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잔에 담긴 뜨거운 커피는 천천히 식어가고
새로 산 하이힐은 서서히 굽이 닳아가며
조심스레 첫장을 적어가던 노트는 점차 더러워진다.
새해의 굳은 결심은 하루이틀 지나며 의욕이 사그라져들며
뜨거웠던 가슴은 시나브로 냉정해져만 간다.

 
새해 벽두에 처음 잡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차가운 건조함만을 남겨주었다.
언뜻 생각엔 더운 열기 속의 건조함이 더 치명적일 듯 하지만
냉랭한 공기 속의 건조함은 그야말로 목구멍과 콧구멍을 쩍쩍 갈라지게 만든다.
이 책엔 그런 건조함이 가득하다.

 
한때 전부일 것만 같았고 에너지로 가득찼었던 열정과 삶은
시간과 여건 속에서 무뎌지고 스러져간다.
그 뒤에 남겨진 사람은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나쁘진 않지만 정초에 집어든 책으로선 최악이었다.
덕분에 2009년이 너무 뜨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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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파리 - 황성혜의 파리, 파리지앵 리포트
황성혜 지음 / 예담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파리로 유학을 가서
파리를 사랑하고 즐기며 살다 온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대다수의 여자들이 파리를 사랑하듯 나도 사랑한다.
한번쯤 다녀 온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이름만 듣고 언젠가 가보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하듯
파리는 아름답고 낭만이 흐르는 도시이다.

 
자주 갈 수 없는 현실에 파리에 관한 책을 한때 자주 샀더랬다.
실망을 준 책이 있는가하면 썩 괜찮은 책도 있었는데
이 책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좋은 건 뻔히 알지만 시종일관 "너무 멋져, 최고야, 아름다워~"만 연발하면
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은 짜증이 난다.
당췌 뭐가 좋다는 건지, 뭐가 멋진 건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좀 알자고...
대부분의 프랑스 파리에 대한 여행기는 저 수준에서 끝난다.
아니면 레스토랑이나 카페, 옷가게 등을 소개하던지...
그치만 그런 내용은 굳이 비싼 돈 주고 여행기를 읽을 필요가 없단 말이다.

 
"사랑해, 파리"의 경우
왜 이 곳을 사랑하는지, 왜 이곳이 매력적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겉에서 보이는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관한
파리시민들의 생각까지도 부답스럽지 않게 담아냈다.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고, 같지 않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적당한 수준에서 얘기하고 있다.

 
아마 작가의 학식이나 직업이나 금전적 수준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책 전반에서 서둘지 않고 치우치지 않게 글을 써내려가는 여유가 보인다.
나쁘지 않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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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이야기 세트 - 전3권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읽었던 동화나 소설은
나름 순수했던 시절의 이미지로 기억되어서인지
무척이나 아름답고 재미나고 기분좋게 느껴진다.
다 자라버린...아니, 이젠 퇴화의 길(25세가 지나면 노화가 시작된다는...--;)을 걷고 있는 이 마당에 그 시절의 책들을 다시 읽노라면 괜시리 어려진 거 같아 기분이 좋다. ㅋㅋㅋ

 
내가 어렸을 적 읽었으며 애니메이션으로 본 앤의 이야기는
시공주니어에서 나온 3부작 중 1권까지의 이야기였다.
그 후의 이야기들 역시 책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꿈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빨간머리 소녀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시절의 내가 갑자기 2,30년어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먹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읽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하여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에서 멈추는 동화를 보고자란 세대이므로
그네들이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아가고, 애 때문에 산다는 둥의 현실적인 문제가 엮여버린다면
우리가 돌아갈 어린 시절은 추억속에조차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치만...
기억속의 앤은 아직도 어렸었고,
내가 자라 이만큼 살아왔듯이 내 기억 속의 앤도 성장할 권리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두려워했던 2, 3권을 읽어낼 수 있었다.

 
2권 에이번리의 앤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꽤나 등장한다.
학교 선생님이 되어 에이번리에서 살아가는 앤의 주위에 학생들과 새로운 이웃들이 출현한다.
여기서 살짝 지루함이 느껴진다.
앤 자체의 삶보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강조되어
그녀의 생기발랄한 삶이 한풀 꺽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진학을 포기하고 에이번리에 눌러앉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반짝이는 그녀의 일상을 기대했던 독자에겐 많이 아쉬운 시기이다.
3권 레드먼드의 앤에서 드디어 내가 알고 있던 앤이 돌아온다.
대학에 진학한 앤이 다시 꿈꾸고 공부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인생을 즐기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깨달으며 진정한 어른이 되어간다.

 
기존에 알고 있던, 딱 1권까지의 내용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같은 것이었다면
2, 3권을 읽고 난 후엔 앤이 나와 함께 자라온 친구처럼 느껴진다.
번역자의 말처럼 100여년전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살았던 앤의 삶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웃고 즐거워하며 간접체험을 함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캐나다라는 나라가 내게 썩 매력적이지만은 않은 나라였음에도
사과꽃이 만발한 시기에, 프린스 에드워드 섬엔 꼭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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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파리
티파사(최순영) 글.사진 / 에디터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울컥울컥 올라오는 역마살을 누르려 구입했던 책들 중 하나다.
종종 터지는 이 방랑병을 감당하기에 내 지갑은 너무 얇다.
떠나고 싶은 맘에 여행기가 더욱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가지 못 하는 맘, 어설프나마 그 향기라도 느껴보자 싶어 그리 했더란다.

 
그치만...대다수의 여행기는 늘 기대에 못 미치고 실망시키고 그 금액에 열받는다.
이 책 역시 딱히 큰 특징이나 매력은 없다.
파리 곳곳을 찍은 사진들, 유명 작가나 명사의 인용구들...
몇년 전 그곳에 다녀온 본인도 느꼈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나 알만한
고만고만한 감상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페이지들...
거기에 부담스런 가격 --;; 도대체 왜...
제발 혼자만의 일기로 간직해 주라구...
 

별 2개를 주지 않은 건...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은 글들에서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나친 억지없이 누구나 쓸 법한 글들의 자연스러움이 보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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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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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대작이고 유명작이라 리뷰쓰기가 겁난다.
너무 유명한 작가의 유명작이라 괜시리 읽기 싫어 미뤄두었던 작품인데
역시 이것도 명불허전...
괜시리 짧은 안목과 치기어린 마음에 멍청한 짓을 해왔음을 떠올렸다.

 
나무를 잘라보면 나이테라는 것이 나온다.
그 나무가 얼마나 살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척도이다.
과거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해야하나...
어린시절의 상처와 기억, 방황은 그 나이테에 짙고 굵은 선을 만들고 만다.
아마 한동안은 나이테라고 부를 만한 둥근 선이 보이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만큼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게 되고, 딛고 있는 땅조차 허물어질 것처럼 만든다.
사고와 행동을 중단시키고 와타나베의 말처럼 억지로 감긴 태엽만큼의 삶을
기계적으로 살아가게, 아니 살아지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크게 모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일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살아숨쉬는 많은 사람들의 수만큼
각자의 상처도 다르고 그걸 치유하는 방법도 다르며 추억하는 법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그 몫을 살아내게 마련이다.
나는 와타나베에게 그것을 보았을 뿐이다.

 
크게 소리내어 아프다 하지 않는다 해서 그 사람의 상처가 작은 것이 아니고
도와달라 손 내밀지 않는다 해서 타인의 도움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다 하여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눈 감고 있다 해서 잠든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냥 이 끔찍하고 지독한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숨죽이고 엎드려 있을 뿐이다.

 
와타나베는 20살이 되기 위해 그토록 힘들었다.
나는 무엇때문에 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로인해 치유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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