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해달라‘는 망언을 쏟아낸 후, 두려움에 떨던 싱클레어는 비로소 데미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서 크로머를 떼어놓자,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이상적 자아, 언젠가 되고 싶은 자신의 미래상을 만난다. 그는 데미안을동경하지만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 양가감정은 싱클레어의 또다른 덫이다. 데미안이 자신을 구해준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데미안에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데미안에 대한 마음이 동경에서 질투로, 질투에서 그리움으로, 그리움에서 연대감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바로 싱클레어의 내면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던 싱클레어는 악당 크로머를 통해 처음으로 어둠의 세계에 눈뜬다. 그리고 그 어둠의 세계와 싸우는 과정에서 숲 속의 현자(賢者) 같은데미안을 통해 자기 안에 도사린 뜻밖의 힘을 깨닫게 된다. 데미안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네 안의 특별함을 두려워하지 마. 누군가 너를 비난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더라도, 네 안의 가장 밝은 빛을 잃어버리지 마. 악은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지않아, 악과 대화하고, 악인 안에서도 좋은 점을 찾고, 악에 대해속속들이 파악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악의 그림자에 짓눌리지않을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데미안은 그 ‘사악한 그림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자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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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로 가는 길

나는 크로머를 통해 ‘진정한 권력‘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강한 척하거나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내 안의 힘을 확인하는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강해져 내 안에서 저절로 넘쳐흐르는 힘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것. 그것이 타인에게 군림하는 권력이아니라,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따뜻한 권력이 아닐까. 크로머에대한 태도 변화는 ‘내 안의 힘‘을 찾아 떠나는 영혼의 탐험과 같았다. 나는 크로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만큼 강해졌다. 10대시절 나에게 크로머는 단순한 두려움의 대상,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악당 크로머와 협상을 하고 싶어졌다. 크로머, 너는 약한 사람을 괴롭혀서 네 가짜 힘을 확인하고 싶겠지.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사이코패스가 되거나 동네•건달이 되어버릴걸.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악한으로 성장할 거야. 네가 쥐락펴락하는 싱클레어는 네 가짜 권력의 희생양일 뿐이야. 진짜 힘있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지. 자신의 소유물로 힘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의 미소를 통해 진정한 힘을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강인한 존재가 아닐까.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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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로 가는 길

골드문트가 요한의 상을 만든 후에 느꼈던 공허감도 바로그런 절망 때문이었다. 최고의 열락을 맛본 후 느끼는 깊은 절•망의 나락.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깊은 허무감. 골드문트는 요한의 조각상을 만든후, 자신의 죄를 더욱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그는 질문하기 시작한다. 내가 죽인 빅토르, 그의 시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로구나싶은 순간에 오히려 자신의 죄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 골드문트그것은 자신의 어둠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전체성‘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둠을 뺀 밝음만이나다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어둠과 죄악과 실수까지 끌어안은더 커다란 나를 발견하는 순간. 자신이 그토록 열정을 불태웠던대상을 완성하게 되자, 그에게는 더 이상 니클라우스 같은 직업적인 장인(匠人)이 되고 싶은 열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장인이라는 직업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예술의 열정을 끊임없이•불태우기 위한 방랑의 자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니클라우스는•자유를 향한 골드문트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니클라우스는자신의 제자가 더 훌륭한 장인이 될 수 있는 ‘재능‘만이 중요했기에, 골드문트가 꿈꾸는 ‘삶‘까지 배려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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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로 가는 길

스위스 융 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던 융 학파의 대가 제임스힐먼(James Hillman)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는 부모의 유전자를반반씩 물려받지만 정신은 엄마와 아빠의 기계적인 결합이 아니라고 한다. 즉 아이의 정신은 ‘엄마의 유전자‘와 ‘아빠의 유전자‘
를 반반씩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만의 고유한 ‘자기 운명의 유전자를 타고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옛 사람들은 다이몬이라고도 하고, 운명의 부름이라고도 했다. 아이에게 ‘넌 왜 아빠를닮지 않았니?‘, ‘엄마를 닮았으면 공부를 잘했을 텐데‘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덫인 셈이다.
모든 아이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운명의 도토리‘가 잠재되어 있으며 부모의 역할은 ‘더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이아니라 ‘아이만이 가진 운명의 도토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인정도 받지 못했던 골드문트는 환경만으로 본다면 고아나 마찬가지였지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 그는 나르치스라는 최고의 스승이자 지음)을 만나고, 니클라우스라는 훌륭한 멘토를 만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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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힘들의 주고받음이다. 칼 융은 개인 위에 있는 어떤힘이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는 순간의중요성을 강조한다. M. L. 폰 프란츠는 「인간과 상징」에서 ‘무의식‘이 ‘의식‘을 향해 눈길을 보내는 순간의 신비를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무의식이 비밀스러운 구도에 따라 자신을 이끌어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마치 나는 보지 못하는데나를 보고 있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을 때, 그 순간이 바로 영혼의성장을 향한 내적 충동이 눈을 뜰 때다. 이럴 때 무의식의 메시지를 감지하고 그것을 영혼의 성장을 위한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바로 ‘에고‘의 적극성이다. 에고는 이 영혼의 성장을 향한 내적 충동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어떤 목적이나 방향도 강요하지 않은 채, 자신의 내적 충동 자체에 몰두해야 한다.
사람들을 ‘외적인 성취‘로만 평가한다면, 우리는 결코 이 무의식의 실현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볼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계속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평생 주부로만 살아온 평범한 할머니에게서도 우리는 위대한 현자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 ‘무의식과의식의 통합‘은 책을 많이 읽거나 직업에 매진하는 것 같은 의식적 활동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외적으로 훌륭해 보이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의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향한 운명의 부름을 이행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성취임을 아는 것, 시험에 합격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원하는 직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를 통렬하게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무의식의 뜨거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에고의 성찰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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