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평점 :
시그리드 누네즈, 195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5년 장편소설 ‘A feather on the Breath of Bod’ 을 시작으로 ‘우리가 사는 방식’, ‘친구’ 등을 발표했으며 전미도서상, 화이팅 상, 로마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60 년대 격변하는 미국 사회의 풍경을 관통하며 서로 대비되도록 다른 두 여성의 삶과 우정을 세심하게 그린다.
1968년 가을, 나는 앤을 처음 만났다. 그는 자신이 암적인 백인종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고 끔찍하게 여겼으며 부르주아적인 안락을 혐오했다. 대학 2학년 초반, 미군이 캄보디아를 침략한 때, 대학 생활에 환멸을 느낀 나와 앤은 서로 다른 이유로 학교를 떠난다. 취업 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때, 앤이 자신의 연인 ‘콰메’ 를 소개하고 나는 ‘그의 눈동자가 아름답다’고 했다는 이유로 앤의 분노를 산다. 앤과 화해하지 못한채 일상을 보내던 나는 출근길에 구입한 <타임즈> 1면에서 경찰 살인범이 된 앤을 마주한다.
소설은 내가 ‘앤’ 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되며 4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나’ 는 집을 탈출하기 위해 진학한 ‘바너드’ 대학에서 ‘앤’을 만난다. 나는 소설의 주요 인물 3명의 관찰자로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행복한 인생을 보낸다.
‘앤’은 ‘시몬 베유’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표현되며 급진주의를 대표한다. “어린 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에 대해 알게됨과 동시에 자신이 그 악의 원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온갖 멋진 혜택들과 좋은 것들이 자신보다 운이 좋지 못한 타인들에 대한 착취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그가 자라난 60년대라는 시대의 가르침이었다.” 그의 이런 성향은 앤과 콰메의 집에 초대받은 날의 대화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앤’의 백인 특권층에 대한 분노가 어느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아름다운 눈 말이니? 옛날 옛적에 어떤 염병할 농장의 개새끼 같은 주인 놈이 노예였던 콰메의 조상을 강간했기 때문에 갖게 된 그 눈? 네가 하고 있는 말이 그거 니?”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마따나, 비웃음이 송곳니에서 뚝뚝 떨어졌다.“
‘솔랜지’는 ‘나’의 여동생으로 내가 바너드로 진학한지 얼마 후에 가출, 18살 어린나이에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급진주의와 함께 60년대를 대표하는 히피문화를 경험한다. “그로버와 팸, 그리고 그애가 사랑하게 된 명랑한 대가족 - 특히 늘 벌거숭이로 돌아다니고, 그 금발을 빗겨주거나 땋아줄 때면 풀과 마리화나 냄새를 풍기던, 솔랜지가 아는 어떤 아이들보다 행복하던 아이들 - 과의 서부 여행. 그들은 저 미친 버스에 올라 광활한 여름 하늘 아래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과 농장들과 공장들을 지나 대륙의 중심부로 달려갔다. 그게 미국이었다.”
그리고 나의 ‘엄마’, 유랑단의 창녀와 눈이 맞아 떠난 남편과 집을 끔찍하게만 여겼던 아이들 속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인물로 ‘앤’ 이 집착했던 착취당하는 타인의 삶을 산다. “물론 엄마 자신도 현관문 안쪽에 늘 자작나무 회초리를 걸어두었던 엄마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자랐다. (중략) 나중에는 남편에게 맞곤 했다. 엄마가 죽었을 때, 사인은 혈액질환이었고 아무도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라 영영 사라지지 않았다. 맞아 죽었어. 우리 엄마는 맞아 죽었어.”
작가가 표현하는 1960년은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무척 비현실적이다. 급진 주의와 히피 문화 각각도 극단적인데 그 둘이 공존하는 시대라니 상상하는것조차 힘겹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아무도 모르게,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시절은 어떤 시절일까? 단순히 어린날의 로맨스가 그리운 걸까? ‘우드스톡’ 과 ‘존 레논과 오노요코’ 그리고 ‘믹 재거’로 그려지는 60년대의 향기가 그리운걸까? 잘은 모르지만 그 시절은 지금과는 다르게 많은 이가 어느 성향이었던 간에 열정적이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건 분명해 보인다.
겪어보지 못한 시절에 향수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지금 열정과 낭만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