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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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워낙 히트를 친 책이라 괜시리 읽기를 미뤄두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터라 꽤나 유쾌한 내용일 거라 짐작했다. 뭐, 제목에서부터 그런 뉘앙스가 풍기기도 하지만 독서인구도 줄어들고 경기도 안 좋은데 사람들이 무겁고 진지한 책에 열광하진 않을테니까. 나 역시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 월차를 내어 쉬던 날, 향이 좋은 커피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며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알란 칼손은 100세 생일 파티를 앞두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다. 책은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100세의 알손과 그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준다. 100세 노인이 도망다니는 과정 역시 신기하고 흥미롭지만 그와 과거는 더욱 대단하다. 책의 1/3 가량을 읽고 난 후부터는 그의 현재보다 과거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만 그는 살아가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알란은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것(정치나 종교 등)은 멀리하며, 사태를 크게 부풀려 걱정하거나 다가올 일을 미리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의 어머니가 주신 가르침 그대로 상황을 단순히 현상 그 자체로 보고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행할 뿐이다. 그의 기나긴 인생이 지나는 길목마다 세계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이 맞물려 들어가는, 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100세까지 이어오면서도 별탈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알란의 인생철학은 그야말로 쿨하다고 해야할지 단순무식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과 행동 등을 보고 있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쓸데없이 머리를 많이 굴리고 사서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건 얼마 되지 않으며 정작 중요한 건 우선 고려대상에서 늘 빠져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 하고 있는 것들을 알란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00세, 세자리 수의 나이를 갖는다는 것은 언뜻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알란의 말처럼 그도 날 때부터 100세였던 것이 아닌데 말이다. 비록 무릎은 자꾸 쑤시고 금방 피로해지고 한 끼라도 거르면 큰 일 날 것 같지만 팔딱팔딱 생기 넘치는 정신만은 놓치지 말고 살아야겠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 p. 47 ]


[알란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길 잃은 영혼으로 느끼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또 종교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자신은 언제나 불확실한 것들보다는 눈에 분명히 보이는 것들을 믿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 p. 207 ]


[누구나 자기 기분대로 행동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알란이 생각하기로는, 충분히 그러지 않을 수 있는데도 성질을 내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 p. 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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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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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마성의 아이]를 읽었을 때, 그닥 재미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 책은 십이국기 시리즈의 프리퀄 컨셉의 책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아니다 싶다. 십이국기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에 대한 정보가 극도록 없는 상태에서 [마성의 아이]를 먼저 접하는 건 책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너무 무모한 시도라고 본다. 시리즈의 중간에 위치해야 할 책을 맨 앞에 두다니, 시리즈에 대한 의심만 가득하게 만들 뿐이다. 십이국기의 두번째 이야기인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마성의 아이]에서 보았던 다이키가 주인공이다. 다이키는 기린이다. 기린이 태어날 태과가 열렸건만 식이 일어나 다이키는 봉래로 흘러들어갔다가 인간세상에서 십년의 시간을 보낸 후 봉산으로 돌아온다. 봉산을 떠나 있던 시간이 길어 기린으로서의 자각이 늦어지고 다이키는 마냥 불안하기만 하다. 


십이국기의 1권과 2권은 성장스토리의 느낌이 강하다. 2권 역시 다이키의 성장담이라 할 수 있다. 기린으로서의 능력과 임무를 자각하고 왕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며, 뒤늦게 다이키가 봉산으로 돌아와 십이국기의 세상에 대해 깨치고 눈 떠가는 것처럼 독자도 속도를 맞춰 함께 배워나가는 재미가 있다. 다소 유약하고 내성적이며 늦되 보이던 다이키는 흑기로서 멋지게 자각을 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그려지는 책 후반부가 유독 흥미진진하다. 판타지 장르를 멀리하는 이들에겐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어차피 소설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이니 만큼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본다. 난 이 세계가 마냥 재밌고 즐겁다. 후속작들이 나오는 속도가 늦어지는 것 같다. 3권은 조금 묵혔다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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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2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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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잘 썼다. 하지만 복장이 터진다. 2편은 1편과는 다른 이유로 속이 답답하다. 사실과 법 혹은 진실과 규율이라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온 조지에게 안면도 전혀 없는 사람이 인종이 다르다고, 혼혈이라고 자신을 증오하고 원망하고 누명을 씌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이해도 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조지의 말에 틀린 점은 없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자신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고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만나본 적도 없고 어떤 접점도 없는 인물이 다른 누군가를 그토록 미워하고 있지도 않은 일을 악의적으로 꾸며대어 오랜 세월을 괴롭힌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보게, 조지군! 세상이, 사람의 마음이 그리 원리원칙대로만 움직인다면 애초에 법과 질서가 존재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네.


1권에서 조지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과정이 기가 차고 한심했다면, 2권에서는 조지의 어이없을 정도로 바르고 성실한 관점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성직자이신 아버지의 가르침과 목사관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시야를 어쩌면 이렇게까지 경직되게 할 수 있는지, 유년 시절에 받게 되는 모든 교육의 영향력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절대적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산산히 부서진 후 3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음에도 조지의 관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 하다. 비슷한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감정의 수순, 타인에 대한 원망이라든지 자기비하라든지 하는 단계의 과정들을 조지에게선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보면 대단하다고 하겠다.


아서의 성격이나 그가 살아가는 방식들이 전적으로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위대한 작가로서의 습관(사람을 관찰하는)이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법 없이, 오롯이 자신의 눈으로 바로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눈 앞에 있는 상대방의 진실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고 믿음이 간다. 같은 의미에서 아서가 준 어떤 도움보다도 조지에게는 첫 만남에서 아서가 한 말이 평생 기억에 남았으리라.


[아서는 분명하고 또렷한 시선으로 조지를 내려다본다. "조지, 전 당신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고, 이제 당신을 만났습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전 당신이 무죄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게 아닙니다. 전 당신이 무죄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조지로서는 아예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스포츠로 다져진 커다란 운동선수의 손을 내민다.   - p. 31 ]


눈 앞의 사람이 저런 멘트를 또렷한 발음으로 분명하게 말해준다면, 설사 그 정체가 사기꾼이라고 하더라도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물론, 실제 아서 코난 도일이 조지에게 저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 아서가 조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애쓴 시간들을 고려해 볼 때, 한번쯤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갔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책의 마지막 장이 아서의 사후에 있었던 강령회를 그리고 있는데, 아서가 심령주의에 열중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런 부분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를 뭔가 그럴 듯 하게 마무리 할 방법이 딱히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뭐,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본 편이라 크게 불만으로 다가오지 않긴 한다만. 아, 줄리언 반스의 또 다른 책을 내가 어디다 던져두었더라. 한번 날 잡고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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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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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의 이름이 알려진 건 부커상을 받았던 작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출판된 후 일 것이다. 아니, "빨간 책방"에 나온 뒤인가? ^^;; 아껴 읽으려는 마음에 서재 책무덤 어딘가에 고이(?) 보관해 두었었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을 먼저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아직 2권 중 앞 권을 읽었을 뿐인데,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간만에 책에 푹 빠져 업무에 집중이 안 되더라.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ㅋㅋㅋ


셜록 홈즈의 작가로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이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를 창조해 낸 유명한 작가가 다른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다니,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혹할만한 흥미로운 설정이 분명한데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남다른 탓에 완성도까지 갖췄다.


두 주인공인 조지와 아서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성장한, 평생 우연히 옷깃 한번 스칠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선입견과 편견에 가득찬 경찰들과 무지하고 권위적인 법원과 정부 관료들은 가정과 사회의 문화와 규율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온 전도유망한 젊은이 조지를 범죄자로 만들고 평범한 일상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책을 읽는 내내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아서의 매제 윌리 허눙이 말한 것처럼, 경찰엔 셜록 홈즈같은 인물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지만, 억울한 인생을 살게 되는 인물들의 주변이 늘 그렇 듯 한심하고 편협한 데다 비논리적이며 비열한 인간들이 득시들대고 착하고 선한 이들은 마냥 무력하기만 하다.


조지는 7년 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규율과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온 조지는 감옥 생활에 나름(?) 적응을 해 나간다. 그 안에서 읽은 많은 책 들 중에 아서의 책이 있었나보다. 셜록 홈즈를 창조해 낸 뛰어난 안목의 작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인지 1권의 마지막에서 드디어 두 사람의 접점이 드러난다. 부디 아서가 조지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도와주면 좋겠다. 셜록 홈즈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나간 것처럼 조지의 누명을 밝혀주고 잃어버린 3년에 대한 보상을 받게 해주면 좋겠다. 그러러면 먼저 이 리뷰는 고만 쓰고 2권을 읽어야겠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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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매인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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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분서 시리즈는 모두 평타 이상은 치는 듯 하다. 경찰 소설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도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분량이 길지 않지만 어설프거나 허둥대는 느낌은 전혀 없다. 쓰잘데기없는 군더더기들이 없어서 꽤나 담백하게 읽히고 등장인물에 대한 호감도 역시 좋은 편이다.


이번 [마약 밀매인]은 책 속의 문구처럼 눈에 확 띄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건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엄청난 범죄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숨어있는 것도 아니다. 다음에 언급하려고 하는 부분이 아니라면 딱히 리뷰 쓸 만한 것도 없는 편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다른 책들 중에서 비슷한 설정을 몇번 본 적이 있다. 정의감 넘치고 업무에 충실한, 직급도 어느 정도 있고 인망도 높은 형사나 검사 등의 자식이 현재 수사 중인 범죄에 휘말려 버린 것이다. 그들은 자식에 대한 애정과 직무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경찰이든 검사든 탐정이든 사실 가정을 잘 돌볼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가사와 육아는 아내에게 맡긴 지 오래고 자식들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불편해 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 아이와 아내를 사랑하는 데다 해당 분야에서 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온 지라 고뇌의 시간은 길고 고통스럽다. 이 작품에서도 같은 설정이 나오길래 살짝 식상할 뻔했는데, 비비 꼬거나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 작가의 스타일답게 깔끔하게 해결이 났다. 맘에 들어~


'담백','깔끔'은 작가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믿었었는데, 책 뒤의 '저자의 말'을 보니 아니었나보다. 약간 우왕좌왕하고 엉뚱한 발상을 하기도 하며, 다소 산만한 스타일 같다. 본인의 이름을 한 차례 개명한 뒤, 또 이름을 바꾸어 사용한 것만 보더라도... "에드 맥베인"이라는 이름은 왜 또 집어치웠는지... 암튼 괜찮은 편집자가 작품을 살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편집자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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