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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2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재밌다. 잘 썼다. 하지만 복장이 터진다. 2편은 1편과는 다른 이유로 속이 답답하다. 사실과 법 혹은 진실과 규율이라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온 조지에게 안면도 전혀 없는 사람이 인종이 다르다고, 혼혈이라고 자신을 증오하고 원망하고 누명을 씌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이해도 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조지의 말에 틀린 점은 없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자신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고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만나본 적도 없고 어떤 접점도 없는 인물이 다른 누군가를 그토록 미워하고 있지도 않은 일을 악의적으로 꾸며대어 오랜 세월을 괴롭힌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보게, 조지군! 세상이, 사람의 마음이 그리 원리원칙대로만 움직인다면 애초에 법과 질서가 존재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네.
1권에서 조지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과정이 기가 차고 한심했다면, 2권에서는 조지의 어이없을 정도로 바르고 성실한 관점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성직자이신 아버지의 가르침과 목사관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시야를 어쩌면 이렇게까지 경직되게 할 수 있는지, 유년 시절에 받게 되는 모든 교육의 영향력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절대적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산산히 부서진 후 3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음에도 조지의 관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 하다. 비슷한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감정의 수순, 타인에 대한 원망이라든지 자기비하라든지 하는 단계의 과정들을 조지에게선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보면 대단하다고 하겠다.
아서의 성격이나 그가 살아가는 방식들이 전적으로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위대한 작가로서의 습관(사람을 관찰하는)이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법 없이, 오롯이 자신의 눈으로 바로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눈 앞에 있는 상대방의 진실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고 믿음이 간다. 같은 의미에서 아서가 준 어떤 도움보다도 조지에게는 첫 만남에서 아서가 한 말이 평생 기억에 남았으리라.
[아서는 분명하고 또렷한 시선으로 조지를 내려다본다. "조지, 전 당신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고, 이제 당신을 만났습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전 당신이 무죄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게 아닙니다. 전 당신이 무죄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조지로서는 아예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스포츠로 다져진 커다란 운동선수의 손을 내민다. - p. 31 ]
눈 앞의 사람이 저런 멘트를 또렷한 발음으로 분명하게 말해준다면, 설사 그 정체가 사기꾼이라고 하더라도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물론, 실제 아서 코난 도일이 조지에게 저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 아서가 조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애쓴 시간들을 고려해 볼 때, 한번쯤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갔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책의 마지막 장이 아서의 사후에 있었던 강령회를 그리고 있는데, 아서가 심령주의에 열중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런 부분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를 뭔가 그럴 듯 하게 마무리 할 방법이 딱히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뭐,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본 편이라 크게 불만으로 다가오지 않긴 한다만. 아, 줄리언 반스의 또 다른 책을 내가 어디다 던져두었더라. 한번 날 잡고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