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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스키가 간다 -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한재호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 언젠가 을지로 일대가 식당이 괜찮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명동에서 음식을 사먹는 건 욘사마를 보러 온 바보들 뿐이라고,"

episOde,1 한재호_부코스키가 간다
말도 안돼,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끝내는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끝까지
말을 안해, 부코스키의 그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혹여나 치즈를 베어 물다 그의 이름을 얼핏 듣는다면 맥아나 기타 곡류를 발효시켜 1차주를 다시 증류하여 만든 술 같은 냄새가 난다, 그러니까 이름부터 냄새가 난다는 부코스키의 (보장슈퍼를 출발, 종로3가, 여의나루, 강남역, 이대입구, 코엑스를 거점으로 하는) 발자취를 활자로 쫒았다, 그리고 줄곧 궁금했다,
뭐, 육하원칙의 틀을 빌린다면
1.부코스키는,
2.비오는 날 아침 아홉시,
3.서울 거리를,
4.목적과
5.이유를 검은 우산으로 가린 채,
6.걸어다니는 것인가?
정말로 그저 괜히 비오는 거 좋아하는 별 미친놈 중에 하나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얘 뭐야 이거,??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져서 삼삼오오 떠들어 대는 호프집 안주거리 같은 질문들, 시원한 생맥주 같은 해답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결국 남아 있는 것은 또 안주거리 같은 질문들, 그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부코스키를 상대로 한 나의 맨체이싱 게임,
이 소설에 매력을 느낀 것은 책 넘김이 시원한 '해답'을 주기 보다는 오뎅탕에 이어 노가리를 물고 서비스로 계란찜이 따르는 듯한 '질문'을 던져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치열할수록 만족 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치열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럼 젠장,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건가? 정말이지,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행복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돌아본다, 왜 무엇에 쫒기는 듯 불안한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인생극에 있어 청춘이라는 카테고리는 쫒고 쫒기는 고리의 연속극 이라는 생각이다, 무엇을 쫒음으로 인해 무엇에 쫒기는 인생,
십대 생활을 대변해 줄 학벌을 쫒고,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연봉을 쫒고, 부모님 기대에 저버리지 않을 만한 남자를 쫒고, 남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유행을 쫒고, 쫒다보니, 잠에 쫒기고, 지하철 시간에 쫒기고, 월세에 쫒기고, 엄마 잔소리에 쫒기고, 이력서 마감일에 쫒기고, 인스턴트 음식의 유통기한에 쫒기는 삶이라니, 아무렴, 말도 안돼,
라는 말은 스스럼없이 튀어 나올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알 수 없다, 내가 쏟아 내는 질문들은 어쩌면 질문할 수는 있으나 대답은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부코스키도, 그를 쫒는 나도, 그런 나를 쫒는 검은 우산도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부코스키에게 달려가서 당신은 누구냐고 도대체 어딜 가느냐고 물어보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룰을 지키기 위해서 일수도 있겠으나 사실, 부코스키는 벙어리 일지도 모른다, 또는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한 마리의 능구렁이라는 것을, 나는 간파했다,
그러고 보니 '각자 해석한 만큼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이거 참으로 이 누군가란 사람, 왠지 '프로'의 냄새가 난다, 부코스키의 세계에서도 역시나 '프로'는 존재 한다는 생각이다, '아마추어' 인 나로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 맞설 나의 비장한 포부를 밝힌다면, 나는 '뒤돌아 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만이다', 라는 생각이다,
내일도 개에 쫒기는 수탉처럼 깨어나 나의 생활에 만연해 있는 부코스키를 쫒을 생각이다,
그리고 쫒다보면, 다른 부코스키들도 주변에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간신문을 펼치고 쓰리 콤보의 하품을 해 댈수록, 지하철 플랫폼을 돌아보는 처진 어깨에 얹힌 목이 자라를 연상 시킬수록, 토스트를 베어 문 입가에 케첩이 묻을수록, 듬성한 속눈썹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질수록, 왠지, 안면이라도 트고 싶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서 소량의 산소를 흡입하고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해내며 질문하지 않고도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유일무이의 의사소통,
A: 당신도, 부코스킵니까?
B: 네, 부코스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