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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의 기원 ㅣ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74
이갑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6년 11월
평점 :





폐허가 된 곳에 홀로 남은 로봇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작은 종이에 적힌 글이 로봇을 다시 움직이게 합니다. 『텃밭의 기원』은 알록달록한 식물들을 가꾸는 로봇의 모습이 담긴 표지를 보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던 그림책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전쟁이 끝난 뒤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입니다. 그곳에 남은 로봇은 아마도 전쟁에 사용되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파괴하는 일을 했을 로봇이 작은 종이에 적힌 아이의 글을 발견하면서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씨앗을 뿌리고 생명을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로봇이지만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파괴하는데 쓰였던 로봇이 이제는 텃밭을 가꾸며 작은 생명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로봇은 세상에 씨앗을 모두 모아 종류별로 나누지 않고 골고루 섞어 뿌립니다. 그렇게 자라난 식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데 사과나무에 벚꽃이 피기도 하고 벚꽃에서 콩이 맺히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고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어쩌면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요. 자신이 심은 씨앗이 예상과 다른 모습으로 자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돌보는 로봇을 보며 서로 다른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이나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비난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서로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 역시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는지 돌아보며 포용한다는 것은 서로의 작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동물이 와도 반갑게 환영하고 품어주는 이 텃밭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되면 좋겠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 다시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지, 서로 다름을 어떻게 품고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이야기인 만큼 아이와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