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아이 1
덴도 아라타 지음, 송태욱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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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빚을 진 아빠는 자취를 감추고 엄마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마코토는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히로뽕을 제조하는 위험한 일을 하게 되고 쇼지는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는 엄마의 병수발을 든다. 가오리는 유령을 보게 되었고 "구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에서도 아이들은 참 장하고 착하다. 결코 비뚤어지지 않고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낸다. 자신의 실수로 인한 죄 갚음도 쉬운 일이 아닐진데, 부모의 실수와 나약함에서 비롯된 빚과 병수발을 큰 원망도 없이 받아들인다. 부모가 그리 강한 성품의 소유자도 아니었는데, 이런 굳은 심지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자신의 앞가림도 하기 벅찬 하루하루를 살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이런 아이들이 과연 현실에도 존재할까...

 

안정된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믿고 의지하던 아빠가 사라지고 삶이 힘겨워지자 아이들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빛나던 재능을 잃었다. 노래를 즐겨부르던 마코토는 음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림에 재능이 있던 쇼지는 색을 구분할 수 없게 되며,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냄새를 맡았던 가오리는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힘겨운 삶을 보며 책 읽기가 내내 불편했던 나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감춰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희망이야말로 가장 잔혹한 고문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듯 하다. 벗어날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자신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감추고 덮어둬야만 결핍에 대한 절망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덴도 아라타의 작품에서 가족은 항상 중요한 구심점이 되는 것 같다. 이전에 읽은 작품들에서도 가족은 항상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다. 문제가 있는 가정은 결국 파탄이 나고 비극의 끝을 향해 달려가지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함께 하는 가족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보여주며 상처 받고 떠나왔어도 그 근원은 가족에 있음을 강조한다. 가족의 의미가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고 그 형태도 많이 바뀌어 왔다. 과거의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된 공동체였던 것이 비해, 지금은 함께 힘든 시간을 버티고 어떤 상황에서도 옆을 지켜주는 존재의 의미가 더 강해진 듯 하다. 피 한방울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부대끼고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일이 중요해 진 것이다. 작품 속에서도 마코토의 출생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만 그 셋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운 무리, 가족이다.

 

이 책에서 유독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 한심한 엄마 아이코가 유일하게 잘한 일, 마코토가 쇼지의, 쇼지가 가오리의 이름을 지어주게 한 것이다. 마코토의 출생이 다르다는 설정 상 그 셋을 이어줄 다른 장치가 필요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아이코의 예감처럼 이름은 세 아이들을 이어주는 강력한 끈이 되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며 잘 살아가는 아이들은 과연 떡잎부터 다르더라. 평생 타인에게 불리게 될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이름이 한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고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너무도 잘 알았던 것 같다. 마코토가 3일을 고민하여 지은 이름이나, 쇼지가 갓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자른 후 지은 이름은 정말 너무 따뜻하고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그 어떤 에피소드도, 선별한 단어를 골라 만든 그럴듯한 문장도 이 장면만큼 작품을, 작가의 의도를 잘 설명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 갓난아이의 이름은 쇼지가 되었다. 쇼지의 이름은 마코토가 지은 것이다. 아이코는 형제가 서로 이름을 지어 주면 유대가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노부미치에게 의논했고 그도 승낙했다.

 마코토는 사흘을 생각해서 크레용으로 도화지에 '쇼지正二'라고 썼다. 동생이니까 이二 자를 붙이는 것은 정해 놓고 있었다고 한다. 올바르다正는 글자는 습자 교실에서 처음으로 배운 한자로, 의미가 영웅의 첫 번째 조건이라고 배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막 태어난 동생에게 말했다.

 "영웅이 돼라, 쇼지. 영웅이 돼."

 쇼지는 여동생에게 '가오리香'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이유를, 갓난아이가 태어나서 곧바로 엄마한테 코를 들이대면서 엄마의 좋은 냄새를 열심히 맡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 p. 291 ]

 

어린 가오리는 짐승이 되고 싶다고 한다. 항상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외부의 위협에도 함께 대응하면 살 수 있다고, 버틸 수 있다고 깨닫는다. 집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무리 구리고, 따뜻했던 엄마의 미소가 결코 돌아오지 않아도, 심지어 아빠가 같이 떠나자고 할 때에도 가오리는 두 오빠 곁으로 돌아온다. 가오리는 오빠들이 밤중에 어떤 일을 하는지, 쇼지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다. 머물러야 할 곳, 함께 있어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 "이리 와. 흩어지지 마. 함께 있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보이가 놀란 표정으로 가오리 곁으로 다가온다. 주뼛주뼛 세다도 온다. "누구한테 잡아먹혀?" 하며 리야와 노체도 왔다. 골은 일단 교실을 나가 여동생을 데려와서 가오리 옆에 앉았다.

 "함께 있으면 괜찮아. 무리를 지어 모여 있으면 당하지 않아."   - p.255 ]

 

[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심할 생각은 이제 없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보인다고 하니 그것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인지 어떤지는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신뢰의 문제다.   - p. 364 ]

 

[아기와 나]에 보면 아빠랑 진이, 신이가 여행을 갔는데 어떤 사람이 진이가 차에 기스를 냈다고 따지는 장면이 있다. 아빠는 그 사람에게 "우리 진이는 그런 애가 아니다."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런 무한한 믿음과 신뢰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좀 더 자신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등이 펴지고 배에 힘이 들어간단 말이지. 

 

과연 어떤 결말이 나오려나 궁금했는데 작가가 느닷없이 배신을 때린다. 길게 끌어온 것에 비해 마지막은 좀 허무하게, 다소 흐지부지 마무리 된다. 아이들이 그토록 무겁게 짊어져 온 짐을 내려놓는 과정이 한순간에 확 끝나버린다. 작가의 뒷심이 여러모로 아쉬운 결말이었다. 게다가 제목이 [환희의 아이]다. 물론 작가 마음이긴 하다만 여러모로 내용과 연결짓기엔 무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별 하나 뺀다.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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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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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한국소설을 읽었다. 이 책 이전에 한국소설을 읽은 것이 언제더라... 기억이 안나네......

 

빨간책방 팟캐스트를 듣다 보니 이동진님과 김중혁님에게 중독되어 버린 듯 하다. 한번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특정 단어나 문장을 말할 때 어떤 제스처를 취할지 마치 내가 본 것 같은 상상이 눈 앞에 떠오른다. 그러다보니 이 분들의 책을 안 읽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다른 일 때문에 도서관에 들렸다가 서가에 꽂힌 김중혁님의 소설을 보고 그대로 들고 왔다. (물론 대출 신청 절차는 밟고) 김중혁님 목소리만큼 그 분의 이야기도 따뜻할 지 꽤나 궁금했더랬다.

 

이 소설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미스터리라고 하자면 심장 쫄깃한 긴장감이 좀 부족하다. 하드보일드라고 하기엔 너무 부드럽다고 해야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중혁님은 눈살 찌푸릴 수준의 잔임함과 핏자국이 낭자한 글은 못 쓰실 분 같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분 특유의 온기가 책에 가득하다. 무뚝뚝하고 말주변 없고 세상 등진 듯한 구동치는 의뢰인이 죽은 후에 가족과 지인,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 탐정, 딜리터이다. 요새같이 온라인에 개인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꼭 필요한 직업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불법이다. 처음엔 분명 먹고 살자고 시작한 일이겠으나 죽은 이가 세상을 떠나는 마당에 불편한 마음 한자락 마저 편히 내려놓고 갈 수 있게 하는 일이라니... 참 의미있는 일처럼 보인다... 불법이지만 ㅋㅋㅋ

 

빨간 책방을 듣다보면 김중혁 작가님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멋진 문장들을 보며 꽤나 부러워하는 모습을 몇 번 보이셨다. 내가 보는 김중혁님의 작품은 뭔가 삘이 딱 꽂히는 문장들이 등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챕터 하나가 모두 잘 조직된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품을 이루고 있는 듯 하다. 사람 몸뚱아리에 붙은 팔 하나, 다리 하나, 귀 한쪽이 잘 생겼다고 그 인물이 잘난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원빈을 보라.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고 심지어 단발머리도 잘 어울린다. 몸매도 좋고 피부도 좋다. 이젠 연기도 곧잘 한다는 평을 듣는다. 그게 원빈이다. 다 있어야 원빈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진짜 좋은 문장도 있다. 작품 속이 아니라 밖에서 등장할 뿐.

 

썼는데,
누군가
지웠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작품 속에 없으면 어때요, 책 안에 있으면 되지요 ^^

 

참,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 등이 너무 독특해서 작품 몰입도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더랬다. 구동치, 악어건물, 이리... 진지해질만 하다가 번뜩 정신이 들게 하는 약간 이질적은 느낌? 그런데 중반을 넘어가면 의외로 그 조합이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어딘가 서울 한석에 그런 곳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

 

 

원래 잘 쓰는 글도 아니지만 유난히 두서가 없다. 마치 가까운 지인(?)이 책을 낸 후 내가 읽어 보고 감상평을 말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횡설수설한다. 그래도 안쪽으로 굽은 팔로 리뷰를 쓴 것은 절대 아니다.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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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가 울부짖는 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2
오사카 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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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류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단정을 짓긴 그렇고, 지금까지 엄청 재미나게 읽은 작품이 없어서라고 해야겠다. 사회파 소설과는 다른 범주이지만 어느 정도 있을 법한 설정이 배경이 된다면 의외로 현실감 있게 읽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의아한 것은 이 책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86년인데, 왜 이제서야 출판이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 허접스러운 소설들도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이 시리즈는 이미 2002년에 5부작으로 완결까지 된 상황이다. 좀 더 일찍 출판이 되었더라면 침을 튀겨가며 칭찬을 했을텐데 많이 아쉽다.

 

초반 프롤로그 덕에 범인의 윤곽과 사연, 결말이 딱! 짐작되어 버린 것 치고는 굉장히 재미나게 읽었다. 신가이 가즈히코와 여동생, 모즈와의 관계도 요즘 시대에는 그닥 신선한 설정이 아니라 쉽게 예상이 되는 터라, 이 책의 출판이 뒤늦은 것이 더더욱 안타까웠다. 2000년대 초반에만 나왔어도 이거 대박이다 하며 읽었을텐데... 도대체 왜 때문에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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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며 - 2000년에 1887년을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3
에드워드 벨러미 지음, 김혜진 옮김 / 아고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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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책들이 점점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영화나 책들의 인기가 꽤나 높다고 여긴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왜 국가나 위정자, 가진자들에 대한 묘사는 한결 같은가. 먼 과거로부터 힘없고 배고픈 민중들은 당연한 것을 얻기 위해 왜 땀과 피를 뒤집어 써야만 하는지. 시대가 흐르고 국가를 나타내는 이름이 바뀌어 가며 다양한 통치자가 나타나도 왜 국민들의 삶은 늘 팍팍하기만 한걸까. 삶이 피폐한 이들의 주머니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영화나 문학 등의 오락, 예술 산업조차 가진자들의 이권 다툼 마당이 되어버렸지만, 영화 속,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하며 위로부터의 권위와 폭력에 대항하고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는 이들의 모습에 동조하고 열광하는 것은 우리네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뒤돌아보며"를 읽는 내내 이게 정말 SF소설인가 싶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신국가론"이 아니려나 싶었다.

"뒤돌아보며"는 공상과학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나 획기적인 장치나 신기술이 등장하지 않으며 그 흔한 외계인도 나오지 않는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로맨스가 나오지도 않는다. 책의 대부분은 19세기의 인간인 줄리언 웨스트가 20세기로 가게 되면서 새로운 세기의 삶과 생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는 등의 내용이 전부이다. 생산과 유통 과정, 통치 및 관리 조직, 노동과 여가, 교육 시스템, 종교 생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에 관한 설명은 미래의 인간이 과거의 인간에게 들려주는 것이라기 보다 작가의 강력한 바램이자 주장처럼 들린다. 신문 사회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쓰여졌지만 결코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지는 않는다. 너무도 꿈만 같은 이야기들이 그럴 듯 하게 펼쳐지니 몇번씩 문장을 곱씹어 가며 읽게 되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SF소설인가 보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글이라서... 괜히 울컥하게 되는구나.

[우리 시대의 노동자들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노동의 동기를 찾고, 남이 아니라 자신의 자질로 스스로의 의무를 가늠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능력에 맞는 성취를 하는 한, 그 성취가 크거나 작다고 해서 칭찬이나 비난을 기대한다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 p. 118 ]

["국가가 차린 식탁에서 밥을 먹을 권리는 그가 인간이라는 데 있으며, 그가 자신의 능력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 그의 건강이나 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입니다."   - p. 120~121 ]

[ 앞장서서 걷던 리트 박사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몸을 돌리더니, 19세기에는 비가 오면 보스턴 사람 300명이 우산 300개를 받쳐야 했지만 20세기에는 모두의 머리 위로 우산 하나가 쒸워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주의 시대와 화합의 시대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징표라고 했다.   - p. 141 ]

[ 우리 교육 제도가 기반을 둔 중요한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이 즐기는 데 필요한 만큼 국가가 제공하는 가장 안전한 교육을 받을 권리. 둘째는 다른 시민이 나와 교제를 즐기는 데 필요한 만큼 나를 교육받게 할 권리. 셋째는 나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지적이고 교양 있는 부모를 보장받을 권리.   - p. 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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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녀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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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보려고 쌓아둔 책들 중 제일 재미있었다.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3개월 된 아기의 신원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줄거리인데, 그 역시 꽤나 신선하고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이야기의 방식은 아기 릴리의 진짜 이름을 찾고자 18년째 조사를 해 온 사립탐정 탐정이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와 릴리의 오빠가 될지 남자가 될지 알 수 없게 된 마르크의 시점이 교차한다. 작가의 글솜씨가 꽤나 찰진 맛이 있어서 100장 밖에 안 되는 일기를 띄엄띄엄 읽는 마르크 때문에 감질나서 내가 확 빼앗아 읽고 싶을 정도였다. 독자를 안달나게 만들 줄 아는 작가인 듯 하다. 멋져~

사실 유전자 감식이라는 편리한 과학적 장치가 생긴 지금에야 이런 속터지는 상황과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지리한 시간들이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 때 당시엔 정말 작은 단서 하나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시대였다. 양 쪽 집안 모두 아들 내외를 잃고 유일하게 생존한 손녀 하나가 가족을 이룰 전부인 터라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무척 예민하고 모든 것을 다 걸고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이를 놓고 벌인 재판이 내놓은 결과는 사실 어느 쪽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서로 내 손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막상 어느 한쪽이 데려다 키우다가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고 점점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상황을 과연 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출생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진부하고 막장극으로 가는 지름길이긴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일단 출생의 문제는 대두되었지만 비밀은 아니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고 아이의 소유권, 양육권에 대한 소송이 하도 크게 벌어진 터라 전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역시 흔한 설정으로 한쪽 집안이 가난하지만 다정하고 심성 고운 어른들이 계시고, 다른 한쪽은 부유하고 이름 있는 집안이지만 비뿔어지고 냉혈한 어른들이 계시는 집안이란 것이다. 마르크의 애정으로 인한 근친상간의 여지까지 남겨두고 있으니 너무 전형적인가? 익숙한 클리셰지만 이게 일일드라마나 아침드라마가 아닌 미스터리로 가면 어찌 바뀌는지 볼 수 있다. 물론 결말은 예상가능한 범주 안에 있지만 사실 결과가 어찌 될 지 뻔히 보이는 드라마들도 우린 재미나게 보지 않는가.

또 하나, 묘사의 특이점이다. 나도 역자처럼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된 경우인데, 작가가 지리학과 교수란다. 그래서인지 장소, 지형, 지물에 대한 묘사가 상당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인물과 장소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는 편이고 사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이 캐릭터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 등장인물의 모습이나 주변 모습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비행기 사고가 난 지점에 대한 묘사나 탐정이 조사를 다니며 방문하는 곳들의 지형에 대한 설명이 꽤 자세하다. 책을 읽으며 뭔가 다르네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지리학과 교수라 자신의 장점과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글을 썼다. 이런 것도 책을 읽어가는 재미가 아닐까 한다. 이 작가의 책이 더 나와있으려나.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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