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기획회의 582호 - 챗GPT의 시대 : ② 출판의 자동화와 AI 기획회의 582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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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선생님이 출판계 동향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추천해 준 잡지이다. 이 책을 읽고 일차원적으로 느낀 점이라 하면 ㅇㅇ전문가 추천 도서라는 타이틀의 힘이었다. 우선 전문가의 추천도서라니 큰 의심 없이 책을 구입하여 펼쳐 들었다. 그리고 정말 믿고 볼만한 책이었다. 하나로 통일된 주제와 흥미로운 책 소개, 출판과 책에 관한 요모조모. 모두 허투루 볼 수 없었다.

 

기획회의19992월부터 출간된 출판 전문지이다. 한 달에 두 권, 1년에 총 48권이 발행된다. 출판이나 도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많이 등장하므로 48권을 모두 읽기 빠듯하다면 관심 있는 분야만 골라 읽어도 좋겠다. 나는 최근에 AI를 다루는 글만 보이면 꼭 들여다보는데 마침 582호에서 출판의 자동화와 AI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어 이 책을 골랐다.

 

AI 때문에 사라질 직종 하면 번역가와 통역사가 늘 선두에 선다. 그러면 작가는 어떨까? 사람과 달리 AI는 주제만 던져주면 뚝딱 글을 완성한다는데 작가도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닐까? 기획회의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AI는 결국 우리 인간이 경험한 사실, 우리 인간이 쓴 내용을 짜깁기할 뿐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AI는 스스로 세계를 체험하지 못하고, 의미나 가치를 알지 못하며,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AI의 글쓰기는 언어에서 일정 패턴을 찾아낸다는 점에서는 인간 언어와 유사하지만, 새로운 단어나 개념을 발명하고 비유나 상징을 찾아내는 등 자기 고유의 체험을 독특한 언어로 의미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 언어와 저금도 닮지 않았다. -P.30

 

AI가 써내는 글이 짜깁기에 불과하다면 그 모든 글은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 저자가 AI라면 AI에 죄를 물려야 하는 것일까? AI에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내야하는 것일까? 따라서 앞으로는 AI를 잘 다루는 사람, AI에게 명료하고 명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우위에 설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AI가 새로운 글을 창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터이다. 독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 작가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가는 어떨까? 여기저기서 하는 말마따나 AI가 발전하면 번역가는 끝내 사라질까? 기획회의587호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니 구입하여 읽어보아야겠다. 읽어야 할 잡지만 점점 쌓여간다. 잡지만 읽다 한 달이 가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AI와 출판산업의 만남이 직접 피부로 다가올 부문은 편집 쪽에 있다. 생성AI의 존재는 교정교열, 콘텐츠 제작, 출판 기획에 결정적 영향을 가져온다. …… 위에서 밝혔듯이 번역서 작업 역시 손쉬워진다.
……교정 작업은 조만간 거의 소멸할 수도 있다. - P31

텍스트가 저자로부터 해방되면 독자는 저자의 의도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텍스트는 단지 즐김과 놀이의 대상이 된다. 저자와 독자 모두 이용자가 되면 그들은 언어의 체계 안에 있으므로 텍스트를 이루는 언어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 P55

50여 년 전에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은 이미 일상에서 현실이 되었고, 이제 저자뿐만 아니라 사람 필사자와 독자도 서서히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 저자도 독자도 없이 생성된 텍스트만 번성하는 생성물 텍스트의 시대가 된 것이다. - P56

기계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지금의 이야기를 통해서 발화할 뿐이죠. - P59

말을 소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들이 투표할 수 있었다면 공장식 축산업의 끔찍한 농장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겠죠. 우리 인간은 최소한 말이나 소보다는 나은 존재입니다. 투표할 수도 있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AI에게 어떤 일을 맡기고, 인간에게 어떤 일을 남길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되어야죠.
그러니까, 저렇게 무심코 던지는 질문(인공지능 시대에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요?) 뒤에는 사실 아주 무서운 열패감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새로운 과학 기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열패감, 그런 의사 결정은 평범한 시민인 내가 아니라 기업가, 정치인 혹은 과학자의 몫이라는 열패감 등.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말이나 소가 아닌데 말이죠.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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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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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인터뷰였던가 인터넷 기사였던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 대박이라는 표현이 우리의 섬세한 감정을 뭉뚱그리고 있다는 글을 본 적 있다. 헐 대박.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었지만 무슨 말인지 너무 쉽게 이해가 되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놀라운 일, 기쁜 일, 슬픈 일 모든 상황에 아 진짜? 헐 대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를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법. ‘화나다말고는 분노를 표현할 길이 없고, 부끄럽다와 창피하다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언어습관이 반영된 현실인 듯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 대박을 몰랐던 시절에 어떤 단어로 감정을 말했었을까. 아홉 살 마음 사전은 그 마음들을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 박성우는 동시와 청소년시를 쓰는 시인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자신의 시선을 맞추는 사람이다. 그런 저자가 감정을 표현하는 말 80가지를 소개한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책인데, 어린아이뿐 아니라 자신의 섬세한 감정을 되찾고 싶어 한 어른들도 많이 구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왼쪽에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와 단어에 어울리는 그림이 나오고 오른쪽에 사전적 의미와 쓰임새가 적혀있다. 그런데 그 그림과 쓰임새가 얼마나 귀여운지. 단순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에 한동안 머무르다 갓난아이를 마주하고 있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글을 읽게 된다. 읽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법한 책인데도 두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마음 표현법을 쉽게 가르쳐주고 싶은 독자, 나의 섬세한 감정을 되찾고 싶은 독자,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아홉 살 마음 사전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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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뉴스레터 - 스티비가 말하는 이메일 마케팅 트렌드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89
스티비 지음 / 스리체어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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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어떻게 홍보하냐인 듯하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고 자신이 있는 사람이어도 자기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게 마련이다. ‘저 사람은 나보다 실력도 별로인데 왜 저렇게 잘 나가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아마도 그 사람은 자신을 홍보하는 데 나보다 더 큰 노력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나를 홍보하는 다양한 수단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뉴스레터이다. 이전에는 기업에서 홍보 수단으로 뉴스레터를 사용했다면 최근에는 자신만의 뉴스레터를 만들어 마케팅하는 개인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뉴스레터란 무엇인가? 뉴스레터는 어떻게 만드는가? 북저널리즘 내일의 뉴스레터에서 뉴스레터를 제작하고 발송하는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스티비가 그 질문에 대답한다.

 

내일의 뉴스레터에서는 뉴스레터로 효과적인 마케팅을 한 요기요 디스커버리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뉴스레터 만드는 방법, 뉴스레터 성과 지표, 뉴스레터로 수익 만드는 방법 등을 다양한 그래프와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준다.

 

뉴스레터는 많이 봤지만 그 단어는 익숙지 않았다. 이번 기회로 뉴스레터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나를 홍보할 수단으로 꼭 사용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북저널리즘시리즈는 편집자의 일에서 이봄 고미영 대표가 추천하여 읽게 되었는데 이봄 대표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대로 저자가 오랜 시간 경험한 노하우(고급 정보)’를 아낌없이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다양한 주제로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입맛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나도 벌써 다음에 읽을 책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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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語オタクが友だちに700日間語り續けて引きずりこんだ言語沼
堀元見 / あさ出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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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왜 책상이고 의자는 왜 의자일까?

어린 시절 종종 이런 의문을 품고는 했다. 단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는데, 가끔 단어의 어원을 발견하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듯 즐겁고 기뻤었다. 한국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를 공부할 때도 어원이나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했다.

 

이 책 言語沼(언어늪)은 무심코 사용하는 표현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 언어학을 전공한 자칭 언어 오타쿠 미즈노 다이키가 언어 초짜 호리모토 켄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며 정답을 찾아가는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저자는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언어 초짜 호리모토 켄이 적절한 반론을 펼치고, 언어밖에 모르는 언어 오타쿠에게 주제와 관련 있는 다른 분야를 소개해주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흐름을 환기한다.

 

일본어를 다루는 책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기는 힘든 책이다. 일본어를 읽을 줄 알고 일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으니 한번 도전해 봐도 좋을 듯하다.

 

<프롤로그>

やまかわとやまがわのいー수식 관계일 때는 탁음을 붙이고 병렬관계일 때는 붙이지 않는다.

カエルはガエルトカゲはトカゲー탁음이 있는 단어에는 수식 관계여도 탁음을 붙이지 않는다.

 

<1のこと>

일본어에는 있다에 해당하는 동사로 いる’, ある두 가지가 있다. 생물에는 いる’, 무생물에는 ある를 사용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무생물에도 ある를 쓰는 경우가 있다.

사물에 애니머시(animacy, 유생성)을 느낄 때 즉, 사물이 살아있다고 느낄 때이다.

のこと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김태희가 좋아라고 한다면 TV속 연예인으로서, 화면 속 인물로서 좋아한다는 말,

나는 김태희のこと가 좋아라고 한다면 실제로 김태희를 만난 적이 있거나 친분이 있다는 말이 된다.

 

<2バテル>

소크라테스 음에는 의미가 있으며 의미와 사물의 특징은 관련이 있다.” =음상징

헤르모게네스 음에 의미는 없다.”

모음에는 크기감이 있다. >>>>

장애음(k, s, t )은 날카로운 이미지, 공명음(n, m, y, r, l, w)은 둥글둥글한 이미지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프랑켄슈타인인 이유??

원래 단어에 탁음을 추가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된다.

 

<3えーっと>

필러(filler)는 정보를 전달하며 えーっとあのー에는 차이가 있다.

えーっと는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고민할 때 내뱉는 표현.

あのー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할지 고민할 때 내뱉는 표현. 상대방을 배려하는 표현이므로 예의 있게 느껴진다. 따라서 あのー, 잠깐 시간 되세요?”는 자연스럽지만 えーっと, 잠깐 시간 되세요?”는 불쾌하게 느껴진다.

そのー는 전하기 힘든 말을 전할 때 사용한다.

 

<4あいうえお>

일본어 자음 아카사타나순서는 조음점이 점점 앞으로 이동하는 순서이다.

일본어 모음 아이우에오는 혀의 위치가 순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전설모음 다음에 후설모음이 나온다.

 

<5パンパン>

의성어는 음에 의미를 담고 있다.

p 음은 장력’, ‘팽창한 표면의 파열을 나타내며, 확장된 의미로 갑작스러운 사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풍선이 팡 터지다.’,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다.’

2음절 의성어에는 음의 순서에 규칙성이 있다. 첫 자음은 촉감, 두 번째 자음은 운동을 나타낸다. 첫 음이 k일 때는 딱딱함이, 두 번째 음이 k일 때는 공동空洞이 느껴진다.

아이들은 동사보다 의성어를 더 쉽게 이해한다.

 

<6>

벽에() 페인트를() 칠했다.

벽을() 페인트로() 칠했다.

은 벽에 페인트를 일부분만 바른 느낌, 는 벽 전체를 칠한 느낌.

()’는 열심히 움직임을 의미하며, 임장감을 준다. 따라서 일요일에 산에() 올랐다보다는 일요일에 산을() 올랐다, ‘헬리콥터로 산을() 올랐다보다는 헬리콥터로 산에() 올랐다가 올바른 표현이며, ‘개썰매로 산에() 올랐다보다는 개썰매로 산을() 올랐다가 임장감이 뛰어나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난세를() 살다/먹느냐 먹히느냐의 난세에() 살다에서는 전자가 더 자연스럽다.

다만 주체가 난세에 많은 사람에게 배신당해 몰락한 사람이라면, ‘나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난세에() 살았다가 자연스럽고, 농민 출신의 주체가 스스로 난세를 헤치며 살아 성공했다면, ‘나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난세를() 살았다가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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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 Vol.14
투나미스 편집부 지음 / 투나미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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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나타나고 가장 위협받는 직업, 곧 사라질 직업에 늘 번역가가 1위로 오른다. 나는 아직 제대로 발도 못 들였는데 기계 때문에 사라진다니 원통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포기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다. 앞을 멀리 내다보고 이제부터 각광받을 직업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참 고지식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라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이다.

 

번역하다Vol. 14에는 묘한 글이 나온다. GPT에게 번역가는 살아남을지 묻고 그 답을 옮겨놓은 글이다. GPT는 번역가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번역의 영역은 더욱 넓어질 것이고 사람이 해야 할 번역이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 특히 문학 번역이라면 기계가 말맛을 맛깔나게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사람, ‘세상세계생명목숨을 분별해 쓸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 단어들을 내가 명확히 분별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모국어에 대한 을 뛰어넘어 모국어에 대한 논리를 깨쳐야 할 때인 듯하다.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저자의 말을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겠다. 외국어뿐 아니라 모국어도 잘해야 그 의미를 또렷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칸트 철학을 알기 위해 칸트를 읽는 것이지, 번역자의 철학을 배우기 위해 칸트를 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칸트 철학이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철학이라면, 이는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터이니, 인류사에 어떤 공적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 해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음은 자명하지 않을까? -p.56

 

좋은 글을 전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 좋은 글을 올바르게 전하고 싶다. 그때까지 번역가라는 직업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소수가 지식을 독점하는 시대마다 글과 말은 동떨어져 있었다. 지식의 권위를 좋아하는 자들은 언어의 선택과 사용에서 마치 자신의 권위를 표현하듯이 글을 쓴다. 그런 글이 말과 다르다는 것에 만족하듯이 난해함에 안주한다. 철학의 이름으로든 인문학이라는 슬로건이든, 지식으로 타인을 계몽하려면 말하는 사람들이 글 쓰는 사람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그들의 무의식 또는 의지에 나는 동참하지 않는다.
……
그러나 독자가 직접 나타나 있지 않는 글의 세계에서는 독자보다 글쓴이의 생각이 어떻게 잘 표현되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아도 글은 써진다. 그런 글에 권위라는 도장을 찍으면, 이해되지 않는 글이라도, 그 권위의 크기에 비례해서, 저자의 책임은 줄어든다. 그 대신 독자는 자기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어떻게 공부하면 ‘그 어려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런 무책임 혹은 책임 전가를 목격하면서 우리는 언제가지 참아야 하는 걸까?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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