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발견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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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으로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재능으로 세계에 속한다는 실존적인 상태가 인생을 실현하는 데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명성이나 성공보다 훨씬 가치 있으며, 개인적인 애정이나 그 애정에서 비롯되는 탐욕스러운 애착보다 훨씬 관대하며, 행복이나 행복에서 비롯되는 혼란스러운 목표보다 훨씬 적확하다."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 p833 / 다른



800페이지가 넘는 이 방대한 책을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인간에 대한 모자이크화나 테피스트리라고 칭한 이 책의 홍보문구도 이 책을 표현하는데 적확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책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민들레 홀씨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존재했지만 왠지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줄기에 몽글몽글하게 꽂혀있던 홀씨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서 누군가의 마음 속에 심어진다. 유난히 강렬한 노란색 표지 때문일까, 지금도 이 씨앗들이 때가 되면 발아되어 노란 민들레가 되는 모습을, 온 천지를 뒤덮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행성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책은 <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레이철 카슨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이름을 타이틀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인류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과학자, 예술가, 작가 등의 수 많은 선구자들이 등장한다. 그 중 책에서 특별히 조명하고 있는 인물 대부분은 여성이고 성 소수자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인 분야에서 최초의 여성 타이틀을 다는 인물들이 여성 성 소수자들이라는 사실은 성 소수자들이 특별히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났다기 보다는 그녀들이 집안의 평범한 '여편네'에 머물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고 동의해주는 수동적인 역할을 거부했으며, 자기 주장으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자신의 혜성을 발견한 여성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 미국 여성 최초로 <트리뷴>의 편집자가 된 여권 운동가 마거릿 풀러, 해부학을 전공하고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미국 여성 최초 조각가 해리엇 호스머,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한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그녀의 삶을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웅장해졌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이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길을 개척한 여성이라는 존재만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연대한다.  


이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전기로 엮으며 저자는 그녀들의 삶을 때로는 좌절하게 만들고, 때로는 지탱시키기도 했던 사랑에 대해, 그들 사이에 오갔던 편지를 바탕으로 무척이나 세심하게 다룬다. 


이 사랑들은 기쁨과 환희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불안과 집착, 거절의 공포, 비참함을 보여주기도 해서 그녀들이 이룬 위대한 성과에 얼룩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리아 포포바는 왜 이런 치부 같은 사실까지 다루는 걸까? 보는 동안 의아했던 부분은 이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예술은 예술가의 전 존재, 마거릿 풀러가 우리 "존재의 충만함"이라 부른 것에서 탄생한다. 

그 안의 어떤 요소도 전체와 관련 없다며 잘라낼 수 없다.

예술이라는 외면을 창조하는 내면의 풍부함과 복잡함을 이해하는 일은 예술 자체 그리고 예술과 나눌 수 없는 자아를 한층 더 풍성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 p630 / 다른



자아를 한층 풍성하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녀들을 겹겹이 둘러싼 모든 장면들을 세세하게 본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은 일반적인 전기와 사뭇 다르다. 모자이크화, 테피스트리라는 설명처럼 한 인물의 전기를 펼치는 가운데 시간과 공간을 튀어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집어 넣는다. 한가지 색으로 직조되고 있던 테피스트리에 색다른 컬러의 실을 집어 넣는달까? 읽는 동안에는 이질적인 이 구성은 전체를 볼 때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인간의 삶은 거대한 우주와 자연 앞에서 한 없이 겸허해지고, 사소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 깨닫게 된다.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 못지 않게 이 책이 중요하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건 과학과 시, 예술 간의 상호작용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주와 자연가 시적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저자 마리아 포포바의 문장이 워낙 수려하기도 하지만 월트 휘트먼, 왈도 에머슨, 에밀리 디킨슨 등의 미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인들의 노래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시어의 아름다움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도 그 감성이 몰려와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마거릿 풀러라는 당시에 생각지도 못할 만큼 진일보한 여권을 주장했던 멋진 인물과 이름은 들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정말 <피너츠> 속 루시의 표현대로 '여성의 롤모델'이 되기 충분한 레이첼 카슨의 삶을 알게 되어 행복했다. 그녀들이 남긴 족적 위로 우리가 자유롭게 걷고 있는 것이리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모자이크화라는 색다른 구성과 차별과 편견의 벽을 부수고 자신의 길을 오롯이 걸어간, 여성이라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선구자들의 이야기, 밑줄 긋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들, 정말 매력적인 독서 경험이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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