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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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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 

                                                                                   

     

episOde,7 신경숙_엄마를 부탁해 








              
엄마, 

 
작년 한 해 동안 이 책의 열풍이 대단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어, 많은 사람 손을 거쳐갔다는 것은 그 만큼 읽는 재미가 보장된다는 것이었겠으나 내 손끝에는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였거든, 교보의 진열대에서도, 꿈에 그린 도서관에서도 언제나 시선이 머물기는 하였으나 관심은 그것으로 끝이었던 거지, 

어렸을 적 친구내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놀다가 문득 엄마에게로 돌아갈 시간이다 라는 것을 감지 할 때가 있었어, 지금 돌아 가지 않으면 엄마에게 혼이 나, 는게 아니라 엄마가 집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하고도 그래서 이상한 엄청난 불안감,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친구와 무슨 놀이를 했던 건 더듬어도 만져지지 않고 오로지 떠오르는 것은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과 그 아래로 점점 빨라지는 슬리퍼소리, 그 옆을 빠르게 스쳐가는 건물들, 

그리고 문을 열고 내가 생각했던 그 곳에 있었던 엄마를 보았을 때, 내가 토해냈던 한 뭉텅이의 숨,을 엄마는 보았을까? 

데미안이 한 말이야, 아,데미안은 언제나 나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친구라고 말해둘게,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고, 기필코 어떤 것이 필요하게 되면 그 필요 불가결한 것을 발견하게 마련인데, 그것을 가져다 주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것을 갈구하는 그 사람 자신,이라고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니라 결국 이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나의 욕구에 의한 것이라는 것, 
그런 이유로 나는 어느정도 열풍이 잦아든 뒤에 이 책을 손에 잡았어, 그러니까 나는 지금, 

사람들의 관심에 연연한게 아니라, 그저 
엄마가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야 


또 눈이 내려 많이 내린다 겨울이 이렇게 지나가겠지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된지 2년 이라는 시간이 나무 위에 쌓이는 눈처럼 흐르고 있네 벌써, 
요즘에는 하얗게 내리는 눈과 같은 숨이 마음에 쌓이고 그것들은 그저 호흡에 의해서도 견고하게 뭉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거워서 뱉어내고 싶어도 그러지를 못하겠어, 그때처럼 엄마에게 달려가 문을 열어도 그러하질 못하겠어, 내가 그러지 않아도 엄마는 이미 그때와는 다르게 손에 지고 어깨에 매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 내가 그러지 않아도, 

어릴적의 그 막연하고 이상하고 엄청난 불안감이 이제는 구체적이고 뚜렷한 현실적인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까, 


있지, 

빨래를 헹굴때 엄마가 집에서 쓰는 '핑크센세이션 샤프란'을 똑같이 들어부어도 엄마의 냄새가 아니고, 점심으로 시켜먹는 된장찌개에는 감칠맛이 아닌 미원맛이나, 엄마의 손맛은 다시다로도 대신할 수 없는 건가봐, 

엄마는 저녁으로 올려진 찬거리가 맛있다고 하면, 언제나 이것은 어디에서 사왔으며 조리과정은 어떻고 저떻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아리를 틀었지, 
아, 또 시작이야, 알았어, 그만 밥풀 튀기고 밥먹자고 그러면, 썩을년이라고 썩은 미소를 지어보이던 엄마, 
그토록 지겹고 귀딱지로만 여겨지던 높낮이가 울퉁불퉁 했던 억양의 목소리와 도무지 이성적으로 받아 칠수 없어 뽄새없다고 여겼던 말투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지난 날의 엄마와의 소통들에서, 엄마는 또한 나의 목소리와 말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지난가을까지만 해도 너는 너의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엄마가 화났을 때 어떻게 해야 누그러지는지, 엄마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누가 지금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고사리를 말리고 있을걸요, 일요일이니 성당에 가셨겠는데, 십초 내에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의 생각은 지난가을에 조각이 났다. 엄마에게 너란 존재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엄마가 네 앞에서 집을 치울때였다. 어느날부턴가 엄마는 방에 떨어진 수건을 집어 걸었고, 식탁에 음식이 떨어지면 얼른 집어냈다. 예고 없이 엄마 집에 갈 때 엄마는 너저분한 마당을, 깨끗하지 못한 이불을 연방 미안해했다. 냉장고를 살피다가 네가 말려도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엘 나갔다.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어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혹시 나는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가고 있는거야, 
그런 생각은 나를 참 아프게 해, 한 달만에 집에 갈때마다 엄마는 정말로 깨끗하지 못한 이불을, 뭐하나 싸주지 못하고 퍼주지 못하고 든든히 매겨서 보내지 못하는 것을 연방 미안해 했어, 미안해 했어, 

무조건적인 이해만 하는 '엄마'라는 위치는 다 그런것일까 생각해 보게 했고, 
더불어, 무조건적인 이해만 바라는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역시나, 나도 연방 미안하고 미안했어, 

지난 날, 가계가 어려워지며 주변사람들에게 기를 못들고 아빠와의 단절된 의사소통을 이어보려 노력하고 자식들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엄마의 응어리진 한탄들을 듣고 자라면서, 이제는 엄마를 내 자신에 투영해 보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고, 엄마를 이해해 보자고 생각을 했어 
그럴수록 엄마가 지금 지고 있는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워, 여전히 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기적인 나를 앞으로 엄마는 어떻게 짊어지고 갈까, 


사실, 
이번 주에 내려가서는 엄마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꼭 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주변머리 없는 딸은 또 이렇게 발걸음을 돌렸네, 
마음을 표현할 줄도 모르는 무뚝뚝한 썩을년이라고, 키워봤자 좋은소리도 못 듣는 내가 미친년이라고 하지마, 
그럴수만 있다면 이 썩을년은 평생_엄마 마음에 보일러라도 놔주고 싶어, 엄마, 

 
 

 . . . 

 이 책의 책장를 넘기면서 
사람들이 철이 든다고 하는 것은 
'엄마' 를 처음부터 엄마가 아닌, 
'엄마'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개체를 인정할 때 인 것 같다,라고 
책에서 시선을 거둔 채 가만히 생각을 한다. 
문을 열면,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연방 고맙고 또 그래서,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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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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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있는 한계라면 극복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episOde,5  한비야_ 그건, 사랑이었네
 



 

 

'지식인의 서재'의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는 인터뷰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섯 시간 만에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 까요? .. 저는 책 밖에 없는 거 같아요"

                                

                                   '다섯 시간 만에 경험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



내 마음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말,  

아날로그 항해일지에 깊이 새겨넣은 말,  

책의 바다에서 숨을 쉬는 나의 항해의 목적,

 

비야언니의 목소리는 그때 처음 들었는데 말이 굉장히 빠르고 격양됐다, 평면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런 예상을 뒤집는 현실은 언제나 묘미가 있다, 비야 언니는 남들 보다 심장이 두 배는 더 빠르게 뛰는 건지, 주저 없이 서슴지 않고 떠들어 댔던 언니가 뱉어냈던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흩어지지않는 묘한 뭉침과 끈기가 있었다,  

이런 호감의 고리로, 비야언니를 교보에서 쉽게 만났다, 그리고 챙겨왔다, 교보에서 호기심으로 몇 자 읽어보다가, 페이지 넘김에 흥미가 붙어서 아예 머리맡으로 데리고 왔다, 읽는 동안에 책 속 활자들은 그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심장이 두배 정도 빨라 질듯이 춤을 추었다, 그것은 더 이상 글이 아니고 비야언니의 말이었다, 그 빠르고 격양된 참말이지 재미있는 목소리는, 그래서 큰 위안이 되었다,
진짜로 언니삼고 싶을 만큼
, 

 
'우선 좋은 글을 향한 기본적인 몸부림은 다들 알고 있듯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常量)이다.
이 '삼다'와 더불어 나는 다록(多錄)을 추가하고 싶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잘 기록해 놓는 일 말이다. 기억은 지나고 나면 사건의 골자, 즉 뼈대만 남기지만 기록은 감정까지 고스란히 남긴다 
   

                                                                *

그래서 결국에 글로 쓰는 것은 지금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주제, 그것도 회근에 몰두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이다.

                                                                *

일단 글을 쓴 후에는 전문을 큰소리로 읽고 또 읽는다, 글이란 결국은 운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문장 안에 고저와 장단이 있어야 자연스럽고 전달이 잘된다. 소리 내서 읽으면 이런 점이 잘 드러나서 껄끄럽거나 어색한 부분을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장뿐만 아니라 내용 점검도 말로 풀어서 하면 훨씬 쉽다.'



비야 언니의 글은 술술 잘 읽힌다, 활자들이 언니의 목소리에 춤을 추었던 것은 이러한 언니의 정성이 배여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아, 또 언니 삼고 싶다, 닮고 싶다, 배울 점도 많다, 
감정을 남긴다, 지금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주제와 담화를 나눈다, 읽지 않고 말을 한다,
이것들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항해의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고통과 뉘우침들, 
그리고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들,을                 비야언니는 어떻게 다 알고 있었던 거지?


 


 


 역시나 위대한 경험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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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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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ce 와 change'

  episOde,2  이해경_그녀 조용히 살고있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떠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막연히'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는 한 문학 평론가의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쓴다면,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살기 위해 밥을 먹듯이, 살아가기 위한 수단 또는 도구로써, 온전히 견뎌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니까 어쩌면 말이다,

'과거는 그에게 언제나 후회막급이었다. 그래서 그는 공상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막을 수 없는 후회를 비키는 방법은 정반대의 과거를 상상해보는 공허한 놀이뿐이었다. '

글을 쓰는 것은 상상만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다,
불가능을 상상하는것도 결국은 현실이다, 지금 내가 겪어내고 있는 것에서 비롯되는
불가능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현실,

글을 쓰는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살아온 발차취를 더듬어 내가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만한 화제 거리를 찾아본다,
여기 저기, 기억의 바다를 부유하는 감정의 조각들,

다른 환경에서 살아 왔으나 많은 것이 닮아 있고 그래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내가 그를 친구로서 아끼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 그 사람과의 짧지않은 소통과정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오해했었고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야 '친구'로서 아끼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때의 나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서로에게 '다른' 이유로 상처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과 그렇게 헤어지게 되어, 또는 나의 옆자리의 상실감이 크게 느껴져서 아파했다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했었던 그 시간이 오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해하고 있는 그 사실이, 사랑에 대한 기대감을 무기력하게 했다, 그는 더 이상 나의 꽃이 아니며, 나는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사람의 소통과정에서 '이해 와 오해' 라는 것,

요즘은 나 자신에 엄마를 투영해 보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엄마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의 딸이지만 엄마와의 고리를 부정하고 싶어서 이십년 동안의 엄마와 삼십년 동안의 엄마, 그 이후의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조각품을 360도로 관찰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일 것이며 또는 화폭에 밑그림을 그리고 하나하나 색을 입혀가는 것과 유사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프다, 이해한다 생각하며 오해한듯 행동하고 또는 오해한다 생각하며 이해한듯 행동하는, 그 모호한 이해와 오해의 경계의 삶을 견딜 수 있다면,
견뎌 낼 수 있다면 대신 글을 써 줄 요량이다, 나는 엄마를 대신하여,

그런 생각으로 글을 읽어 나가다 마주하게 된 문장이 있었다

 
'그의 뒷덜미를 잡고 놓지 않은 꺼림칙한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그 사실무근일지도 모를소설이, 만에 하나 누군가에게 해가 된다면?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 소설을 사실로 읽든 허구로 읽든 읽다가 팽개치든 개의할 바 아니었으나, 자기를 아는 사람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에게 끼칠 파장을 무시해도 좋을 것인가, 만에 하나 아물었던 그들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면,
소설의 이름으로 그런 만행을 저질러도 되는 것일까. 그때 가서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잡아뗀들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드러내고 나머지는 감추면 될 것인가. 그 경계는 대체 어디쯤일까. 그런 게 있기라도 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니, 혼란에 빠진다, 글을 쓰려고 펜을 들고 나는, 이라 운을 떼고 생각해보니 혼란에 빠진다, 나의 고통을 덜어내기위한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내가 덜어낸 고통을 대신 짊어지게 하려고 글을 쓴다,는 내가 그런 심판적인 위치에 서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이것을 양심 속 일말의 가책이라고 해야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양심껏 글을 써야 하는 것인지, 누구나에게 보이기위한 착한 글을 써야 하는지, 검사받는 만점짜리 일기라도 쓸 참이었는지, 결국은 날 포장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덮어두고 싶은 현실을 글로써 미화하려고 했었는지, 나도 참 알 수 없었다,

"완전한 허구라는 건 어떤 거야?"
"쓰는 나에게 허구로 느껴지는 소설. 그래야 남들도 봐줄 만하지 않겠니."

아무래도, 남들이 봐줄 만한 글을 쓰는 것은 무리다, 

 
'그녀는 알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변변한 문장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덮어둔 채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품을 파는 것으로 해치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쓰는 사람이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 누르고 짓이길 때 터져나오는 창자 더미 같은 것. 자신의 실존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결행 끝에 대면하게 될 정직한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 최소한, 생활의 굴레 속에 안주하는 비굴함에 기대어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은 절대로 아니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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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스키가 간다 -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한재호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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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을지로 일대가 식당이 괜찮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명동에서 음식을 사먹는 건 욘사마를 보러 온 바보들 뿐이라고,"









episOde,1 한재호_부코스키가 간다



말도 안돼,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끝내는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끝까지
말을 안해, 부코스키의 그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혹여나 치즈를 베어 물다 그의 이름을 얼핏 듣는다면 맥아나 기타 곡류를 발효시켜 1차주를 다시 증류하여 만든 술 같은 냄새가 난다, 그러니까 이름부터 냄새가 난다는 부코스키의 (보장슈퍼를 출발, 종로3가, 여의나루, 강남역, 이대입구, 코엑스를 거점으로 하는) 발자취를 활자로 쫒았다,
그리고 줄곧 궁금했다,

뭐, 육하원칙의 틀을 빌린다면
1.부코스키는,
2.비오는 날 아침 아홉시,
3.서울 거리를,
4.목적과
5.이유를 검은 우산으로 가린 채,
6.걸어다니는 것인가?

정말로 그저 괜히 비오는 거 좋아하는 별 미친놈 중에 하나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얘 뭐야 이거,??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져서 삼삼오오 떠들어 대는 호프집 안주거리 같은 질문들, 시원한 생맥주 같은 해답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결국 남아 있는 것은 또 안주거리 같은 질문들,  그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부코스키를 상대로 한 나의 맨체이싱 게임,

이 소설에 매력을 느낀 것은 책 넘김이 시원한 '해답'을 주기 보다는 오뎅탕에 이어 노가리를 물고 서비스로 계란찜이 따르는 듯한 '질문'을 던져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치열할수록 만족 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치열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럼 젠장,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건가? 정말이지,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행복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돌아본다, 왜 무엇에 쫒기는 듯 불안한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인생극에 있어 청춘이라는 카테고리는 쫒고 쫒기는 고리의 연속극 이라는 생각이다, 무엇을 쫒음으로 인해 무엇에 쫒기는 인생,

십대 생활을 대변해 줄 학벌을 쫒고,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연봉을 쫒고, 부모님 기대에 저버리지 않을 만한 남자를 쫒고, 남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유행을 쫒고, 쫒다보니, 잠에 쫒기고, 지하철 시간에 쫒기고, 월세에 쫒기고, 엄마 잔소리에 쫒기고, 이력서 마감일에 쫒기고, 인스턴트 음식의 유통기한에 쫒기는 삶이라니, 아무렴, 말도 안돼,
라는 말은 스스럼없이 튀어 나올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알 수 없다, 내가 쏟아 내는 질문들은 어쩌면 질문할 수는 있으나 대답은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부코스키도, 그를 쫒는 나도, 그런 나를 쫒는 검은 우산도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부코스키에게 달려가서 당신은 누구냐고 도대체 어딜 가느냐고 물어보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룰을 지키기 위해서 일수도 있겠으나 사실, 부코스키는 벙어리 일지도 모른다, 또는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한 마리의 능구렁이라는 것을, 나는 간파했다,

그러고 보니 '각자 해석한 만큼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이거 참으로 이 누군가란 사람, 왠지 '프로'의 냄새가 난다, 부코스키의 세계에서도 역시나 '프로'는 존재 한다는 생각이다, '아마추어' 인 나로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 맞설 나의 비장한 포부를 밝힌다면, 나는 '뒤돌아 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만이다', 라는 생각이다,

내일도 개에 쫒기는 수탉처럼 깨어나 나의 생활에 만연해 있는 부코스키를 쫒을 생각이다,
그리고 쫒다보면, 다른 부코스키들도 주변에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간신문을 펼치고 쓰리 콤보의 하품을 해 댈수록, 지하철 플랫폼을 돌아보는 처진 어깨에 얹힌 목이 자라를 연상 시킬수록, 토스트를 베어 문 입가에 케첩이 묻을수록, 듬성한 속눈썹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질수록, 왠지, 안면이라도 트고 싶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서 소량의 산소를 흡입하고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해내며 질문하지 않고도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유일무이의 의사소통, 


 

 A: 당신도, 부코스킵니까?

B: 네, 부코스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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