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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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미안하지 않기 위해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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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2014 올해의 환경책 / 『한겨레』가 뽑은 '2013 올해의 책' / 『시사IN』선정 '2013 올해의 책'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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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벌인 가장 큰 오만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사회가 자본주의에 잠식되면서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된다'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이와 같은 인간중심적, 자본주의적 서구의 사고방식이 세계를 잠식하는 동안 인간은 물론 자연마저 수없이 신음을 했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돈의 가치에 빗대어 가치를 결정하고, 주어진 환경을 지배하려고 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잃었나.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욕심에 자연을 원자 단위로 쪼개 에너지를 얻었고, 그로 인해 시한폭탄 같은 핵발전소를 등에 이고 살게 되었다. <한국탈핵>은 우리가 어떠한 것들을 잃었는지, 그간 인류가 지구를 위해 무슨 짓을 해왔는지, 이제 우리가 자멸할 작정이 아니라면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수치를 통해 보여준다.

 

김익중 교수는 그간 탈핵운동에 앞장선 학자로, 이쪽 분야에서는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원자력발전소라 불리는 핵발전소의 거짓말과 현재 대한민국이 핵발전 사고 위험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를 알리기 위해 수많은 강연과 책을 통해 알리는 중이라고 한다. 이 책은 그 강연의 정리본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하다. 책에서는 정부의 4대 거짓말(원자력은 안전하다, 원자력은 싸다, 재생가능에너지는 비싸다, 재생가능에너지로는 충분한 전기를 생산할 수 없다)에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세계가 지금 탈핵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와 수치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도 탈핵으로 나아가야 함을 분명하게 밝힌다. 또한 체르노빌, 후쿠시마 다음에 대한민국이 핵폭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제일 높으며, 일어난다면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정부의 핵발전소의 4대 거짓말에 대한 반박

 

1. 원자력은 안전하다?

말할 필요가 없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보면 알 수 있다. 핵반응이 일어나면 약 200가지의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 이 물질들이 일단 몸안에 들어오면 유효 반감기가 열 번 지나는 동안 지속적으로 몸의 세포들을 공격한다. 요오드는 반감기가 8일에 불과하지만 플루토늄은 24000년이 반감기다. 이 기간이 열 번 지나야 우리 몸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한번 들어오면 영원히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2. 핵발전소는 싸다?

발전단가에서 사고발생 위험비용, 원전해체 및 환경복구비용, 사용후 핵연료 처분비용 등은 제했기 때문에 정부의 수치 계산은 실제와 맞지 않는다. 35년 사용하고 고준위핵폐기물은 10만년, 중저준위핵폐기물은 300년 동안 안전한 방폐장 안에 보관해야 한다. 이러한 장소는 아직까지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만약 만들었다고 해도 그 보수비용도 유지비용 가격에 포함되어야 한다.

 

3. 재생가능에너지는 비싸다?

태양광은 매년 발전단가가 낮아지고 있고, 풍력은 이미 석탄화력 단가보다 더 싸졌다.  이 단가는 더 낮아질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기술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유럽 쪽은 탈핵을 결정하며 이미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용해 원자력의 에너지를 대체하는 사례들이 무궁하다.

 

4. 재생가능에너지로는 충분한 전기를 생산 못한다?

충분한 전기가 나오지 않는데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재생가능에너지로 핵발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의 에너지 비율을 따져보았을 때 핵발전의 2배 정도의 비율로 재생에너지가 생산되고 있다.

 

5. 태양광이 원자력의 전기를 대신하려면 전 국토를 태양광 패널로 세 번 덮어야 한다?

태양광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국토의 2퍼센트면 핵발전이 생산하는 전기(전체 우리나라 전기의 30프로)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이 2퍼센트는 고속도로 옆길을 패널로 덮는 방법이 있다. 이는 이탈리아 고속도로와 프랑스 암스테르담 고속도로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핵발전소는 한번 사고가 나면 그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한다. 끔찍한 사고가 눈앞에 펼쳐질 가능성이 다분한데, 지금 멈추지 않으면 자멸할 수도 있는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이미 폐쇄되어야 마땅할 고리원전을 재가동시키고, 수많은 사고와 비리로 점철된 한국전력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위험하지 않다는 듯이. 그러나 사고는 정말 한순간이다. 후쿠시마 9.0 강진으로 무너진 핵발전소는 전부 40년 된 노후원전이었다. 다음은 우리 차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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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재 동문선 현대신서 41
아티크 라히미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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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 중인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정작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흙과 재>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다. 때문이 이 소설의 리뷰를 쓰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알지 못하는 것을 더듬어 유추해내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외국 친구들에게서 얻은 간접적인 전쟁의 체험들을 이 책에서 느낀 것들과 엮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흙과 재>를 집필한 아티크 라히미는 전쟁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 프랑스로 망명한 이민자 가운데 하나다. 내 친구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이민자들이 몇몇 있었다.

 

 

 

 

호주에 갔을 때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70세 스리랑카 할아버지 라자와 30대 중반의 팔레스타인 아저씨 아담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내전을 피해 나라 바깥에서 사는 이민자였다. 라자는, 딸은 영국에, 아들은 호주에, 다른 딸은 또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영국에 있었으며 자신은 손자를 봐주며 호주 이민을 준비하는 중이라 했다. 그는 전쟁에 관해 말을 많이 아꼈다. 라자는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수 없었고, 나는 가족이 떨어져 사는 아픔을 위로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전 때문에 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사는 거냐는 물음에 말 없이 고개만 까닥였을 뿐이었다.

 

전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땅은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다. 아담 역시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고 있었다. 아담과 함께 있는데, 여동생이 팔레스타인 시내에 나갔다가 군인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밤새 어딘가에 전화해서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고, 분노로 가득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는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어, 아담의 친구인 또 다른 팔레스타인에게 길을 걷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자주 있는지 넌지시 물었다. 그 친구는 차를 몰고 가다가 군인이 총을 들고 다가와 쏘려고 해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호주 시민이다"라고 외쳐 살아남은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에 또다른 충격을 받았다. 죽음이 일상인 것처럼 들리는 그들의 말은 마치 농담 같았다.

 

아침에 웃으며 헤어졌던 가족이 저녁에 죽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인 생활을 어떻게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아담과 라자처럼 삶이 조금은 윤택한 자들은 이민이라는 길을 선택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신의 가호를 바라며 살던 땅에 발 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흙과 재>에 나오는 인물들도 전쟁으로 인해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 아내와 며느리가 화염에 휩싸여 죽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할아버지, 깊은 탄광 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느라 죽음이 비켜간 아들, 전쟁의 거대한 폭발음으로 인해 청력을 상실한 어린 손자.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죽음이 휩쓸고 간 고향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들에게 가는 길이다. 탄광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총칼은 가족의 소통을 단절시킨다. 손자는 자신이 청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신들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 것이든, 마을을 점령한 자가 민병대든, 소련군이든, 심지어 그것이 정의든 불의든,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가 그저 가족의 목숨을 빼앗는 얼굴 없는 존재들일 뿐이다.

 

 

 "어르신, 지금은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이들보다 더 복되고 행복한 때이지요. 어쩌겠습니까! 험한 시대를 만난 겁니다. 우린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을 잃어버렸어요. 권력이 인간의 신앙이 되었지요. 신앙이 우리의 힘이 되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이제 인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엄성을 간직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용기 있는 사람도 없고 말입니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의 과거를, 아들은 현재를, 손자는 미래를 상징한다. 소설이 묘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암울하다. 과거를 상징하는 할아버지의 고향은 아프가니스탄의 전통과 함께 폐허로 변했다. 현재를 상징하는 아들은 탄광이라는 깊고 깊은 어둠속에 갇혀 과거도 미래도 만날 수 없는 고립된 상태다. 미래를 상징하는 손자는 그 어떤 사실도 들을 수 없게 되었고, 곧 말하는 법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희망의 매개체로 읽히는 사과는 먼지로 가득하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손자에게 건네주기 위해 깨끗하게 닦으려 노력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자꾸 먼지가 앉는다. 위로로 읽히는 안정제 나스와르는 가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가득한 할아버지에게 결코 안정을 주지 못한다. 신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희망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나오고 입에서는 계속 거친 말이 쏟아져 나온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슬픔이 나를 잠식하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어르신도 아시겠지만, 때때로 고통은 녹아내려서 우리의 눈으로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말이 되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기도 하지요. 아니면 우리 안에서 폭탄으로 변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발로 우리를 파열시키기도 하고 말입니다."

 

 

소설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어설픈 희망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책에서는 "전쟁과 희생은 같은 논리다. 설명이란 게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전쟁에는 원인도 결과도 없고, 다만 소위 말하는 행위란 것만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작가가 배경을 생략하고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 소설을 쓴 이유라고 생각이 든다. 그는 전쟁의 민낯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념과 경제 논리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은 인간의 뿌리까지 파괴한다. 존중과 존엄이 사라지고 폭력과 권력이 난무한다. 서로의 논리가 정의라며 상대를 공격한다. 그러나 어떤 논리로 전쟁을 미화시킨다 해도 모든 피해는 전쟁의 정당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아닌 그 전쟁이 일어나는 땅의 사람들이 입는다.

 

그 거대한 비인간성 앞에 선 나약한 존재들에게 난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라자와 아담 앞에서 그들을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했던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식의 위로를 건네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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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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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내 삶에 답을 제시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보다 앞서 살았던 누군가가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깊은 조언을 들려준다면, 내 인생의 지표를 분명히 세우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나가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게다가 그 조언자가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이의 삶에 큰 울림을 준 스승이라면 그 조언의 깊이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 우간린이 공자와 그가 남긴 삶의 지혜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책에서 언급되는 공자 선생님의 구체적인 가르침들은 우리에게 ‘남’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해준다. 우리는 종종 남들의 눈이 무서워서, 또는 시류에 의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곤 한다. 때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때로는 주관을 버리고 남의 관점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눈앞에 닥친 어려움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이제 그만 이상을 포기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항복하기도 한다. 이런 삶은 자신이 아닌 남들이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공자는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을까? 그는 눈앞에 닥친 위기 앞에서 오히려 태평하게 행동하고, 현실과 타협하라는 부당한 요구 앞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로 인해 자신이 쓰일 곳을 찾지 못해 14년 동안 천하를 떠돌아다니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오히려 수천 년 동안 회자되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처럼 그는 원하는 삶을 스스로 살 수 있는 비결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 책은 공자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알려준다. 지금까지 원하는 대로 삶이 풀리지 않아 힘들어한 사람이 있다면 공자의 행동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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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통신 - 유쾌한 지식여행자가 본 러시아의 겉과 속 지식여행자 13
요네하라 마리 지음, 박연정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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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러시아는 2000년대 중반의 혼란한 상황이다. "되는 게 없는 나라,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라는 표현이 러시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장이었다. 내가 러시아에 있을 당시에는 사회주의의 과거와 자본주의의 현재가 공존하는 약간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한쪽에서는 높다란 건물들이 마구 지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존을 위해 빵을 달라"며 시위를 했다.빈부의 격차가 점차 심해져 고급 승용차와 우리나라에서 수입해온 폐차 직전의 버스들이 동시에 돌아다녔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에서 묘사하는 러시아는 "되는 게 없는 나라, 안 되는 게 없는 나라"인 점은 똑같지만 조금은 더 인간적인 느낌이 강하다. 

나로서는 2000년대 중반의 정황과 1990년대의 정황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 더 깊이 빠져들어 읽었던 것 같다. 요네하라 마리가 묘사하는 고르바 초프와 옐친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고하고 범접할 수 없는 지도자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외교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방한을 취소해버리는 행위라든지, "연하장을 누구는 보내고 누구는 보내지 않았다. 카드를 보내준 사람에게만 답장 카드를 보냈다"라고 말하는 옐친의 모습이라든지, "바람이 많이 불어 먼지가 눈에 들어가 힘들었습니다"라고 하는 일본 시장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무심한 소감을 듣고는 "그래요. 도쿄에는 먼지 같은 게 한 톨도 없으니까요"라며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모습들은 "수수께끼 러시아"라는 표현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들이 보여주는 수수께끼는 사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한 러시아였음을 생각한다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자본주의처럼 뒤에선 칼을 갈고 있어도 앞에서는 상냥하게 웃는다든지, 돈이 되는 사람은 가까이 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내치는 행위를 할 줄 모른다. 러시아는 '돈과 돈'으로 얽힌 관계가 아닌 '정서와 정서'로 얽힌 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러시아 회사가 계약을 이야기할 때, 마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 회사 대표를 가난한 일본의 집으로 초대하라고 했던 것은 이러한 그들의 인간중심주의를 그녀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 속에는 '자본'이 우선시되고 '물건'을 한껏 고급스럽게 치장하는 오늘날 사회와 반대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모든 물건이 "나를 사주세요"라고 강하게 외치는 자본주의 속 상품들과 다르게, 소련의 물건들은 무심할 정도로 대충 포장되어 있다. "네가 필요하면 나를 사라"라는 식의 시크함은 오늘날 과대광고에 눈이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그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월감에 마음이 움직여 그 볼품없는 상자에 감동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은세공 그릇을 그런 골판지 상자에 넣어 판매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한없이 움직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평가되며,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혈안이 되는 사회. 물건을 팔기 위해 온갖 지혜와 정열을 바치는 행위가 당연시되며 이제는 그런 현상이 멈출 수 없는 자동운동 모드에 돌입한 것 같은 느낌. 결국 무르익은 자본주의가 낳은 소비문명에 지치기 시작한 우리에게는 그 무뚝뚝한 상자가 신선했던 것이다."


비록 실패했지만 "모든 사람이 평등한 나라"를 표방하던 사회주의는 그 어떤 이념보다 인간적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인간중심주의가 그리워졌다. 그녀의 러시아 통신이 반가우면서도 뒷맛이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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