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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마리 콩스탕스는 훌륭한 목소리를 가졌다.
학창시절 끝까지 마치진 못 했어도 문학을 전공했고 연극을 했던 그녀는
친구의 권유로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기로 하고 신문에 광고를 낸다.
광고를 보고 그녀를 찾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리는 대학시절의 은사를 찾아가 자신의 일과 의뢰인, 그에 걸맞는 책을 고른다.
그녀는 자기만의 세계에 갖힌 채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자신을 잘 깨닫고 있다.
남편을 통해 자신의 그런 성격과 삶이 참아줘야 하는 부분이라 여기며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불안한 결정과 행동에 대한 지지를 얻고 싶어한다.
기본적으로 마리는 그녀가 읽고 있는 책 그 자체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빌어 입 밖으로 나온 텍스트들이 그녀의 말과 행동을 규정짓는다.
책이란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쓸모도 없다.
그것을 읽어주는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다.
마리는 여러 의뢰인에게 맞는 책을 고르면서 그 책과 함께 그들을 대하는 방식을 설정해 나간다.
때론 마리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주문에 의한 책일 경우에도
그것을 빌어 자신의 행동방향과 범위를 결정해 나간다.
[ 나는 내가 텍스트를 선택한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텍스트들이 나를 선택한다 ]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책을 고르고 읽는다.
여행을 앞두고 현지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참고 서적이 필요하다.
연인에게 보낼 편지지를 앞에 두고 시를 고르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밝은 내용의 소설을 읽는다.
때론 멋진 표지에, 혹은 페이지를 이루는 종이의 질감에, 눈길을 그는 제목에 우리는
많은 책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긴다.
그것은 내가 그 책을 선택했다는 일방적인 행위이외에도
그 책과 감정을 가진 나라는 사람이 일으킨 하나의 교류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마리는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 무슨 책이나 그게 내 입을 통해서 나가는 순간부터 다 좋은 것이다.
책 하나하나에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장 분별없는 직업을 택한 것 같아 겁이 난다 ]
마리는 책에서 이끄는 대로, 그 책이 의뢰인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하여금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이고 소화할 준비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쳐도 결코 당황해하지 않으며 책 읽는 여자라는 직업이 주는 당연한 의무인 듯 소화해 나간다.
그럼으로 그녀는 갇혀있던 세계에서 벗어난다. 도덕적 의무감이나 사회적인 시선들도 그녀에겐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책이 이끄는 방향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에 그녀는 책이라는 존재 뒤에 숨어있는 자신을 끄집어 낸다.
아마도 마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책을 읽어주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