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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새가 말하다 1
로버트 매캐먼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12월
평점 :
가끔은 나의 어휘력과 단어 선택 능력에 아쉬울 때가 온다. 어떤 광고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무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로버트 매캐먼이 대단한 작가라는 건 안다. 유명한 상들도 잔뜩 받았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내가 그걸 공감하고 납득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앞으로 그의 예전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보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사형집행인의 딸]을 읽었고,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책이 공교롭게도 '마녀사냥'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다룬다는 것도 무척 재미나게 느껴졌다. 출판사에서야 작가의 이름이 주는 믿음에 확신을 했었을 것이고, 사실 홍보 소재로써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밤의 새가 말하다]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인터넷 서점 카테고리에서 액션/스릴러로 분류된 이 작품을 그 장르로 한정하기엔 [밤의 새가 말하다]는 너무 거대하다. 작가는 미스터리류의 작품을 집필한 것이 아니라 고전으로 기억될 작품을 완성시켜 세상에 내놓았다.
판사 우드워드와 서기 매튜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시민지 미국의 한 작은 마을에 정의로운 법의 집행을 위해 찾아온다.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묘한 징후들로 인해 마녀로 의심되는 여자를 판결하고 화형이라는 심판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원리원칙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판을 진행해 나가는 판사와는 달리 매튜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구심과 호기심에 귀를 기울이며 몰래 조사를 한다.
작가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식민지 시대의 미국, 그것도 작은 마을에 대한 묘사와 시대적 배경 등을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나 신의 존재,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수용 정도, 신분과 직업에 대한 인식, 그들이 먹는 음식, 몸에 입는 옷, 가발에 이르기까지 어찌 그리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동작과 대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지 놀랍다. 흔히 고전이라 불리우고 명작의 반열에 오른 책들을 보면 그 두꺼운 분량 중 상당한 부분을 배경 설명에 할애한다. 거기서 오는 지루함과 어려움이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줄거리는 알지언정 책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건 시대가 변해서 작가들의 기술도 발전을 한 것인지 아니면 로버트 매캐먼의 뛰어난 재능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일상에 이 모든 것들이 녹아 있어 영화의 한장면을 보듯이 눈앞에 자연스럽고 확연하게 그려진다. 또한 그 시대의 특징인 고풍스럽고 우아한 말투... 한마디로 연극조에 과장된 표현법조차 그다지 거북하지 않다. 피가 튀기는 잔인한 장면도 많고, 이기적이고 세속에 찌든 인간들의 추잡함도 고스란히 드러나며 외설스럽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난 지금도 광장히 고급스럽고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마을을 건설하는 데에는 자금과 기술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인간들도 있어야 한다. 파운트로열에는 정말 여러가지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무리가 된 그들은 귀가 멀고 편견과 이기심에 사로 잡혀 있으며 자기 욕심에 눈 멀었다. 그러나 그들 한명 한명은 좋던 나쁘던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과거와 각자의 사정을 지닌 존재들이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사고들은 결코 한 사람의 작품만은 아니다. 물론 악마가 벌인 일도 아니고 신이 그들을 벌하거나 버리신 것도 아니다. 젊음에서 오는 혈기 덕인지 매튜는 아름다운 레이첼에게 감정을 느끼게 되어 사건을 몰래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감정의 힘만으로 우기던 그가, 시간이 지나고 여러가지 사건을을 접하며 성장하더니 증거를 모으고 사람들의 말에 숨겨진 것을 찾으며 눈에 보이고 누구나 납득할 만한 사실을 구하려 한다. 처음부터 그리 찌질하진 않았지만 영 부실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던 사내아이가 남자로 성장하는 모습 역시 볼만하다. 그리고 판사나 레이첼, 매튜의 관계를 뻔~한 결말로 마무리 짓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두터운 2권의 책을 보면서 버릴만한 페이지가 전혀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이렇게 또 한명의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