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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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만물관>은 신선한 책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물들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의외의 재미있는 장면을 마주하기도 하고, 씁쓸한 사건들을 만나기도 한다. 모르고 있었던 세계 역사의 은밀한 부분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 들어서 짜릿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상, 부엌, 취향, 혁명, 일터, 여행지, 이야기를 주제로 묶어 77가지 사물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인상깊었던 사물 중에 몇가지만 공유하면 아래와 같다.

* 샴푸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샴푸는 마사지라는 뜻의 힌디어 '샴포champo'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810~1820년대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인도의 샴푸 기술이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이전에는 머리를 물로 감는 행위가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이유인즉, 유럽에서는 물에 대한 불신이 높았고 머리에 물을 바르면 두통이나 치통이 생긴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밀기울이나 전분을 머리카락에 발라 빗질을 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머리에 쥐와 바퀴벌레가 꼬이기도 했다고 하니, '헉!그렇게나 비위생적이었다고?'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대표 명절 중에 하나였던 단오날에 창포물로 머리감기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샴푸가 생기기 전부터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검색해보니, 단오는 1518년에 설날, 추석과 함께 '삼대명절'로 정해지기도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샴푸라는 물건이 생기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샴푸 대신에 창포물을 사용했다는 말이 되지 않은가? 우리 선조의 지혜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 젓가락

1860년까지 중국 영토의 대부분이 서양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을 여행하고자 하는 이들은 몰래 드나들어야 했다. 그때 가짜 변발은 필수였고, 눈동자를 가리기 위해 색안경까지 꼈으며,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려면 젓가락질도 완벽해야 했다고 한다. 중국을 몰래 방문했던 식물학자 로버트 포천의 일화에서, 그는 젓가락질에 능숙하지 못해서 위장이 탈로날 것을 감수하기보다는 식사 자체를 포기했다는 부분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서양인들에게 젓가락은 19세기에 알려진 물건이고,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게 해준 물건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아주 오래전인 기원전 4세기부터 사용되어온 물건이었으며, 쌀 생산량이 많아진 14세기 무렵의 송나라 때부터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현대의 젓가락은 세계 대중화를 이룬 덕분에 누구나에게 친숙한 물건이 되었지만, 과거에 서양인들에게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에서 걸림돌이 되었던 사물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 타이어

타이어는 자동차의 중요 부품으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물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타이어의 역사를 알고보니.. 그야말로 씁쓸했다. 타이어가 뭐간디!! 많은 사람의 희생을 치뤄야 했을까?

아래 발췌부분을 보자.

"1935년까지 타이어 생산에 쓰이는 고무는 대부분 자연산이었다. 19세기 말까지 라텍스 채집은 야만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현지 주민을 일상적으로 고문하고 학살하며 (수확해 온 고무의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신체를 절단한 '잘린 손 사진'들이 이유를 잘 보여준다) 끔찍한 자원 수탈을 대대적으로 조직하기도 하였다. p48-49"

노동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 되는 타이어의 원료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전락했던 것이다.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행해진 자원수탈 행위는 타이어의 원료 뿐이었을까? 이러한 사건들을 마주할 때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무참히 착취당하고 짓밟혔던 우리민족의 뼈아픈 역사를 방불케하여 가슴이 아팠다. 뺏고 빼앗기는 아픈 역사는 왜 반복되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역사에서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을 마주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경구 피임약

원치 않는 임신으로 피해를 겪는 사람들을 위해 산아제한 활동의 일환으로 경구피임약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초기 경구피임약의 경우, 인간과 동물의 몸에서 각각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추출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격이 높았기에 이용이 제한적이었다. 미국의 화학자 러셀 마커가 프로게스테론 합성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 약이 시판되기 이전에는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이 필요한데, 이때 임상시험에 동원된 사람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기 임상시험에서 정신 병동에 있는 환자들이 동의없이 투입되었고, 1957년에는 더 큰 규모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위해 빈곤 지역인 리오피에드라스와 아이티의 여성들이 그 실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병들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실험 대상이 되었다니?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그냥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사물 하나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있었고, 감사하게도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뤄야 할 시기가 올 것이기에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발명품들이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발전은 좀더 달라야 한다. 편의를 위한 사물보다도 미래사회에 미칠 영향까지도 꼼꼼하게 고려한 물건들이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가지 사물의 역사를 쫓아가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가 엿보이고, 그 사물에 숨겨져있던 비밀스런 사실들을 알아가며 흥미로운 세계사 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기에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책은 한꺼번에 다 읽기보다는 하나씩 관심가는 사물에 대해서 읽으며 알아가는 재미를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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