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로컬 콘텐츠의 힘
모종린 지음 / 알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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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역 문화콘텐츠 진흥 기관에서 로컬 창작자를 양성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느꼈던 아쉬운 점은 '지역'이라는 말에 너무 천착한 나머지 상업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콘텐츠들이 지원사업을 타먹기 위해 일회성으로 만들어지는, 관 주도 정책의 한계였다. 매력적인 골목들은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지역의 이미지를 잘 딴 브루어리 하나가 성공하고 그 주변에 힙스터들이 사랑할 법한 다양한 파생 가게들이 들어서며 하나의 훌륭한 상권을 조성하는 것. 말은 쉽지만 잡초처럼 생겨난 이 상권이 그럴듯한 야생화 정원이 되기는 무척 어렵다. 



이 책은 잡초밭을 그럴싸한 야생화 정원이 될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정책적인 방향에서 고민해보고 우리 로컬 경제의 미래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제안하고 있다.  



저자인 모종린 교수는 우리나라의 골목상권, 로컬 경제 전문가이다. 이미 골목상권과 로컬 경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을 여럿 썼다. 사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라는 이 책만 놓고 봤을 때 오해하기 쉬운 건 가볼 만한 힙한 동네를 소개하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그 매력을 분석하는 정도의 가벼운 트렌드 서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약간 그렇게 오해했다. 예상보다 더 전문적이었고, 학술적이었으며, 로컬 비즈니스를 위한 정책 연구와 창업에 대해 실질적인 가이드를 주는 책이었다. 



로컬과 로컬 비즈니스의 부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인해 더욱 촉발되기도 했지만 탈산업화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개성으로 경쟁하는 탈물질주의, 탈산업화시대에는 더 이상 획일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비즈니스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점차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이 속한 생활권을 중심으로 더 다양한 경험과 유니크한 가치를 얻고자 한다. 로컬 비즈니스는 더 많은 산업과 사람들을 연결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제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핵심에는 지역 문화와 경제를 혁신시킬 로컬 크리에이터가 있다.


삶의 질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도시는 사람 중심의, 보행자 도시이자 구도심의 매력과 유일성을 간직한 도시 재생 도시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각 지방에 신도시를 우후죽순 건설하고 있는데, 어디를 가도 분당이나 판교 신도시를 본 따 만든 듯한 외관은 그 지역에 창의적인 인재들을 유입시킬 어떤 매력도 제시하지 못한다. 게다가 신도시와 구도심 재생 사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어 가뜩이나 유동인구가 적은 지역을 분산시키고 있다. 저자는 대도시는 분산, 소도시는 집중이 필요하다 강조한다.



내가 살던 지역 근처에는 꽤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히는 거리가 하나 있는데, 실상은 유동인구가 없는 죽은 골목이다. 거리 외관만 재생되었을 뿐 사람들을 모여들지 못하게 하는데, 이 책에서 꼬집은 원인이 사뭇 공감이 갔다. 저자는 브랜드가 된 동네에 대해 차별화 30: 편리성 70의 법칙을 제시한다. 지역색만 강조해서는 죽어버린 전시장 밖에 되지 않는다. 걷고 싶은 거리이면서 글로벌 브랜드와 같은 익숙한 편리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 거리는 예술가들을 억지로 한 데 데려다 놓았지만 사람들이 즐길만한 편의시설은 태반 부족하다. 거리 전체가 체험보다는 눈요기 중심이니 한번쯤은 가볼만해도 자주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로컬 비즈니스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로컬 크리에이터의 유형을 분석한 것은 '지역'이라는 키워드에 함몰되지 않고 실질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자생할 수 있는 로컬 경제를 만들어가는 데 꽤 필요한 작업인 것 같다. 지원사업에 대한 방향성을 보다 다양하게 검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로컬 크리에이터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로컬 크레에이터는 골목의 소상공인과 어떻게 다른가?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닮은 지역과 함께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한다. 그들에게 '나다움'은 자신만의 콘텐츠다. 이런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면 확실히 그 공간은 보다 창의적이고 유니크한 에너지가 넘쳐날 것이다. 공간에 대한 매력도는 상승하고 그 매력은 브랜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잠재적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위해 공간 선정부터 운영 방식까지 창업 형태들을 분류하고 각 비즈니스모델의 국내외 실제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가졌던 회의적인 생각은 '지방은 뭘 해도 어렵다'라는 것이었다. 책 초반에 소개하고 있는 매력적인 골목들은 대다수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 인구 밀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 지역을 대표할 산업이 광역 주도로 선정되고 이를 몰개성적으로 수행해가는 정책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방에는 자주 찾는 거리라기보단 관광자원으로 존재하는 골목이 간헐적으로 관광객을 받아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런 거리도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지역에 청년들을 머물게 하고, 살고 싶어지게 하는데는 역부족이다. 심지어 이런 거리도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가 관의 예산이 투입되어 변질되는 케이스도 종종 보아왔다. 



저자가 한국의 포틀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주목하는 '강릉'의 사례는 그래서 희망적이다. 저자는 '포틀랜드의 힙스터 산업과 독립 산업이 지역의 전통문화가 아니 듯이 강릉이 활용해야 할 지역문화가 반드시 전통문화일 필요는 없다'며, 강릉을 대표하는 산업도 외부에서 수입된 '인공적인' 지역문화라고 밝힌다. '창조적이고 작은 메이커의 도시' 포틀랜드처럼 강릉도 지역 음식과 수제맥주, 커피 등의 아이템으로 매력적인 브랜드가 만들어졌고, 전국적으로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있다. 게다가 각 동네마다 매력이 가득하고, 이 동네를 운영해 나가는 주민 문화도 강하다고 한다. 


초반에 한계라고 느꼈던 '지역문화'와 '지역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로컬 크리에이터가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 매력적인 도시는 하나의 키워드로 집결된 '먹자골목'이 아닌 차별화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편의성이 제공되는 골목을 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지역의 청년들도 높아진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을테니까. 부디 한국에 더 많은 매력적인 도시들이 생겨나서 어디에 살아도 자신의 창의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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