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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을 봤을때는 얼마전 봤던 영화 '카모메 식당'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맛있는것들이 내 머릿속을 날아다니게 되었다. 빵이라던가, 밥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전혀 먹어보지 못했던 그런 음식들. 특히나 일본 음식들중에는 그런것이 많아서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먹고싶어지던지...
한줄한줄 읽어나갔을때는 그려지는 식당의 풍경은 여전히 '카모메 식당'을 떠나지 못했지만, 책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림은 '서쪽의 마녀가 죽었다'라는 영화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무엇하나 부족할것 없던 나날들, 그리고 그 시간을 채우고 있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 이 둘 사이에서 내가 느낀것이 있다면 여유로움과 한없이 넘치는 사랑이었다. 비록 나는 그것을 외면했을지 몰라도, 내 가족들은 아낌없이 나에게 사랑을 주고 있다는 것. 그런 잔잔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잃어버린 것 :사랑, 가재도구 전부, 목소리
남은 것 : 겨된장야채절임이 든 항아리 하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링고는, 한없이 아늑하기만 했던 공간이 이제는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은 빈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가구며, 도구며 그 안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고, 미래를 약속했던 연인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고!!!
모든것을 잃은 링고는 10년만에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달팽이 식당'이라는 작은 식당을 연다. 정해진 메뉴 없음, 하루에 한팀. 손님의 취향과 인품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후 음식을 내놓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 식당에, 어느 날부턴가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그 기분이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 모든걸 다 들고 튀다니!! 이런 싸가지없는 놈이 있나! 게다가 그 충격으로 목소리까지 잃어버리고.. 무슨 낙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링고는 한가닥 희망(?)을 안고 엄마를 찾아간다. 십년동안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가족이기에 어색할줄 알았으나 그래도 엄마는 받아주었다. 식당을 열겠다는 딸에게 이자까지 쳐서 갚으라며 돈을 빌려주기도 하는 둥, 조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여기서도 뭐 엄마의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서쪽의 마녀'를 언급한 이유는 중간에 할머니와의 생활이 나오는데, 누구든지 다 그렇겠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뭐라고 해야할까.. 포근하게 뭐든지 다 감싸주는 것 같달까.. 내가 힘들어도, 내가 아파도 말이다. 엄마와 지내는동안 링고는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장난처럼 말하는 엄마라서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엄마의 말은 정말이지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엄마와 벽을 허물고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엄마는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이에 링고는 자신이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것은 요리밖에 없다며, 요리 세계일주를 준비한다.
책에서 나오는 요리가 궁금해지는 바람에 검색해볼까 하다가 관뒀다. 그러면 더 먹고싶어질 것 같고, 나는 책을 밤에 읽었는데.. 어찌나 입에 침이 고이던지. 그도 그럴게 냉장고를 탈탈 털어서 아무렇게나 만들었다는 그 수프조차 너무 맛있게 보이는걸 어찌하랴. 작가의 블로그에 요리법도 올라와 있다던데 그것도 찾아볼까 했었다. 맛있는 책이다. 게다가 맛만 있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있어 먹는동안에는 더욱 포근해진다. 맛이 깊어지는것은 말할것도 없다. 상황과 사람에 맞춰서 음식을 내놓는다면 나는 무슨 음식을 먹게 될까? 지금 머리에서 열이 나고, 속도 안 좋으니 따뜻한 한그릇 수프일까~
내 주위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자.
먹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요리를 만들자.
먹고 나면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요리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자.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곳, 달팽이 식당의 주방에서.
식당은 사람들도 많고,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다.
특히나 주방을 더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최고로 잘할 수 있는 요리를 내놓을 수 있다니.. 링고는 이제 더이상 헤매지 않고 제대로 된 자신을 찾은 것 같다.
다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막판에 엄마에게 조금 기대긴했지만 말이다.
다시 일어선 링고가 이번엔 어떤 음식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잡아당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