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역할 없이도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채운다는 것 - 비우고 나면 열리는 새로운 문 ㅣ 파스텔 그림책 10
다다 아야노 지음, 고향옥 옮김 / 파스텔하우스 / 2025년 6월

우리아이책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채운다는 것』은 다다 아야노 작가의 그림책입니다.

'잔'이라고 불리는 찻잔의 이야기로 실수를 거듭하며 어엿한 찻잔이 되길 바라는 잔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엿한 찻잔이 된 잔은 진열장에서 선택되기를 기다리고 어느덧 따뜻한 홍차를 담는 잔이 됩니다.

따뜻한 홍차를 품고 할머니와 오후를 보내는 잔은 기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준비하고 있던 잔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잔은 어느 낯선 풀숲에서 깨어나고 텅 빈 자신을 보며 슬퍼합니다.

따뜻한 홍차를 담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던 잔은 어떻게 될까요?

따뜻한 홍차를 품고 누군가의 곁에서 쓰임 받는 시간을 큰 기쁨으로 여겼던 잔은

그 자리를 잃고 혼자 남겨진 뒤 자신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 듯해 깊은 상실감을 느낍니다.

그런 잔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고 느껴본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그 마음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습니다.

『채운다는 것』을 읽으며 우리는 너무 정해진 쓰임과 역할에만 마음을 기대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잘하고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를 판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기준에 벗어나면 내가 의미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정해진 자리가 아니어도 충분히 괜찮다는 말을 이 책이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비로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내가 나임을 기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운다는 것』은 정해진 역할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비교와 평가 속에서 자신을 맞추는 아이들에게 지금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격려해 줍니다. 나를 채우는 방식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채운다는 것』을 모두에게 권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