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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노잉
체비 스티븐스 지음, 노지양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작품이다. 참신하다고 해야하나? 지금껏 접해보지 못 한 소재였다. 골자는 간단하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던 세라에게 에반이라는 멋진
약혼자가 생겼고 그들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입양아로서 살아온 세라에게 가족이란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였고 오랜 시간 궁금했던 친어머니를 찾았는데
그녀는 딸, 세라를 피한다. 알고보니 세라의 친어머니는 연쇄살인범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피해자였으며, 그 살인범의 강간으로 임신되고 태어난
애가 세라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결국 소문이 나고 연쇄살인범이자 세라의 친아버지는 그녀에게 접근하게 된다.
세라는 불안 증세와 분노 조절 장애 등으로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는데, 그 상담 선생님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책은
진행된다. 형식의 특성상 세라가 처한 상황에 따른 다양한 감정 변화를 여과 없이 느낄 수 있다. 흔히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불리는 방식이
인물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기에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3인칭 시점을 유지하는 작가의 판단이 반영되어 설명하는 것이라 주인공의
심리를 독자가 고스란히 느끼기엔 한계가 있다. 물론 이 책에서처럼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도 결국 작가의 입을 빌린
것이기는 하다만 독자가 밖에서 구경하고 관찰하듯 주인공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가까운 누군가가 나 자신에게 털어놓는 비밀 이야기를
듣는 듯 해서 훨씬 사건과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든다. 그 때문에 그 여자의 과도한 흥분 상태나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말저말 함부로 내뱉는 것도 다소 참아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세라의 감정 상태를 표현했다면 그녀가 닥친 상황을 십분
이해한대도 주위 사람들에게, 특히 소중한 이들에게 감정의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함부로 구는 태도에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액션/스릴러 장르에 속하긴 하지만(그런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핏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성격, 재능, 외모의 생김새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적 자식으로서 물려받는 것과 환경과 시간에 영향을 받는 변화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누군가의 자식, 연인, 형제자매, 부모 등 한 사람에게 부여된 다양한 역할은 결국 다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쫓고 쫓기는 스릴러적 재미의 대부분은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여기서는 세라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잃을 수도 있는 것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공존하며 살인범 아버지에 대한 공포, 그와 자신의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면서 문득
떠올리는 동질감 등에 대한 묘사가 보태어져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체비 스티븐스는 불안정한 가족 관계 속에 심리학적 요소를 버무린 작품을 주로 쓴다는데, "네버 노잉"은 국내에 두번째로 소개된 그녀의
작품이다. 첫 소설인 "스틸 미싱"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 이를 테면 그런 거죠. 이제까지 뭔가 잘못된 인생을 넘겨받아서 살고 있었고 진짜 나한테 맞는, 제대로 된 인생을 찾기만 하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한테 맞는 인생 따위는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아니면 결국 나에게 맞는 인생은 사실 잘못된 인생이었다,
그런……. 됐어요. 무슨 말인지는 아시죠? 제 성질머리에 대해서, 말이나 손이 먼저 나가려는 제 습성, 앨리의 발작적인 짜증, 우리가 정말
자제심을 잃을 때는 둘 다 선을 넘는다는 걸 생각했더니, 어쩌면 우리 모녀는 사실 그 다른 인생, 그 가족에 속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에 친어머니를 찾았다고 말했을 때 제가 깨지고 있는 얼음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얼음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기분이에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노력하면서 위의 빛 한 줄기에만 집중하고 있죠. 그래서 겨우겨우 구멍까지 찾아 나왔는데, 그 구멍도
얼어서 막혀 버린 거죠.
- p. 204 ~ 205 ]
[ 그녀가 문까지 따라왔다. "아홉 달 동안 당신을 내 안에 품고 있으면서 얼마나 역겨웠는지…….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온다는 생각만으로도,
그의 일부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웠다고요."
그 말을 듣자 난 얼음이 되어 버렸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 고통이 나를 공격하길, 손을 베었을 때처럼 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심하게 상처를 받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 p. 3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