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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 Vol.14
투나미스 편집부 지음 / 투나미스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인공지능이 나타나고 가장 위협받는 직업, 곧 사라질 직업에 늘 번역가가 1위로 오른다. 나는 아직 제대로 발도 못 들였는데 기계 때문에 사라진다니 원통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포기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다. 앞을 멀리 내다보고 이제부터 각광받을 직업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참 고지식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라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이다.
〈번역하다〉 Vol. 14에는 묘한 글이 나온다. 챗GPT에게 번역가는 살아남을지 묻고 그 답을 옮겨놓은 글이다. 챗GPT는 번역가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번역의 영역은 더욱 넓어질 것이고 사람이 해야 할 번역이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 특히 문학 번역이라면 기계가 말맛을 맛깔나게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과 ‘사람’을, ‘세상’과 ‘세계’를 ‘생명’과 ‘목숨’을 분별해 쓸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 단어들을 내가 명확히 분별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모국어에 대한 ‘감’을 뛰어넘어 모국어에 대한 ‘논리’를 깨쳐야 할 때인 듯하다.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저자의 말을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겠다. 외국어뿐 아니라 모국어도 잘해야 그 의미를 또렷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칸트 철학을 알기 위해 칸트를 읽는 것이지, 번역자의 철학을 배우기 위해 칸트를 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칸트 철학이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철학이라면, 이는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터이니, 인류사에 어떤 공적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 해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음은 자명하지 않을까? -p.56
좋은 글을 전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 좋은 글을 올바르게 전하고 싶다. 그때까지 번역가라는 직업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소수가 지식을 독점하는 시대마다 글과 말은 동떨어져 있었다. 지식의 권위를 좋아하는 자들은 언어의 선택과 사용에서 마치 자신의 권위를 표현하듯이 글을 쓴다. 그런 글이 말과 다르다는 것에 만족하듯이 난해함에 안주한다. 철학의 이름으로든 인문학이라는 슬로건이든, 지식으로 타인을 계몽하려면 말하는 사람들이 글 쓰는 사람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그들의 무의식 또는 의지에 나는 동참하지 않는다. …… 그러나 독자가 직접 나타나 있지 않는 글의 세계에서는 독자보다 글쓴이의 생각이 어떻게 잘 표현되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아도 글은 써진다. 그런 글에 권위라는 도장을 찍으면, 이해되지 않는 글이라도, 그 권위의 크기에 비례해서, 저자의 책임은 줄어든다. 그 대신 독자는 자기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어떻게 공부하면 ‘그 어려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런 무책임 혹은 책임 전가를 목격하면서 우리는 언제가지 참아야 하는 걸까?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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