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책, 1세부터 20세까지 우리 아이 생일 다이어리
타니구치 카오리 엮음, 시라이 타쿠미 그림, 이지현 옮김 / 참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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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50일이 돼서야 디데이 달력을 샀다.

다른 산모들은 산후조리원 준비물로 챙겨간다는 디데이 달력을 출산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여러가지 고민 끝에 구매하지 않고 내려놓았었다. 디데이 달력 앞에 찍힌 아기 사진을 SNS에 올리는 등의 행동을 내가 할리가 없고, 그런 사진들은 엄마의 자기 만족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아이에게 어린 시절의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겨주는 게 꽤 의미있는 일이 될 거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 책 <Birth Day Book> 덕분이다.


1년에 한번, 아이의 생일날 작성해 아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선물로 주는 다이어리 책 <Birth Day Book>

언젠가 아이에게 줄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아서 리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책을 넘기는 동안 꽤 많은 생각이 스쳤고,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매해에는 성장하는 아기 곰과 어미 곰 일러스트가 담겨 있는데, 특히 마지막 장에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다 자란 아기 곰을 바라보는 어미 곰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갓 태어난 아이의 어렴풋한 미래가 그려졌고, 아직 살아보지도 않은 세월이 켜켜이 마음에 쌓여가는 기분이 들었달까.


책은 그 해의 아이를 기억할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키, 몸무게 등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는 항목과 유년기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친한 친구들에 대하여 기록하는 란이 있다. 청소년기에는 아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작성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뭔가 기록해야겠다 마음 먹어도 막상 뭘 써야할지 막막할 수 있는데 이런 가이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 공란을 제대로 채워내기 위해서는 아이의 일상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유롭게 한 해를 기록할 수 있는 페이지도 바로 뒤에 덧붙여두었다. 나는 이 공란을 한 해 한 해 자라는 모습을 아이가 훗날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그 해 생일 사진을 붙여볼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태어난 첫 해는 처음 시작하는 일들이 많은 만큼 다른 해와 달리 매 개월마다 기록하는 란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이 공란에는 아이에게 일어난 '첫 시작'들을 기록해두었다. 아빠에게 아기새처럼 안겼던 날, 옹알이, 엄마의 마음을 녹였던 반달로 휘는 미소. 매 월 아이가 새로운 걸 시작할 때는 이 책부터 펼쳐야겠다.


마지막 페이지는 스무살이 된 아이에게 남기는 편지이다. 먼 훗날 나는 어떤 기분으로 이 페이지를 적게 될까? 지금은 이 작디 작은 꼬마가 스무살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하루 하루 더 사랑스러워지고 있는 너를, 매일 이렇게 차오르는 마음이면 20년 뒤엔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엄마가 이토록 너를 많이 생각했고 사랑했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건넬 이 책을 아이가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생의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 책을 펴보며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항상 네 편인 엄마가 있음을 잊지 말고 다시 단단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20년이란 세월, 충만하게 기쁜 날도, 마음 찢어지듯 아픈 날도 숱하게 지나칠 긴 시간을 지나, 그 미래에 미리 도착해 있는 기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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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 삶의 교양이 되는 10가지 철학 수업
필립 휘블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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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에 나오는 질문들, 정말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데 위대한 철학자들은 어떻게 이 질문을 답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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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남자아이들에게 - 19년 차 변호사 엄마가 쓴 달라진 시대, 아들 키우는 법
오오타 게이코 지음, 송현정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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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유년시절을 두 번 산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주 반추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성별일 때는 어쩌지?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뱃 속 아이의 성별이 남자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길러야하나 꽤 많은 걱정을 했다.


남동생이 있지만 나는 남자를 여전히 잘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중학교 선생님인 지인이 요즘 남자 아이들이 가진 여성 혐오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더욱 긴장되었다. 


내 아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남자로 자라면 어쩌나하는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있을 때 만난 이 책 <앞으로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 오오타 게이코는 19년 차 변호사이자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다. 일본은 여성 인권이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낮은 사회이다. 저자는 이런 남존여비적인 분위기를 강요된 성역할에서 원인을 찾는다. 


예전에도 손아람 작가가 한 방송에서 비슷한 논지의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남성 역시 성차별적인 인식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경쟁에서 언제나 우위를 차지해야 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남성성' (저자는 해로운 남성성이라 명명한다)을 강요받아온 남자 아이들. 결국 분노할 상황에서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방향을 돌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도 언제나 남자는 이겨야한다, 강해야한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 다양한 부부 간의 문제를 접하며 남성들이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남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대화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고,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폭력적으로 타인을 누르거나 대화를 회피하는 비뚤어진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타인에 대한 폭력을 너그럽게 용인하는 분위기에서 자라게 되는데, 이런 환경이 향후 여성 혐오와 데이트 폭력 등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미디어와 일상생활 속에서 만연한 가부장적 가치관과 성적 대상화, 강요된 성역할은 아이에게 내재화되어 성차별적 사고를 확대 재생산한다. 



학창시절에 너무나 흔하게 접했던 아이스께끼나 똥침과 같은 장난도 심각한 성적 폭력이 될 수 있다 지적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여성인 나도 저런 행동을 '아이들 장난' 정도로 치부하며 잘못된 성관념을 내재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성교육에 보수적인 분위기도 성평등 사회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한다. AV와 같은 남성 우위의 판타지로 성관계를 접한 남자 아이들은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법을 잊는다. 게다가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도 조장한다. 올바른 성교육은 내 몸과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포괄적 성교육이며 성폭력이 얼마나 타인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폭력적 행위인지를 인지하고, 이런 잘못된 행위를 분별해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 저자는 설명한다. 



책 속에는 연애 상담을 해주며 젠더 문제에 대한 여러 저서를 낸 작가, 젠더 평등적인 성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초등학교 교사, 저자와 같이 아들을 키우는 배우이자 칼럼리스트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특히 엄마로서 아들을 기르며 마주하게 된 이슈(성교육, 편견, 포르노 콘텐츠 등등)에 대응하는 법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마지막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전 팁을 얻었다고나 할까.



내 아들이 젠더감수성이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는 세상에서 올바른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긴, 그래서 나 또한 같은 마음으로 읽게 된 유익한 책이었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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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로컬 콘텐츠의 힘
모종린 지음 / 알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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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역 문화콘텐츠 진흥 기관에서 로컬 창작자를 양성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느꼈던 아쉬운 점은 '지역'이라는 말에 너무 천착한 나머지 상업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콘텐츠들이 지원사업을 타먹기 위해 일회성으로 만들어지는, 관 주도 정책의 한계였다. 매력적인 골목들은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지역의 이미지를 잘 딴 브루어리 하나가 성공하고 그 주변에 힙스터들이 사랑할 법한 다양한 파생 가게들이 들어서며 하나의 훌륭한 상권을 조성하는 것. 말은 쉽지만 잡초처럼 생겨난 이 상권이 그럴듯한 야생화 정원이 되기는 무척 어렵다. 



이 책은 잡초밭을 그럴싸한 야생화 정원이 될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정책적인 방향에서 고민해보고 우리 로컬 경제의 미래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제안하고 있다.  



저자인 모종린 교수는 우리나라의 골목상권, 로컬 경제 전문가이다. 이미 골목상권과 로컬 경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을 여럿 썼다. 사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라는 이 책만 놓고 봤을 때 오해하기 쉬운 건 가볼 만한 힙한 동네를 소개하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그 매력을 분석하는 정도의 가벼운 트렌드 서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약간 그렇게 오해했다. 예상보다 더 전문적이었고, 학술적이었으며, 로컬 비즈니스를 위한 정책 연구와 창업에 대해 실질적인 가이드를 주는 책이었다. 



로컬과 로컬 비즈니스의 부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인해 더욱 촉발되기도 했지만 탈산업화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개성으로 경쟁하는 탈물질주의, 탈산업화시대에는 더 이상 획일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비즈니스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점차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이 속한 생활권을 중심으로 더 다양한 경험과 유니크한 가치를 얻고자 한다. 로컬 비즈니스는 더 많은 산업과 사람들을 연결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제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핵심에는 지역 문화와 경제를 혁신시킬 로컬 크리에이터가 있다.


삶의 질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도시는 사람 중심의, 보행자 도시이자 구도심의 매력과 유일성을 간직한 도시 재생 도시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각 지방에 신도시를 우후죽순 건설하고 있는데, 어디를 가도 분당이나 판교 신도시를 본 따 만든 듯한 외관은 그 지역에 창의적인 인재들을 유입시킬 어떤 매력도 제시하지 못한다. 게다가 신도시와 구도심 재생 사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어 가뜩이나 유동인구가 적은 지역을 분산시키고 있다. 저자는 대도시는 분산, 소도시는 집중이 필요하다 강조한다.



내가 살던 지역 근처에는 꽤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히는 거리가 하나 있는데, 실상은 유동인구가 없는 죽은 골목이다. 거리 외관만 재생되었을 뿐 사람들을 모여들지 못하게 하는데, 이 책에서 꼬집은 원인이 사뭇 공감이 갔다. 저자는 브랜드가 된 동네에 대해 차별화 30: 편리성 70의 법칙을 제시한다. 지역색만 강조해서는 죽어버린 전시장 밖에 되지 않는다. 걷고 싶은 거리이면서 글로벌 브랜드와 같은 익숙한 편리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 거리는 예술가들을 억지로 한 데 데려다 놓았지만 사람들이 즐길만한 편의시설은 태반 부족하다. 거리 전체가 체험보다는 눈요기 중심이니 한번쯤은 가볼만해도 자주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로컬 비즈니스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로컬 크리에이터의 유형을 분석한 것은 '지역'이라는 키워드에 함몰되지 않고 실질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자생할 수 있는 로컬 경제를 만들어가는 데 꽤 필요한 작업인 것 같다. 지원사업에 대한 방향성을 보다 다양하게 검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로컬 크리에이터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로컬 크레에이터는 골목의 소상공인과 어떻게 다른가?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닮은 지역과 함께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한다. 그들에게 '나다움'은 자신만의 콘텐츠다. 이런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면 확실히 그 공간은 보다 창의적이고 유니크한 에너지가 넘쳐날 것이다. 공간에 대한 매력도는 상승하고 그 매력은 브랜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잠재적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위해 공간 선정부터 운영 방식까지 창업 형태들을 분류하고 각 비즈니스모델의 국내외 실제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가졌던 회의적인 생각은 '지방은 뭘 해도 어렵다'라는 것이었다. 책 초반에 소개하고 있는 매력적인 골목들은 대다수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 인구 밀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 지역을 대표할 산업이 광역 주도로 선정되고 이를 몰개성적으로 수행해가는 정책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방에는 자주 찾는 거리라기보단 관광자원으로 존재하는 골목이 간헐적으로 관광객을 받아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런 거리도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지역에 청년들을 머물게 하고, 살고 싶어지게 하는데는 역부족이다. 심지어 이런 거리도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가 관의 예산이 투입되어 변질되는 케이스도 종종 보아왔다. 



저자가 한국의 포틀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주목하는 '강릉'의 사례는 그래서 희망적이다. 저자는 '포틀랜드의 힙스터 산업과 독립 산업이 지역의 전통문화가 아니 듯이 강릉이 활용해야 할 지역문화가 반드시 전통문화일 필요는 없다'며, 강릉을 대표하는 산업도 외부에서 수입된 '인공적인' 지역문화라고 밝힌다. '창조적이고 작은 메이커의 도시' 포틀랜드처럼 강릉도 지역 음식과 수제맥주, 커피 등의 아이템으로 매력적인 브랜드가 만들어졌고, 전국적으로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있다. 게다가 각 동네마다 매력이 가득하고, 이 동네를 운영해 나가는 주민 문화도 강하다고 한다. 


초반에 한계라고 느꼈던 '지역문화'와 '지역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로컬 크리에이터가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 매력적인 도시는 하나의 키워드로 집결된 '먹자골목'이 아닌 차별화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편의성이 제공되는 골목을 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지역의 청년들도 높아진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을테니까. 부디 한국에 더 많은 매력적인 도시들이 생겨나서 어디에 살아도 자신의 창의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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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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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으로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재능으로 세계에 속한다는 실존적인 상태가 인생을 실현하는 데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명성이나 성공보다 훨씬 가치 있으며, 개인적인 애정이나 그 애정에서 비롯되는 탐욕스러운 애착보다 훨씬 관대하며, 행복이나 행복에서 비롯되는 혼란스러운 목표보다 훨씬 적확하다."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 p833 / 다른



800페이지가 넘는 이 방대한 책을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인간에 대한 모자이크화나 테피스트리라고 칭한 이 책의 홍보문구도 이 책을 표현하는데 적확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책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민들레 홀씨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존재했지만 왠지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줄기에 몽글몽글하게 꽂혀있던 홀씨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서 누군가의 마음 속에 심어진다. 유난히 강렬한 노란색 표지 때문일까, 지금도 이 씨앗들이 때가 되면 발아되어 노란 민들레가 되는 모습을, 온 천지를 뒤덮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행성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책은 <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레이철 카슨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이름을 타이틀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인류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과학자, 예술가, 작가 등의 수 많은 선구자들이 등장한다. 그 중 책에서 특별히 조명하고 있는 인물 대부분은 여성이고 성 소수자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인 분야에서 최초의 여성 타이틀을 다는 인물들이 여성 성 소수자들이라는 사실은 성 소수자들이 특별히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났다기 보다는 그녀들이 집안의 평범한 '여편네'에 머물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고 동의해주는 수동적인 역할을 거부했으며, 자기 주장으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자신의 혜성을 발견한 여성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 미국 여성 최초로 <트리뷴>의 편집자가 된 여권 운동가 마거릿 풀러, 해부학을 전공하고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미국 여성 최초 조각가 해리엇 호스머,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한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그녀의 삶을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웅장해졌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이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길을 개척한 여성이라는 존재만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연대한다.  


이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전기로 엮으며 저자는 그녀들의 삶을 때로는 좌절하게 만들고, 때로는 지탱시키기도 했던 사랑에 대해, 그들 사이에 오갔던 편지를 바탕으로 무척이나 세심하게 다룬다. 


이 사랑들은 기쁨과 환희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불안과 집착, 거절의 공포, 비참함을 보여주기도 해서 그녀들이 이룬 위대한 성과에 얼룩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리아 포포바는 왜 이런 치부 같은 사실까지 다루는 걸까? 보는 동안 의아했던 부분은 이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예술은 예술가의 전 존재, 마거릿 풀러가 우리 "존재의 충만함"이라 부른 것에서 탄생한다. 

그 안의 어떤 요소도 전체와 관련 없다며 잘라낼 수 없다.

예술이라는 외면을 창조하는 내면의 풍부함과 복잡함을 이해하는 일은 예술 자체 그리고 예술과 나눌 수 없는 자아를 한층 더 풍성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 p630 / 다른



자아를 한층 풍성하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녀들을 겹겹이 둘러싼 모든 장면들을 세세하게 본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은 일반적인 전기와 사뭇 다르다. 모자이크화, 테피스트리라는 설명처럼 한 인물의 전기를 펼치는 가운데 시간과 공간을 튀어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집어 넣는다. 한가지 색으로 직조되고 있던 테피스트리에 색다른 컬러의 실을 집어 넣는달까? 읽는 동안에는 이질적인 이 구성은 전체를 볼 때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인간의 삶은 거대한 우주와 자연 앞에서 한 없이 겸허해지고, 사소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 깨닫게 된다.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 못지 않게 이 책이 중요하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건 과학과 시, 예술 간의 상호작용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주와 자연가 시적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저자 마리아 포포바의 문장이 워낙 수려하기도 하지만 월트 휘트먼, 왈도 에머슨, 에밀리 디킨슨 등의 미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인들의 노래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시어의 아름다움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도 그 감성이 몰려와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마거릿 풀러라는 당시에 생각지도 못할 만큼 진일보한 여권을 주장했던 멋진 인물과 이름은 들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정말 <피너츠> 속 루시의 표현대로 '여성의 롤모델'이 되기 충분한 레이첼 카슨의 삶을 알게 되어 행복했다. 그녀들이 남긴 족적 위로 우리가 자유롭게 걷고 있는 것이리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모자이크화라는 색다른 구성과 차별과 편견의 벽을 부수고 자신의 길을 오롯이 걸어간, 여성이라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선구자들의 이야기, 밑줄 긋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들, 정말 매력적인 독서 경험이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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