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소녀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추석 연휴에 보려고 쌓아둔 책들 중 제일 재미있었다.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3개월 된 아기의 신원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줄거리인데, 그 역시 꽤나 신선하고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이야기의 방식은 아기 릴리의 진짜 이름을 찾고자 18년째 조사를 해 온 사립탐정 탐정이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와 릴리의 오빠가 될지 남자가 될지 알 수 없게 된 마르크의 시점이 교차한다. 작가의 글솜씨가 꽤나 찰진 맛이 있어서 100장 밖에 안 되는 일기를 띄엄띄엄 읽는 마르크 때문에 감질나서 내가 확 빼앗아 읽고 싶을 정도였다. 독자를 안달나게 만들 줄 아는 작가인 듯 하다. 멋져~

사실 유전자 감식이라는 편리한 과학적 장치가 생긴 지금에야 이런 속터지는 상황과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지리한 시간들이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 때 당시엔 정말 작은 단서 하나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시대였다. 양 쪽 집안 모두 아들 내외를 잃고 유일하게 생존한 손녀 하나가 가족을 이룰 전부인 터라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무척 예민하고 모든 것을 다 걸고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이를 놓고 벌인 재판이 내놓은 결과는 사실 어느 쪽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서로 내 손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막상 어느 한쪽이 데려다 키우다가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고 점점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상황을 과연 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출생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진부하고 막장극으로 가는 지름길이긴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일단 출생의 문제는 대두되었지만 비밀은 아니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고 아이의 소유권, 양육권에 대한 소송이 하도 크게 벌어진 터라 전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역시 흔한 설정으로 한쪽 집안이 가난하지만 다정하고 심성 고운 어른들이 계시고, 다른 한쪽은 부유하고 이름 있는 집안이지만 비뿔어지고 냉혈한 어른들이 계시는 집안이란 것이다. 마르크의 애정으로 인한 근친상간의 여지까지 남겨두고 있으니 너무 전형적인가? 익숙한 클리셰지만 이게 일일드라마나 아침드라마가 아닌 미스터리로 가면 어찌 바뀌는지 볼 수 있다. 물론 결말은 예상가능한 범주 안에 있지만 사실 결과가 어찌 될 지 뻔히 보이는 드라마들도 우린 재미나게 보지 않는가.

또 하나, 묘사의 특이점이다. 나도 역자처럼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된 경우인데, 작가가 지리학과 교수란다. 그래서인지 장소, 지형, 지물에 대한 묘사가 상당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인물과 장소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는 편이고 사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이 캐릭터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 등장인물의 모습이나 주변 모습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비행기 사고가 난 지점에 대한 묘사나 탐정이 조사를 다니며 방문하는 곳들의 지형에 대한 설명이 꽤 자세하다. 책을 읽으며 뭔가 다르네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지리학과 교수라 자신의 장점과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글을 썼다. 이런 것도 책을 읽어가는 재미가 아닐까 한다. 이 작가의 책이 더 나와있으려나.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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