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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일
고미영 외 지음 / 북노마드 / 2020년 3월
평점 :
지금까지는 책 한 권을 만드는 데에 창작자 한 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저자 말이다. 저자가 주제를 정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써내고 제목을 짓는다. 그럼 짜잔,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을 공부하며 책 한 권을 만드는 데에 여러 명의 창작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역서라면 번역가가 필요하다. 책 표지나 삽화를 그려 넣는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책이 만들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총괄하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책에 숨을 불어넣을 터이다.
《편집자의 일》은 수많은 창작자 가운데 편집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책이다.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섯 명의 출판사 편집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편집자의 하루, 편집 원칙, 편집 과정의 중요 포인트, 앞으로의 서점 문화의 방향, 기획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항, 선호하는 작가 등등.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좋은 정보인 것은 당연하고 작가나 번역가에게도 도움이 될 이야기가 참 많이 담겨있다.
편집자의 일과에는 신간 상황 파악, 뉴스 확인, 베스트셀러 체크가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 유용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는 글을 쓰는 작가와 원서를 발굴해 기획을 해야 하는 번역가에게도 필수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출판사마다 출판사만의 분위기, 결이 있다. 따라서 작가나 번역가에게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책, 기획하고자 하는 책이 어떤 출판사와 어울리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의 소중한 책이 길을 잃고 헤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책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 사람들이 ‘1984Books답다’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신승엽, 1984Books 편집장
투고 원고의 경우는 그걸 판단하는 데 채 1분이 안 걸리는 경우도 많아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투고한 분이 저희가 낸 책들을 한 번이라도 찾아봤는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고, 심지어 워크룸 프레스에 보낸 게 맞는지도 모를 메일이 드물지 않아요. …… 만약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싶은 분이라면 적어도 왜 이 원고를 당신네 출판사에 보내는지에 대해 상투적인 이유라도, 혹은 출판사 이름이라도 꼭 적어서 보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박활성, 워크룸 프레스 대표
편집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었다. 언젠가 한번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자기 의견을 낼 때는 그 방향이 ‘독자’에게 잘 다가갈 수 있어야 해요. 단지 나만의 개인 의견을 내서는 안 됩니다. - P14
‘나’의 이야기로만 가득한 원고는 편집자가 ‘독자와의 접점’을 발굴하는 게 어려워요. 키워드는 역시 ‘독자’예요. 독자가 좋아할 요소가 있는지 봅니다. - P27
요즘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은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입니다. 원제는 ‘아름다운 것을 보러 가는 여행’이에요. - P33
편집 과정에서는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넘치는 부분을 덜어내는 ‘균형’ 감각이 가장 중요한 일머리라 생각합니다. - P48
그러나 몇 년 사이 이른바 ‘돌베게스러움’보다는 새로운 흐름과 취향의 연대를 기획으로 엮어보자고 에디터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이때 취향과 기획 라인의 거리가 가깝다면야 순조롭겠지만, 그 틈이 넓다면 ‘발 빠짐’을 주의해야겠습니다. - P54
그래서 누가 언제 어디서 읽을까, 그때와 곳이 잘 보이는 원고가 반갑습니다. 물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읽히지 않는, 알아볼 수 없는 글은 ‘킬’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적은 투고 원고는 늘 안타깝습니다. - P58
우선 ‘태도’가 좋은 필자에 끌립니다. 반대로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센, 편집자를 포함해 함께 책을 만드는 이들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필자는 피하고 싶습니다만……. 책은 저자의 것만은 아니니까요. - P59
생각해보면 책이 훨씬 더 많은 기간을 살아가야 할 곳은 그 책을 구입한 독자의 책장이지, 서점이 아니에요. 워크룸 프레스의 책들을 좋아하고 사는 독자들이 바라는 것도 자기 방에 꽂아놓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하고요. - P92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구나’ 같은 뿌듯함은 아주 가끔 느끼고, 대부분은 ‘글자 속에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어떤 슬픔이 밀려옵니다. - P109
편집 포인트는 이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게 아닐까요. 만들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유혹도 생기지만요. ‘이 정도면 됐어’라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죠. - P110
표지 및 내지 디자인, 폰트, 자간과 행간, 종이의 두께와 질감 등 글과 어울리는 좋은 디자인을 알아보는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 P119
원고를 읽다가 제목에 어울리는 문장과 단어가 나타나면 목록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눠요. - P125
책 만드는 사람이 이 이야기는 꼭 널리 알리고 싶다, 라는 욕망이 없다면 그렇지 않아도 주목받지 못하는 책이 더 주목받지 못할 것입니다. …… 이러이러한 책이 많이 팔렸다고 해서, 그 비슷한 다른 책을 기획한다고 해서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 P151
개인적으로는 글이 조금 부족해도 고치는 것에 거부 반응이 없고, 약속을 잘 지켜주는 성실한 필자라는 판단이 들 경우 계약과 출판까지 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 P158
오자를 잡는다. 편집의 기본이다. 논리적 모순은 없는지 점검한다. 조심스럽지만, 저자를 믿지 않는다. 저자의 원고의 나오는 ‘사실’은 모두 의심한다. 검색하고 확인한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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