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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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핸드폰에 경보 문자가 잔뜩 와있다.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고 있다는 알림이다. SNS에 들어가 보니 세상은 난리 통이고, 방문 밖에서는 이미 좀비로 변한 엄마가 방문을 쾅쾅 치고 있다. 이때 좀비 엄마를 해치우고(?) 탈출할 수 있을까? 나는 아마도 못 할 것 같다. 좀비가 되어버린 엄마도 내가 사랑하는 엄마인데, 엄마를 해치우기보다는 엄마한테 물리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김중혁의 좀비들은 좀비들 틈에서 살아남는 생존 서바이벌이라기보다 한때 가족이었던 좀비 몸의 상처를 보며 슬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자, 여러 이별과 만남을 거듭하며 한층 단단해지는 주인공의 성장 소설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이 변화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채지훈은 초반에 자신의 기분을 1에서 10까지의 숫자로 표현했지만 뚱보 130과 홍혜정을 만나고부터는 그 숫자가 의미를 잃는다. 엄마와 형의 죽음에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주인공이 홍혜정의 죽음은 진심으로 슬퍼하고 그리워할 줄 알게 되고 좀비로 변한 뚱보130을 불구덩이에서 구하기 위해 몰아닥치는 좀비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10년에 출간된 책인 만큼 철 지난 내용이기는 하지만 김중혁 작가의 유머와 상상력이 소설 전체에 퍼져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내용 간의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는 듯하다. 줄거리 요약을 하는 데 연결이 뚝뚝 끊겨 그러던 어느 날없이는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삶은 일직선이었다. 하나의 사건은 이전 사건의 결과이자 다음 사건의 원인이었다.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모든 사건은 연결돼 있었다. 맨 처음 도미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이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서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이 사건은 또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 P23

외로움 때문에 내 기분은 오래간만에 1로 떨어졌지만 예전의 1과는 달랐다. 예전의 1이 1에다 1을 백번 정도 곱해서 나온 결과였다면, 그날밤의 1은 3에서 2를 뺀 1이었다. - P77

그중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문제가 전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닥칠 수도 있었다. 어떤 문제가 닥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준비해서 막을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을뿐더러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낭비다. 모든 문제에는 답이 붙어 있게 마련이다. 문제가 닥치면 그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그 속에 답이 있으니까. - P87

이해하는 것과 겪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 P102

"무엇이든 일 퍼쎈트만 관심을 더 가지면 많은 게 변해요. 엄마가 현이를 하루에 일분만 더 생각했더라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거예요. 여섯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겠죠."
"그럼 다른 게 바뀌었겠죠. 어차피 모든 가능성은 백 퍼쎈트 이내고, 하루는 이십사 시간뿐이니까요." - P138

우리는 정작 알아야 할 것들은 알아내지 못하고,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139

홍이안은 이야기하는 도중에 미간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농담을 시작하기 전에 주로 그랬다. 미간에서 농담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대륙과 대륙이 뒤틀리는 자리에서 지진이 만들어지듯 눈썹과 코와 이마가 맞부딪치는 자리에서 농담이 발생하는 거다. 그렇게 발생한 농담은 한랭전선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입가로 진출해 턱 쪽의 온난전선과 결합한 다음 얼굴 전체에 웃음을 발생시키는데, 웃음이 시작되면 온몸의 온도가 1도 정도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 P191

충격이란 건 말이죠, 받아들이는 쪽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 일도 아닌 게 될 수 있는 겁니다. - P233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냄새는 바닥에서 낮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앉아 있으니 냄새가 심해졌다. 바닥에 붙어 있던 냄새들이 내 몸을 타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묻으면서 점점 위로 올라와 배와 등과 목을 타고 온몸을 휘감은 다음 결국 코로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338

나는 예전부터 죽음 이후의 삶이 궁금했다. 내가 죽는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면,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한때는 모든 게 부질없게 여겨졌다. 관계란, 사랑이란, 집착이란, 실망이란,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아무것도 시작하고 싶지 않았고, 끝이 뻔히 보이는 길은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일에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처음과 끝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이 사건은 또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죽을 테지만, 누군가는 계속 살아남아서 기적처럼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 P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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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미, 공모, 사바사바 - 도전하는 청춘 최문정의 활똥가 일기
최문정 글.그림 / 산지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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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을 읽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연쇄적으로 생기기도 한다. 이 책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가 그랬다. 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를 읽다가 이 책을 도서 목록에 넣어두었다. 하지만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4년도 더 전에 읽은 책. 내가 왜 이 책을 도서 목록에 넣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한번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를 집어 들었다. ‘행동하고 고민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제목의 제50장을 펼치자마자 하늘색으로 밑줄 쳐진 부분이 보였다.

 

내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했던 많은 행위들이, 타인에게 기만적인 행위로 비쳤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무력감,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이 참으로 바보 같고 하찮아 보이는 데다 열심히 했던 일들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 자책감으로 괴롭기까지 하다. 대체 이 관계의 소통망은 애초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다시 보아도 마음을 저릿하게 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이 책을 도서 목록에 넣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는 저자 최문정이 실업극복지원센터에서 일하며 겪었던 일들을 엮어 낸 책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들었다. , 인간애로 가득한 사람이 여기 또 있구나 하고 말이다. 저자는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지 고민한다. 자신의 직업과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런 저자가 실업극복센터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저자 이력을 찾아보다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책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왜 그만두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어렴풋한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 해답은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 있었다. 그 당시 서른네 살이었던 저자는 일종의 매너리즘이자 열정이 고갈된 상태였다고 한다. 어쩌면 마음을 저릿하게 한 저 구절을 저자는 절실히 통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는 드라마를 보듯 그저 함께 웃고 화내며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도 저자의 에너지를 받아 나도 한번 잘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밝은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듯한 책이랄까. 행동하고 고민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저자가 말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보는 삶을 살라고, 삶의 패턴은 또래들보다 조금 느리고 뒤처지겠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를 깨닫고 보고 느끼는 시간은 풍성해진다고 말이다.

 

떳떳하지 못한 사바사바는 말고 삶을 풍요롭게 해줄 짬짜미는 가끔 하며 내 삶의 활동가처럼 지내보자.

누군가는 ‘혼자 지내더니 혼자만의 세상에 갇히게 된 거 아냐?’ 혹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거에 맛들인 거 아냐?’ 하며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곤 하지만, 저는 굳이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게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즐거운 마음으로 향한다는 거, 그게 어디에요. 그것만으로도 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하니까 괜찮습니다. - P32

"종교는 있으세요?"
"네, 있습니다. 천하태평교라고 하는데, 제가 교주입니다." - P49

네, 맞습니다, 맞아요.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할 거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일단 가보는 거죠. ‘제자리걸음도 구두 바닥이 닳긴 매한가지’ 라는데 …… . …… 우리가 언제 뭐 계획 세우고 살았나요, 닥치는 대로 사는 거죠.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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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일
고미영 외 지음 / 북노마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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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책 한 권을 만드는 데에 창작자 한 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저자 말이다. 저자가 주제를 정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써내고 제목을 짓는다. 그럼 짜잔,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을 공부하며 책 한 권을 만드는 데에 여러 명의 창작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역서라면 번역가가 필요하다. 책 표지나 삽화를 그려 넣는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책이 만들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총괄하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책에 숨을 불어넣을 터이다.

편집자의 일은 수많은 창작자 가운데 편집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책이다.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섯 명의 출판사 편집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편집자의 하루, 편집 원칙, 편집 과정의 중요 포인트, 앞으로의 서점 문화의 방향, 기획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항, 선호하는 작가 등등.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좋은 정보인 것은 당연하고 작가나 번역가에게도 도움이 될 이야기가 참 많이 담겨있다.

편집자의 일과에는 신간 상황 파악, 뉴스 확인, 베스트셀러 체크가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 유용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는 글을 쓰는 작가와 원서를 발굴해 기획을 해야 하는 번역가에게도 필수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출판사마다 출판사만의 분위기, 결이 있다. 따라서 작가나 번역가에게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책, 기획하고자 하는 책이 어떤 출판사와 어울리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의 소중한 책이 길을 잃고 헤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책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 사람들이 ‘1984Books답다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신승엽, 1984Books 편집장

 

투고 원고의 경우는 그걸 판단하는 데 채 1분이 안 걸리는 경우도 많아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투고한 분이 저희가 낸 책들을 한 번이라도 찾아봤는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고, 심지어 워크룸 프레스에 보낸 게 맞는지도 모를 메일이 드물지 않아요. …… 만약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싶은 분이라면 적어도 왜 이 원고를 당신네 출판사에 보내는지에 대해 상투적인 이유라도, 혹은 출판사 이름이라도 꼭 적어서 보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박활성, 워크룸 프레스 대표

 

편집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었다. 언젠가 한번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자기 의견을 낼 때는 그 방향이 ‘독자’에게 잘 다가갈 수 있어야 해요. 단지 나만의 개인 의견을 내서는 안 됩니다. - P14

‘나’의 이야기로만 가득한 원고는 편집자가 ‘독자와의 접점’을 발굴하는 게 어려워요.
키워드는 역시 ‘독자’예요. 독자가 좋아할 요소가 있는지 봅니다. - P27

요즘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은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입니다. 원제는 ‘아름다운 것을 보러 가는 여행’이에요. - P33

편집 과정에서는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넘치는 부분을 덜어내는 ‘균형’ 감각이 가장 중요한 일머리라 생각합니다. - P48

그러나 몇 년 사이 이른바 ‘돌베게스러움’보다는 새로운 흐름과 취향의 연대를 기획으로 엮어보자고 에디터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이때 취향과 기획 라인의 거리가 가깝다면야 순조롭겠지만, 그 틈이 넓다면 ‘발 빠짐’을 주의해야겠습니다. - P54

그래서 누가 언제 어디서 읽을까, 그때와 곳이 잘 보이는 원고가 반갑습니다. 물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읽히지 않는, 알아볼 수 없는 글은 ‘킬’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적은 투고 원고는 늘 안타깝습니다. - P58

우선 ‘태도’가 좋은 필자에 끌립니다. 반대로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센, 편집자를 포함해 함께 책을 만드는 이들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필자는 피하고 싶습니다만……. 책은 저자의 것만은 아니니까요. - P59

생각해보면 책이 훨씬 더 많은 기간을 살아가야 할 곳은 그 책을 구입한 독자의 책장이지, 서점이 아니에요. 워크룸 프레스의 책들을 좋아하고 사는 독자들이 바라는 것도 자기 방에 꽂아놓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하고요. - P92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구나’ 같은 뿌듯함은 아주 가끔 느끼고, 대부분은 ‘글자 속에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어떤 슬픔이 밀려옵니다. - P109

편집 포인트는 이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게 아닐까요. 만들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유혹도 생기지만요. ‘이 정도면 됐어’라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죠. - P110

표지 및 내지 디자인, 폰트, 자간과 행간, 종이의 두께와 질감 등 글과 어울리는 좋은 디자인을 알아보는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 P119

원고를 읽다가 제목에 어울리는 문장과 단어가 나타나면 목록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눠요. - P125

책 만드는 사람이 이 이야기는 꼭 널리 알리고 싶다, 라는 욕망이 없다면 그렇지 않아도 주목받지 못하는 책이 더 주목받지 못할 것입니다. …… 이러이러한 책이 많이 팔렸다고 해서, 그 비슷한 다른 책을 기획한다고 해서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 P151

개인적으로는 글이 조금 부족해도 고치는 것에 거부 반응이 없고, 약속을 잘 지켜주는 성실한 필자라는 판단이 들 경우 계약과 출판까지 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 P158

오자를 잡는다. 편집의 기본이다. 논리적 모순은 없는지 점검한다. 조심스럽지만, 저자를 믿지 않는다. 저자의 원고의 나오는 ‘사실’은 모두 의심한다. 검색하고 확인한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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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사이언스 클래식 4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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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과 달을 참 좋아한다. 너무 지친 하루 끝에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올려다보면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일까, 잠시 모습을 감추었을 때도 언젠가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평안한 믿음 때문일까. 하지만 단순히 바라보기를 좋아할 뿐 우주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바로 이 코스모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1980년에 방영된 과학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정리하고 내용을 덧붙여 펴낸 것이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코스모스이다. 이 책은 총 13장에 걸쳐 우주를 소개한다. 대우주로의 항해, 진화, 과학과 종교, 금성, 화성, 보이저 우주선의 탐험, 은하수, 블랙홀, 별의 일생, 우주의 시작과 종말, 보이저호에 실린 편지, 외계인, 지구의 미래.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우주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우주만을 주제로 이야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지구를 품고, 지구는 사람을 품고, 사람은 꿈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코스모스에는 정말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과학, 종교, 역사. ‘세상은 왜 무가 아니고 유인가?’라는 질문을 내던지는 철학까지. 모든 분야를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다방면으로 지식이 많은 독자라면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책이다. 하지만 지식이 없으면 또 어떠랴, 코스모스가 다양한 분야로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도록 지지해 줄 것이다.

 

양장본과 보급판, 전자책 중 무엇을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양장본을 살 것을 권장한다. 벽돌책이라 들고 다니며 읽기는 힘들지만 이 아름다운 도판을 본다면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번역을 공부하는 입장이라 번역가 언급을 안 할 수가 없겠다. 역자는 서울대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31년간 재직했으며 한국 천문학회 회장, 소남천문학사연구소 소장 등 많은 직책을 맡았다. 이런 천문학자에게도 번역은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코스모스는 천문학만 다루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자 역시 옮긴이 후기에서 “‘번역하기는 고문이다.’라는 명제를 재삼 확인했다며 코스모스의 번역은 맨발로 가시밭길 걷기였다고 말한다. 전문서인 만큼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에게 이와 비슷한 책이 온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면 절로 몸서리가 쳐질 따름이다.

어부들 사이에 구전되는 전설에 따르면 헤이케의 사무라이들은 게가 되어 지금도 일본 내에 단노우라의 바닥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발견되는 게의 등딱지에는 기이한 무늬가 잡혀 있는데 그 무늬는 섬뜩하리만큼 사무라이의 얼굴을 빼어 닮았다.

우연하게 이 게의 먼 조상 가운데 아주 희미하지만 인간의 얼굴과 유사한 형태의 등딱지를 가진 것이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 어부들은 단노우라 해전 이전에도, 그렇게 생긴 게를 먹는다는 생각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 게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냄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화의 바퀴를 특정 방향으로 돌렸던 것이다.

이 과정을 우리는 인위 도태 혹은 인위 선택이라 부른다. - P53

성性은 대략 20억 년 전부터 생긴 듯하다. 그전에는 새로운 종의 출현이 무작위적 돌연변이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 P63

‘고려하다’는 뜻의 ‘consider’를 살펴보는 일도 유익할 것이다. 이 단어는 ‘행성과 함께’라는 뜻인데, 진지하게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행성을 함께 고려했어야 했나 보다. - P90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탐험의 정신과 낯선 사회와의 잦은 접촉은 자기만족의 타성을 송두리째 흔들어 사상가들로 하여금 사회 전반에 걸쳐 유효한 통념들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수천 년 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주장들조차 근본적인 오류가 있음이 지적되고 과감하게 수정됐다. - P235

여태껏 인류가 멋모르고 부렸던 우주에서의 특권 의식에 먹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 P314

무슨 일을 하든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일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으며 거기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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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외피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앨런 에스킨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들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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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에스킨스의 첫 작품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을 읽고 오랜만에 정말 대단한 작가가 나왔다고 생각했었다. 아주 살짝 진부한 느낌은 있었지만 등장인물들이 역동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누가 추천해 줄 만한 추리 소설이 있냐고 물어보면 이 책을 소개했었다.


작가의 두 번째 작품 역시 주저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비록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읽었지만...) 그런데 웬걸 이게 대체 뭔가.... ‘굳이의 퍼레이드 같은 책이었다. ‘굳이 이런 상황을 넣는다고?’, ‘굳이 이런 등장인물을 설정한다고?’, ‘굳이??? ???’ 대체 왜 이런 상황 설정을 끼워 넣었는지 90년대에 등장할 법한 이 등장인물은 다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저자는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번역되지 않는지도 궁금하다.

매력적인 여자가 가느다란 어깨끈이 달린 푸른색 탱크톱에 흰 요가바지를 입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
이아나는 편지를 꺼내는 동안 멋을 좀 내고 나왔다. 얼굴은 약간 화장을 했는지 인상이 부드러워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충분히 광택이 날 정도로만 빗은 듯했다. 알렉산더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향수 냄새가 갑자기 공기 중에 훅 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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