사이 몽고메리. 살아 있는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그들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돌봄으로 말하는 사람들. 거북을 돌보고 거북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거북의 시간을 살게 된 사람들.

“이 곳 사람들은 모두 거북에게 마음을 쓰고 있어요.”

“거북 시즌 시작!” 대형 노동조합 건물 주차장 사방에 세워진 주황색 삼각콘에 붙여진 종이에 쓰여진 말이다. 노동조합 설비 일을 하며 거북을 돌보는 스콧이 쓴 것이다. 그는 알을 낳으러 오는 어미 거북을 주의해 달라고 사람들에게 알린다. 자신과 사람들이 거북을 살리는 일을 그는 무심하게 말한다. “이 곳 사람들은 모두 거북에게 마음을 쓰고 있어요.” 마음을 쓰는 일이 살리는 일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나는 <거북의 시간>을 읽으며 거북 앞에, 거북을 돌보는 사람들 앞에 숙연해졌다. 귀엽고 예쁜 표지를 가진 이 책은 펼치자마자 너무 아름다워 단숨에 읽게 된다. 이 책에는 거북의 시간, 거북을 구조하고 돌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 그들과 한 시절을 함께하고 관찰하며 그것을 문장으로 옮긴 작가의 사색과 통찰이 교차된다.

필사를 위해 다시 읽으며, 몇 번의 단상을 적긴 했지만, 이 책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동물과의 관계는 가장 어려운 주제다. 내가 그들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고,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일원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존엄함, 그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의 숭고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거북과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기를. 우리가 해 온 일의 결과와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알게 되기를.


“자연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며 사람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P123

“나는 곧 비밀스러운 태곳적 생물이 사실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그것도 눈에 뻔히 보이는 곳에 숨어서 삶의 가장 중대하고 내밀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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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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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다다르면 새로운 물음이 탄생한다" 저자가 인용한 이 문장이 이 책을 상징하는 듯 하다. 끝까지 밀어붙인 사유의 끝에서 탄생한 새로운 물음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치열하게 주고받는 사유의 분투 장면 자체도 장관이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한계를 자주 떠올리는 요즘 새로운 질문의 태동을 이 책 전반에서 느낄 수 있어 반갑고 의지가 된다.

오랜만에 읽는 묵직한(내용도, 두께도) 인문 서적이어서 자기 전에 아껴서 천천히 읽어야지 하며 펼치는데, 그때마다 정신이 점점 말똥말똥해진다.

처음 알게 된 작가와 책이 던지는 예리한 질문과 환한 통찰들, 여러 맥락에서 되살피게 되는 이미 저명한 작가들의 사유의 궤적들이 무척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철학책에 기대하게 되는 수면 유발 효과는 간데없고 잠이 달아난다.

첫 장을 읽고 목차에서 마음 가는대로 선택해 읽어야지 했는데, 이어지는 장들이 너무나 흥미로워 계속 차례대로 읽게 된다.

철학과 시학, 종교와 과학, 사회학과 정치학, 미학과 문학을 전방위로

넘나들며 펼쳐지는 사유의 장이 깊고 장대하다.

신기하게도 내 오랜 관심사와 연결되는 부분들이 많아 독서를 하며 뭔가 해소되는 느낌을 줄곧 받는다. 가려운 부분이 해결되는 신체적 느낌에 가까운 시원함. 내가 가진 의문들에 대한 여러 가닥의 실마리가 손에 쥐어지는 느낌. 이럴 때 독서는 새삼 즐겁다.

“ (우리는) 우주 한가운데에 서 있으며 필멸하는 몸에 갇혀 있지만, 불완전한 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관찰을 표현하고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모든 모형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다다르면 새로운 물음이 탄생한다.” 다니엘손의 물리학은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부푼 시도이자 우리 인식의 한계에 주목하는 겸손한 작업이다.

-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중,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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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의 시간 - 망가진 세상을 복원하는 느림과 영원에 관하여
사이 몽고메리 지음, 맷 패터슨 그림, 조은영 옮김 / 돌고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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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돌고래를 찾아 아마존강에 첨벙첨벙 뛰어들던, 열정과 용기로 뜨거웠던 사이 몽고메리도 60대가 되었다. 수억 년간 이어온 지혜를 품고 언제나 지금을 사는 거북과 함께 하며, 작가는 시간에 대해, 그리고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가는 시간이 아닌 영원히 반복되고 갱신되는 시간. 연대기적 직선에서 벗어나 무한의 나선으로 순환하는 시간.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장면으로 펼쳐지는 풍경 같은 시간. 우리가 시간이라고 아는 시침과 분침이 가리키는 시간은 어쩌면 거대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면, 나이듦과 죽음도 다르게 정의되겠지.

거북에게 시간은 어떤 것일까? 최근 읽은 어떤 책에 의하면 동물들 각각은 인간과는 전혀 다르게 세계를 감각한다고 한다. 우리가 막연히 느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차원이 다른 세계.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셈이다. 시계와 달력으로 시간이 구획되기 전, 인간은 세계를 어떻게 감각했을까. 새소리에 잠이 깨는 작가처럼 자연의 미세한 변화가 세계를 감각하는 첫 신호였겠지.

60대 사이 몽고메리는 거북의 뒤를 쫓아 자연의 가슴으로 들어가 시간의 함정에서 벗어났다고 쓴다. 중년의 나는 작가의 이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나도 시간 없이 지내려고 한다. 쉽지 않다. 작가도 나도 거북처럼 두 세계를 오가겠지만 시간 밖의 세계에 점점 더 오래 머물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 벗어남이 온전하기를 거북도, 작가도,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응원한다.

나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은 침실 창문 밖에서 울어대는 굴뚝새 노랫소리다. 끝없는 세월, 봄마다 제 영역을 선포하는 새의 노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나란히 존재한다. 주간고속도로의 차들처럼 광란에 휩싸인 채 내달리다 순식간에 강탈당한 시간. 그리고 계절의 순환처럼 영원히 반복되며 갱신되는 시간. 거북은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들의 뒤로 쫓아 고속도로 가드레일 바깥의 세계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야생의 품으로, 자연의 뛰는 가슴으로 들어가 시간의 함정에서 벗어난다.

<거북의 시간> p 140 - 141 , 사이 몽고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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