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해달라‘는 망언을 쏟아낸 후, 두려움에 떨던 싱클레어는 비로소 데미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서 크로머를 떼어놓자,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이상적 자아, 언젠가 되고 싶은 자신의 미래상을 만난다. 그는 데미안을동경하지만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 양가감정은 싱클레어의 또다른 덫이다. 데미안이 자신을 구해준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데미안에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데미안에 대한 마음이 동경에서 질투로, 질투에서 그리움으로, 그리움에서 연대감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바로 싱클레어의 내면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던 싱클레어는 악당 크로머를 통해 처음으로 어둠의 세계에 눈뜬다. 그리고 그 어둠의 세계와 싸우는 과정에서 숲 속의 현자(賢者) 같은데미안을 통해 자기 안에 도사린 뜻밖의 힘을 깨닫게 된다. 데미안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네 안의 특별함을 두려워하지 마. 누군가 너를 비난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더라도, 네 안의 가장 밝은 빛을 잃어버리지 마. 악은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지않아, 악과 대화하고, 악인 안에서도 좋은 점을 찾고, 악에 대해속속들이 파악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악의 그림자에 짓눌리지않을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데미안은 그 ‘사악한 그림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자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