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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은 어렵다. 한없이 가까운 듯 하다가도 정말 먼 것 같은 사람들... 타인과는 가장 하기 어려운 일들이 되려 제일 편한 사이가
가족인 거 같다. 같이 목욕하기, 방귀 트기, 말 꼬투리 잡기, 어른(엄마아빠)한테 반말하기, 승질내고 문 쾅 닫기, 싸우고 사과나 화해의 절차
없이 또다시 어울리기 등등...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반적으로 하는 것들이 가족과는 어렵다. 진지하게 이야기 들어주기, 적당한 도움주기,
곤란한 주제 피하기, 마음에 없는 말로 맞장구 쳐주기...
[사이퍼]라는 만화가 있다. 찾아보니 작가가 '나리타 미나코'란다. 어릴 적엔 "사랑은 약속이야" 혹은 "시바와 사이파"라는
제목이써는데... 아무튼... 주인공 시바와 사이파는 쌍둥이다. 서로의 행세를 하고 다닐만큼 가깝고 닯았다. 아니스라는 여자애가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견고한 것만 같던 둘 사이엔 틈이 벌어지고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가족으로서의 아픈 상처와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데, 그 둘이 어릴 적에 집에 뭔가 일이 생겼었다. 누가 돌아가셨던가... 동생인 사이파는 아빠 품에 안겨 울었던 것 같고, 형인 시바는
아빠로부터 집안을 부탁받는다. 사이파는 어리광 부린 자신과 달리 집안단속의 책임을 맡은 형에게 뭔가 모를 감정을 느꼈다. 시바 역시 슬프고 아픈
마음은 같은데도 아빠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형으로서의 의무를 부여받은 것에 자신의 역할이 한정된 것 같아 부담스러워 한다. 같은
사건이, 동일한 상황이 다른 의미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상황이, 그 순간이 서로에게 다르게 다가갔을
뿐이다. 아빠가 그 둘에 대한 대응을 반대로 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앤은 딸 세라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딸 세라 역시 엄마를 현명하고 따듯한 존재로 느낀다.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흐른다. 엄마에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고 세라는 자신의 입장에서 그가 엄마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라며 반대의 뜻을 세운다. 엄마의 남자 리처드와 세라는 날이 선
대립을 반복하고, 결국 앤은 딸을 저버릴 수 없어 리처드를 떠나보낸다. 그 후 앤은 변한다. 세라는 이른바 나쁜 남자와 결혼해서 집을 떠난다.
둘은 뭔가 문제가 있고 전과 다르다는 것은 느끼지만 구태여 되돌리려 하지 않고 시간은 흘러 서로를 원망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 책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도 없고, 사건이 잘 해결되고 마무리 되었다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물론 두 사람 사이의 맺혀있던 감정의 응어리는 풀어졌다.
하지만 가족은 원래 그런 거니까. 가족이란 여러가지 감정이 얽혀 있는 어려운 관계이다 보니 교통사고 처리처럼 20:80, 40:60 이런 식으로
피해를 규정지을 수 없다. 하나의 문제에 하나의 일만 얽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은 더 없이 가까울 수 있고 편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상황에 따라 가끔은 타인을 대하는 듯한 자세와 태도로 서로를 대하고 바라보아야 큰 트러블 없이 지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가족이잖아~"라는 말은 문제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해결점이 되기도 한다.
["로라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셨어요?" 앤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 물론이지. 스물여섯 살 때였나, 사실 아주 화기애애했던 가족 모임 도중에 그런 순간을 맞았어. 나는 섬뜩했고 두렵기도 했지만
결국 받아들였어. 진실을 부정하지 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에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자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 p. 21 ]
["감히 제까짓 게...... 감히 제까짓 게...... 그리고 로라...... 그 여자도 날 나무랐지. 전부 나한테만 뭐라고 해.
이건 너무해...... 내가 뭘 어쨌는데?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 p. 262 ]
["애 태우지 마세요. 이제 다 괜찮을 거예요."
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 우리 둘 다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해버렸으니까."
"그럴 리가 있나요. 아무리 심한 말도 뼈를 부러뜨리지는 못 한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앤이 말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것들, 근본적인 것들이 있어."
이디스가 쟁반을 들며 말했다.
"절대란 말은 허풍이에요." - p. 2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