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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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별로다. 말이란 상대에게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간단,명료,심플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복잡한 단어나 스펠링을 짐작하기 어려운 외래어 따위 남발하지 않는, 편안한 일상의 언어로 울림을 주는 그런 글이 좋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시보단 산문이, 소설이 좋아졌다. 주입식 교육의 폐혜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미 죽고 없는 작가에게 확인도 받지 않고 사람들 멋대로 몇 단어 되지도 않는 글에서 이게 무슨 상징이고 중의적 의미가 어쩌고 하는 게 싫어서 시를 더 멀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시가 분명히 존재한다. 명작이란 그래서 위대한 것이 아닐까. 어떤 편견과 선입견, 외국의 언어, 문장의 길이나 소재 따위와 상관없이 바로 마음을 건드리는 힘, 그것을 가지고 있다. [중쇄를 찍자!]는 책 자체도 좋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시 한편으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 되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결코 화내지 아니하며

늘 조용히 웃으며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 숲속 그늘에 지붕을 새로 이은

작은 오두막에서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계시면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두라고 말리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위 닥친 여름에는 어찌할 바 몰라 허둥거리고

모든 사람에게 바보 소리를 들으며

칭찬도 듣지 않지만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고

나는 되고 싶다


- 미야자와 겐지 -



" 그저 글씨가 늘어서 있을 뿐인데

  어째서 나는 우는 걸까.

  어째서 가슴에 스며드는 걸까."


저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린 사람은 주인공이 입사한 출판사의 사장이다. 그의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 내가 관여한 서적은 전부 히트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책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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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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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자와 호노부의 책은 다소 묘한 섬뜩함과 기분나쁜 여운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이긴 한데 소재나 내용에 따라 약간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이번 책은 6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작가의 색을 제일 잘 보여준 것은 '석류'라고 생각하지만 근친상간류의 막장 스타일은 내 취향이 아니고, '사인숙'과 '만원'은 고만고만했으며, '문지기'는 전설의 고향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를 보는 듯 했다. 표제작인 '야경'과 '만등'은 좀 실망스러웠다. 작가가 의도한 것만큼의 서늘함은 결코 나오지 않더라. 전체적으로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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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의 해 - 내 인생을 구한 걸작 50권 (그리고 그저 그런 2권)
앤디 밀러 지음, 신소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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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전공자인 작가가 남들에겐 읽었다고 말하고 다니던 책 50권을 실제로 읽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보통 이런 류의 책에 관한 책에 등장하는 독서 리스트는 메모하여 따로 저장해두고 나도 읽어봐야지 하게 마련인데 이번 경우는 예외다. 처음 들어보는 책들도 있고 당췌 엄두가 안나는 책들이 태반이다. 결코 쉽다 할 수 없는 책들을 연이어 다 읽어낸 작가를 대견하게 여기게 될 뿐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것이 두가지 있었다. 인생을 구한 50권은 그렇다 치고 그저 그런 두권의 책이 뭘까 싶었고, 또 하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훌륭하고도 무사히 잘 마쳤는데 뭐가 위험한 독서의 해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웬걸, 작가는 그 책들을 다 읽고 난 후 회사를 때려치우고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섰다. 아, 이래서 위험한 해란 얘기구나... 하고 공감을 크게 했더랬다. 인생을 구한 50권이란 것은 출퇴근 전쟁에서 벗어나 인세 생활자가 된 것을 의미한 거였나, 역시 깨달은 자는 행동도 과감하다. 비루한 월급생활자인 나는 그 50권들을 모른 척 하는 걸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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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하는 이유 - 일본 메이지대 괴짜 교수의 인생을 바꾸는 평생 공부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오근영 옮김 / 걷는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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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다카시의 책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잔소리 같지 않고 강요하는 듯 들리지 않으면서 뭔가를 전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꾸준히 다방면으로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는 사람인지라 책도 다양하게 쓰는 편이다. 최근 건강이 많이 안 좋아 고생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 심란했었다. 그러다 이 책을 보게 됐는데 사이토 다카시 역시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는 내용이 있더라. 꼭 건강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더라도 계기가 있으면 사람은 조금 변하게 마련이다. 나 역시 내 삶의 근간이 되는 어떤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껴졌다. 올해 들어 인문학이나 역사 분야에 관심이 자꾸 생기고 그 분야의 책이나 강연 등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막연히 '나'자신을 위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분명해졌다. 내친 김에 같은 작가의 "공부의 힘"까지 읽어보련다.


 안타깝게도 요즘 사람들은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도통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즉각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공부만 하지, 재밌어서 혹은 호기심이 생겨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죽기 전에 여행해야 할 100곳처럼 언젠가 시간이 많을 때 해야 할 목록에 담겨 있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당장 급한 일에 매달릴수록 삶의 호흡은 얕아질 수밖에 없다. 가쁜 호흡이 심장을 자극해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삶의 호흡이 얕은 사람들은 작은 스트레스에도 인생이 끝난 것처럼 힘들어한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춰 깊은 숨을 들이쉬며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뭔가를 즐기며 배우는 것이 바로 그런 '깊은 호흡'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신선한 산소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활력을 심장에 불어넣듯이, '호흡이 깊은 공부'는 새로운 지식으로 마음의 세포를 재생시켜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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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의 마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1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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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학 탐정 시리즈 2권이다. 1편보다 좋더라. 미쓰다 신조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현대물에서도 통한다는 걸 확인했다. 역시 믿고 보는 보람이 있는 작가다. 


사건 이야기가 먼저 진행되고 난 후 탐정 쓰루야가 나오는 방식도 좋았다. 심지어 중반이 넘어가도록 쓰루야가 등장하지 않아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건의 흐름에 맞아 편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너무 나대지 않고 탐정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주는데다 쓰루야 특유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해서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등장이었다.


2편은 대학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괴기 동호회 이야기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사각형의 방에 5명의 사람들이 각 귀퉁이에 서서 차례로 다음 귀퉁이로 이동하며 고리를 만들어 가는 괴기스러운 이벤트를 벌인다. 실제로 이 게임에 필요한 이는 5명인데 4명이서 진행하다가 다 끝나고 나서야 그 모순을 깨닫게 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는 버전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건 그냥 담력테스트 정도의 장난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은 몰랐다. 예상되다시피 이 괴기동호회의 의식 중 한 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후로도 사망사건이 계속 발생한다. 과연 범인은 귀신일까, 사람일까.


사상학 탐정 시리즈는 분명 묵직하고 복잡한 느낌은 아니다. 분명 살인을 저질렀으니 선한 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이전 시리즈인 ~하는 것 시리즈의 악인들보다 순해뵈는 듯한 착각(?)도 든다. 하지만 가벼운 듯 보이는 그 이야기 안에서도 이그러진 인간들의 감정선은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시리즈 1편 때는 반신반의(의심해서 미안해요) 했었는데 이젠 시리즈의 다음 편을 기다리게 되었다. 다만, 표지는 좀 바꿔주면 안되나요... 저런 만화스런 표지는 좀... 작가가 [사우의 마] 한국판 표지가 저런 걸 과연 알고 있으려나? 출판 계약 과정에서 분명 허락을 받아야 할 항목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작가님 취향이 독특한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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