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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쌤 앤 파커스
'3일간의 행복', '사랑하는 기생충'의 작가 미아키 스가루의 최신작! 소설이다.
짬이 없어 못 읽고 있다가, 그럼 1장만 읽자하고 집어들었다가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나니 황순원의 '소나기', 영화 '러브레터'와 '이터널 선샤인'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책의 띠지에는
'일본발매 이틀 만에 4쇄 돌파!'
일본 독자들의 찬사!
***** 전작들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미아키 스가루 인생작!
***** 다정한 거짓말로 가득 찬 아름다운 작품!
***** 연애소설로도, 미스터리로도, SF로도 완벽하지 않습니까!
등이 적혀있었다.
책은 바로 시작하지 않는다. 용어설명을 페이지로 시작된다. 원래 소설에는 있지 않은 부분이지만, 옮긴이가 내용의 이해를 위해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책 읽기 전에 미리 용어에 대한 이해가 되도록하여 소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심한 배려다.
그래서 아래에 그대로 옮겨보았다.
용어 설명
의억: 나노로봇에 의한 기억 개조 기술이 만들어낸 가공의 기억
의자: 의억 속 가공의 등장인물
의억기공사: 의뢰인의 이력서를 토대로가공된 기억을 만들어내는 전문적인 인력
이력서 : 의억 구매 희망자와의 카운슬링을 통해 취득한 정보를 프로그램이 분석하여 계통적으로 정리한 도큐먼트
그린그린: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
레테 : 특정 시기의 기억을 제거해주는 나노로봇
메멘토: 삭제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나노로봇
엔젤 : 가공의 자녀를 제공하는 나노로봇
허니문: 가공의 결혼 생활을 제공하는 나노로봇
용어설명에서 나오는 것처럼, 소설의 배경은 사람들이 기억을 사고, 지우고, 그리고 지웠던 기억을 다시 살리는 미래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기도하고, 자신이 꿈꾸던 기억을 삽입한다. 심지어 여행을 가기보다는 여행을 갔었던 기억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 두 사람 '아마가이 치히로'와 '나쓰나기 도카'의 이야기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친구도 없는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아마가이 치히로는 어느날 '레테'를 사용해서 자신의 6세-1세까지의 기억을 소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행복한 기억을 사서 집어 넣으려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선택이었다.
그가 나노로봇 '레테'를 복용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에게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나노로봇 봉투를 다시 확인한다. 그에게 배송된 나노로봇은 행복한 청춘의 기억을 뇌에 심어주도록 프로그래밍된 나노로봇 '그린그린'이었다. 실수로 그것을 복용해버린 그는 그때부터 '나쓰나기 도카'라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으며 존재할 리 없는 소꿉친구의 기억을 갖게 된다. 그녀와 함께했던 달콤하고 행복한 가짜 기억들에 치히로는 힘들어한다. 결국 그는 그 행복한 기억들을 지우자고 결심하지만, 다시 제대로 배송된 '레테'를 복용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그녀가, 가공의 기억하던 그녀 '나쓰나기 도카'가 그에게 등장한다. 아래에 그 장면을 잠시 적어보면 이렇다.
***
아파트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하늘이 밝기 시작하고 있었다. 두번 다시 술 따위는 마시지 않겠노노라 맹세하면서도 어차피 이틀 후에는 또 아무 반성 없이 숱을 마시고 있겠지, 생각하기도 한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나와, 숙취로 자신을 저주하는 나는 다른 사람이며, 한쪽의 학습 결과는 또 다른 한쪽에 반영되지 않는다. 한쪽의 나는 술의 즐거움만을 배웠고, 또 한쪽의 나는 술의 괴로움만을 배웠다.
이른 아침의 주택가에 인기척이 없다. 근처 술집 뒤편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가 내 앞을 느긋하게가로지른다. 내가 약해진 걸
아는 걸까, 평소에는 나를 보면 다짜고짜 도망치던 고양이가 오
늘은 어쩐 일로 경계하는 빛을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까마
귀가 단말마와 같은 울음을 토하고, 그에 호응하듯 또 어딘가에
서 산비둘기가 한 소절 울음을 읊조린다.
기어가듯 계단을 올라, 가까스로 문 앞에 이르렀다. 주머니에서 열쇠 지갑을 꺼내 열쇠들 사이에서 현관문 열쇠를 찾았다. 겨우 이런 일에도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지금 금고 문을 따고 있는 걸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생하다가 겨우 문을 열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202호 문이 열리며 사람이 얼굴을 비쳤다. 나는 문을 열며 그 이웃에게 눈길을 보냈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터라 일단 얼굴을 확인하려는 마음이었다.
여자였다. 나이는 열일곱에서 스물 사이. 잠깐 밖에 나가 주스라도 사려는 듯한 가벼운 옷차림. 여명이 드리워진 손발은 투명할 정도로 하얗고, 산들거리는 길고 까만 머리는 복도로 불어오는 바람에 부풀어 오르며,
그날처럼, 시간이 멈춘다.
나는 문을 열다 멈춘 자세로, 그녀는 등 뒤로 문을 닫으려다 멈춘 자세로, 보이지 않는 못에 의해 그렇게 그 공간에 고정되었다.
거기에는 짙은 남색 유카타도 붉은 국화 머리핀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언어라는 개념이 한순간 상실된 것처럼,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도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맨 먼저 움직임을 되찾은 것은, 그녀의 입술이었다.
"...... 치히로?"
여자는 내 이름을 불렀고,
"...... 도카?"
나는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소꿉친구가 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몸에 닿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 손이 얼마나 따스한지 잘 알고 있다.
여름의 마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
이후의 이야기는 이책을 읽어나가야하는 분들을 위해 남겨둔다.
한가지 이 책의 특징이 있다면 이책은 레코드판처럼 A면, B면이 존재한다. 그래서 도서 중간을 잘 보면 색이 종이 한장이 끼워져 있어 구분이 된다. A면에서는 '아마가이 치히로'의 이야기가, B면에서는 '나쓰나기 도카'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히든 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 치히로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이 글은 마무리가 된다.
"여름의 마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한 치히로의 말처럼 무더운 여름, 달달하지만 쌉쌀한 이야기, 아련한 이야기, 미스테리, 로맨스를 경험하고 싶다면 꽤 괜찮은 책이다. 다 읽고 나면 '작가가 의도한 여름의 마법'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발표, 후 아사히신문사 웹매거진 '좋은 책 좋은 날(好書好日)'과 가진 인터뷰에서 작가 '미아키 스가루'는 “독자분들에게 제가 앓고 있는 병을 옮기고 싶어요.'너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기억과 가짜 기억,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야카와쇼보 SF 매거진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작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때마침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 그 마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죠. 그런데 만약 그런 사람이 누군가의 앞에 나타난다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할까요? 이런 질문이 집필 중 항상 머릿속에 있었어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