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방 The Black room K-픽션 26
정지아 지음, 손정인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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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책의 제목은 <검은 방>입니다. 단편소설이구요.



100 페이지 분량의 아주 얇고 작은 책입니다.

일단 두께가 얇으니 부담없이 펼쳐들었습니다.

어라, 한페이지는 우리말이고 한페이지는 영문이네요.

K-픽션(아마존을 통해서 전세계에 보급된답니다)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간되어 그렇다고 합니다^^

정지아 작가님 작품입니다.

대표작은 빨치산이었던 부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빨치산의 딸>이구요,

이효석 문학상을 비롯한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셨네요.

이야기는 지리산의 어두컴컴한 어둠 속, 검은 방에서 시작됩니다.

아흔아홉의 노파가 살고 있지요.

남부군으로 지리산에 남편과 입산하여 싸우다 남편과 동지들을 잃고 5년간 감옥살이을 하였고

출소 후 동지였던 한 남자와 마흔둘에 딸 아이를 낳고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녀가 믿어 목숨걸고 지키고 싶었던 사상이 사라진 시대, 오직 딸 만이 그녀의 현재이고 삶의 이유입니다.

그녀는 모르겠다. 헛고생을 한것인지, 눈곱만큼은 지금의 세상에 기여를 한 것인지.

그녀가, 동지들이 목숨바쳐 싸우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세상은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힘이 빠진다.

이 세상에 설 자리가 없는 느낌이다.

세상의 밖으로 하염없이 밀려나는 기분, 산을 내려온 이래로 늘 그런 기분으로 살았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딸은 전에 그녀가 본 세상보다 한없이 작고 사소하지만, 그녀에게는 전부인 우주였다.

그 작은 행복에 취해있다가 문득 지리산에서 바람이 불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러라고, 이리살라고, 수많은 동지들이 꽃같은 목숨을 아낌없이 버렸던 것은 아닐텐데..

p62

두변째 남편이 치매를 앓다 죽고 홀로되자 그녀를 걱정하던 딸은 지리산의 그녀 곁으로 돌아와 돌봐줍니다.

계약직 교수였던 딸의 경력을 망친듯해 마음이 편치 않지만 내심 좋은 그녀지요.

곧 남편을 따라갈테니 몇 달 정도는 딸의 얼굴을 매일 보는 호사를 누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몇 달만 누릴 작정이었던 호사는 십삼년을 향해 갑니다.

눈으로 보는것 외에는 길이 없어 그녀는 깜깐한 어둠을 응시한 채 상향등 불빛이 달려오기를,

딸집의 불이 켜지기를 학수고대 할 뿐이다.

딸의 일상이 사소하게 흔들리면 그녀의 삶에서는 우주가 흔들린다.

사상을 잃은 뒤로 딸이 그녀의 사상이 되었고,

딸이라는 사상앞에서는 잠시도 초연할 수가 없다.

p30-32

먼저간 남편과 동지들을 "금방 따라갈라요. 먼저 가서 자리잡고 있으씨요이" 하며 따라가기엔

딸이 거처하는 윗집의 등불이 그녀의 마음을 언제나 잡아끌지요.

그렇게 그녀는 검은방에서 한 평생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내며 그녀만의 시간을 살고있습니다.

아흔아홉 구비의 세월동안 그녀의 끝나지 않은 처절한 전투속에서.

딸이 세상의 중심이자 단 하나의 현재인 세상에서.

검은방 창작노트에 정지아 작가님은 이렇게 쓰셨다고 하네요

"어머니의 검은방은 어머니가 살아온 세상이며, 살아할 이유이며 동시에 죽어도 상관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의 끝인들. 검은방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늙어간다는 것은 쓸쓸하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다.

나의 늙음이 아니라 어머니의 늙음을 지켜보는 일이 두렵다.

나의 늙음은 스스로 감당하면 될 일,

내게 생명을 준 자, 이제는 아이처럼 천진해진 어머니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참담하다.

이것이 사랑인가? 모르겠다.

다만 도무지 초연해지지 않는다.

오늘도 어머니의 방은 어둡다.

어머니는 지금 어느 시간을 살고있는 것일까

p82

가슴이 먹먹해졌네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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