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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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일까?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주기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한 항목이 있어서 불안할 때가 있고, 때로는 급성으로 죽을 것처럼 통증이 찾아와서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져 눈물이 흐를 때가 있었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과학적 통찰과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져 읽다보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게 다가가게 만들어 준다. 죽음을 단순히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도 아니다. 죽음은 직선처럼 간결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학교 암병원 종양내과 전문의이자 임상교수이다. 종양내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암 환자들을 만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과 희망을 마주해왔다. 의사, 교수, 연구자, 임상시험 전문가, 글쓰는 사람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쓴 책으로는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경계의 풍경이 묻다>, <항암치료란 무엇인가>, <암, 나는 나 너는 너>, <암환자의 슬기로운 병원 생활> 등이 있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부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2부 암을 향한 인류의 도전

3부 죽음과 불멸의 두 얼굴, 암

4부 반전

5부 죽음 뒤집어 보기

이 책의 저자는 열일곱 살 때, 아버지를 폐암으로 잃고나서 험난한 시간을 거치며 죽음에 대한 물음과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암이라는 병에 대해 파헤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갔고 암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분야로 전공을 선택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암이라는 존재를 파헤치며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과학적 통찰과 함께 철학적 통찰을 얻었고, 그 과정과 자세한 내용이 이 책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에서 만난 몇몇 문장을 공유하면 아래와 같다.



징조들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렇게 소소한 징조들이 쌓이면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난다. 상전이의 순간, 예를 들어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99도까지는 아무 일 없던 물이 100도가 되는 순간 갑자기 끓어오르며 수증기가 된다. 99도까지 올라가는 동안 1도, 1도 쌓여지는 징조는 100도가 되어야 변화로 이어진다. 그 지점이 임계점이다. 죽음도 그랬다.

p30, 죽음의 상전이, 1부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암이 내 몸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암세포는 끊임없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내 몸에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몸에도 지금 이 순간 암세포는 생겨나고 있다. 다만 운이 좋게 영양분을 빼앗지 못해 굶어 죽거나, 주변의 환경에 적응 못 해 죽거나 ,면역 세포에 의해 죽임당하거나,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가 죽거나 등등 여러 이류로 번식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굶주림, 추위, 감염, 외상 역시 암세포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p190, 그리고 암의 시작, 3부 죽음과 불멸의 두 얼굴, 암



의사인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이렇게 세포가 빨리 분열하고 그 과정이 60년, 70년, 80년 지속되는데 그 항하사 같은 숫자의 세포 중에서 암세포 한두 개 안 생긴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30억 개의 DNA 염기를 품은 30조 개의 세포들이 수십 년 동안 조화롭게 기능하며 우리 몸이 질서 있게 유지된다. 이 사실 자체가 놀랍고 경이롭기 그지없다. 우리는 이를 단순히 ‘살아 있다’고 표현하는데, 극도로 희박한 확률의 사건들이 매 순간 끊임없이 펼쳐지는 기적이다.

p281, 우연의 우연, 4부 반전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는 기억에 남을 만한 새로운 경험을 늘려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길이라도 오늘은 다른 길로가보는 게 어떨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자. 색다른 음식을 먹어 보자. 새로운 음악을 들어보자. 새로운 경험과 기억은 추억이 될 뿐 아니라 수명을 늘린다. 그렇게 되면 하루는 짧아지고 1년은 길어진다. 이런 이유로 몇 년 전부터 나는 환자들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시라. 가족들과 맛집 탐방을 하시라. 대화를 많이 나누시라. 사진을 많이 찍어두시라. 일기를 쓰시라. 물건을 사는데 돈을 쓰지 말고 경험을 사는데 돈을 쓰시라.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관습적으로 살아온 업식이 몸에 굳어서 나이가 들면 좀처럼 변화를 주기 힘들다. 나이 들수록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p359, 시간을 늘리는 법, 5부 죽음 뒤집어보기



암은 처음부터 변형된 나 자신이었다. 그토록 없애버리고 싶은 암은 변형된 자아였고, 내가 싫어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렇게 암은 의외의 메시지를 나에게 주었다. 소소한 하루하루의 소중함도 알려주었다. 인생은 본디 우연으로 점철된 불확실한 것이기에 소중하다. 우리의 기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하루가 기적이다. 암에 걸린 것이 불행이 아니라 암에 걸리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은 당연하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암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평범한 진리였다.

p403-404, 여정을 마치며, 5부 죽음 뒤집어보기




이 책은 암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어, 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라면 더 없이 좋을 책이다. 저자가 그동안 암을 정복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던 과정에서 얻었던 수많은 지식과 통찰을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암에 대한 과학적 사실에서 철학적 통찰로 연결하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함께 깊이 있게 사유하게 된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며 소중한 시간임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되어서 감사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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