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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접한 것은 [용의자 X의헌신]이었다.
책을 덮은 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정말 대단하다~ 를 연발했기에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가 뭉실뭉실 커져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일본에도 이런 의미에 속담이 있나...)
[방과후]와 [레몬]은 정말 힘이 쭉 빠지게 하는 느낌이었다.
작품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 다른 젊은 작가였다면 되려 점수를 후하게 줬으리라.
다만 그이기에 너무 실망이 컸던 것이다.
미루고 미루던 백야행을 드디어 다 읽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그의 최고작이라 불리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서
자꾸 뒤로 미루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재밌다는 책, 좋다는 책, 나한테 맞을 것 같은 책은 그 기대와 기쁨을 간직하려고
읽는 순서가 자꾸만 뒤로 밀려간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든 생각...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편차가 너무 크다.
어찌 [백야행]의 작가가 [레몬]이나 [방과후]의 작가와 같을 수가 있단 말인지...
일어 이름이 쉽게 와 닿지 않아
방대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면 으레 당황하기 일쑤인데
이 작품에선 그런 일이 없다.
이것 역시 그의 능력일까...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간의 접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나친 우연도 아니며 마치 운명적으로 그리 얽힌 것처럼
사람사이의 관계와 인연들이 실제에 가깝게 느껴진다.
아마 그런 요소들이 그의 작품을 현실적이고 섬세하게 만드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일본에서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으며
곧 한국에서도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여주인공 유키호 역엔 이미 손예진이란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 한다.
일본드라마 [백야행]은 두 주인공의 로맨스에 그 초점이 맞춰줘 있다 한다.
소설의 경우엔 그 둘의 관계만 짐작될 뿐
함께 있는 모습과 직접 연결된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건조하다 느껴질 수 있는 작품 속 문장들은
그들이 내내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것처럼
담담하지만 아픔이 느껴진다.
동화 인어공주에서 사람이 된 인어공주가 왕자를 위해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인어공주의 사랑을 모른 채 이웃나라공주와 재회해 결혼하기로 한 그 축하연의 밤,
공주는 왕자를 위해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이에 인어공주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왕자를 위해 춤을 춘다.
그때 그녀는 칼날 위를 걷는 듯한 통증을 참고 웃으며 춤을 췄다고 했었다.
유키호의 미소, 말씨, 행동거지 등에서
료지의 무표정하고 냉정하며 수수께끼같은 삶에서
인어공주의 칼끝을 노니는 고통이 감지된다.
함께해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랑...
보답 받을 수 없는 애정...
그들의 마음은 남자여자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생각된다.
그들은 상처받은 영혼을 가졌으며 서로에게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서로 공생하는 관계라 결코 떨어질 수도 없는...
칼날을 손에 꼭 쥐면 쥘 수록 살속을 파고 들어 상처는 깊어만 질 뿐인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뒤돌아서 결코 뒤돌아보지 않으며 자기길을 가는 유키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료지의 말이 떠오른다.
줄곧 나는 하얀 어둠 속을 걸어왔어. 태양 아래서 걸어보는 게 내 유일한 소망이야.
그는...이제 편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