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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
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녹색광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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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풍경이란 게 있다. 영혼의 지형이랄까. 우리는 평생토록 그 지형의 등고선을 찾아 헤맨다.”

조세핀 하트 <데미지>를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역자 공경희도 옮긴이의 말을 이 구절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하는데, 이 책의 끝에 위치한 이 옮긴이의 말을 읽기 전에 저 첫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이미 이 작품이 저 헤맴에 관한 내용임을 직감했다.

자신의 내면, 영혼이 어떻게 생겼는지 탐색하는 방법은 영혼마다, 탐색의 시기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주인공이 그 탐색을 하는 방법은 사회의 질서에 위배되는 형태였다. 그것이 자신과 다른 성을 가진 사람과의 내밀한 관계 맺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것은 사랑이라고만 부르기에 불충분하다고 여겨졌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스스로 기만적이라고 여겨지는 자아를 버리고, 사회의 요구에 배치되지만 진정한 나로 인정할 수 있는 자아를 찾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물론 저 사회적 자아를 계속 연기하고 있으면서 진짜 나와 가짜 나 사이의 갈등도 소설의 일부 내용을 이루지만, 연기는 진짜 나로 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그 갈등마저 점점 사라져간다. 그리하여 자식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보게 되는 비극을 겪으면서도 주인공은 상당히 차분하다. 이 비극 앞에서 시간을 되돌려서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어!’라고 외치는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라 역시 자식을 잃은 그의 부인이다. 주인공은 후회가 없다.

주인공은 진짜 나일 때에 시각에 민감해지고 색에 주의를 기울이다가, 파국 이후 혼자 살면서 집 전체를 흰 색으로 만들어놓고 산다. 감관을 가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았는데, 그 길이 그의 주변을 모두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비극이다.

외적으로 눈에 띄는 자극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자극을 끝내 무효화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작품이다. 동명의 영화도 유명하지만, 결코 영화가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심연을 경험하게 해준 독서였다.

"내면의 풍경이란 게 있다. 영혼의 지형이랄까. 우리는 평생토록 그 지형의 등고선을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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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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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녹색광선의 책표지도 그러하지만, 소설 첫 머리부터 관능적 언어로 가득하다. 이 소설의 끝부분이 충격적이라고 들었는데, 나한테는 소설 전체가 그렇게 느껴졌다(일단 이 둘의 관계가 가족과 주변인으로부터도 여러 해 동안 용인되었다는 설정 자체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파격이다). 두 주인공의 관계가 다면적으로 격변하는 끝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맞다. 육체의 젊음이 '사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이 작품에서만 봐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만 또 중요하기도 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타인의 노화, 자신의 노화를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도 있겠다. 느낌과 생각이 조화를 이루느냐, 갈등관계를 이루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사랑하지만 누군가의 노화가 그에 역행하는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고, 생각으로는 (육체의 변화 때문에) 사랑을 접었지만 감정으로는 접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삶에 대한 진실을 매혹적인 문장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의 후속작인 <셰리의 종말>이 각주로 언급되고 있는데, 미친 듯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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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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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 등장인물과 신들 설명하는 부분만 읽어봐도 문장이 얼마나 맛깔스러운지요. 특히 아킬레우스 부분은 한 편의 멋진 글입니다. 물론 번역부분도 너무나 재밌어서 아껴두고 조금씩 독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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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 1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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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인 결말이었으나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한 시간 정도 여운이 짙게 남았다. 내 부족한 능력으로는 이 소설의 위대함을 그냥 묘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위대하다는 말 밖에는.

<마틴 에덴>의 마틴 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이것저것 지식 욕심은 있어가지고 최근에 책도 잔뜩 빌리고 읽을 논문이 컴퓨터 안팎으로 수두룩한데, 마틴처럼 자는 시간을 죽는 시간으로 생각할 정도로 목숨 바쳐서 읽고 공부해본 적은 지금껏 없다.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글자들에 인간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신비한 일이다.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구와 상상력이 가진 힘은 놀랍다. <마틴 에덴>의 결말은 비극이지만, 마틴이란 인물, 아니 작가 잭 런던은 인간에게 잠재된 힘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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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틴 에덴 1~2 - 전2권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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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열한 소설이라니. 첫 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소름끼치게 치열하다. 도저히 읽기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독서에 에너지를 지나치게 빼앗겨 쉬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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