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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 믿을 건 9급 공무원뿐인 헬조선의 슬픈 자화상
오찬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오찬호 선생의 책을 읽으면 늘 마지막에는 우울하다.
사회가 커다란 오물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너무 더러운데, 그 더러운 것들을 씻겨낼 힘이 내게 없다. 그래서 우울하다.

이 책은 지금 한국사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성장 만능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70-80년대까지는 성장주의 시스템이 잘 굴러갔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점차 사회가 안정되고, 어느 정도 먹고살만해지면서 성장의 속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기업은 새로운 성장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해외로 향했지만 이마저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위기를 느낀 기업들은 사내보유금을 꾸준히 늘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라던 직원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있던 사람도 쫓아내는 세상에 새 사람을 뽑을 이유가 없었다.
일자리는 없고, 가계는 축소되고, 사람들에게 돈이 없으니 소비는 계속 줄었다.
사람들은 궁여지책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비혼'을 외쳤다.
나 하나도 버거운데 아이라니, 결혼이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성장은 없고, 모두가 혼자인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이했다.
'공무원 시험'은 또 다른 각자도생의 모습이다.
애초에 갈 만한 일자리도 없고, 어찌어찌 들어간다 해도 각종 차별과 경쟁을 버텨내느니
몇 년 죽었다 생각하고 노량진에서 죽은 듯이 공부해서 붙기만 한다면 나만은 이 각자도생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심지어 공무원이란 9시부터 5시까지만 일하고,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며,
은퇴한 뒤에도 기업 초봉에 준하는 월급을 '연금'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만연한 차별과 경쟁에서 살아남아도 50세 이후면 나와야 하는 성장주의 속 사기업과 비교한다면 천국 같은 곳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공무원 시험의 열풍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옳은지에 관해서는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공무원 시험 열풍은 결국 각자도생 시대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공무원 시험 쳐라'는 말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 제도권 밖 사람들의 아픔은 도외시된다.
책에서는 100명 가운데 63명이 백수인 장애인의 실태를 무시하고
"생산성이 더 높은 사람을 제쳐두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우대하는 건 차별이 아닌가?"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막말을 서슴치 않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힘든데 어쩌라고'라고 외치는 이에게 타인의 아픔은 우스운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각자도생 사회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헬조선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이민만이 답인 것일까?
책에서는 구체적인 해답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정치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할 뿐이다.
나는 이것을 '개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우치다 타츠루는 <어른 없는 사회>에서 세상에는 사회적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이를 고치려는 사람(어른)과,
'야, 어떻게 좀 해봐' 또는 '이건 내 업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아이)로 나뉜다고 했다.
이 어른의 비율이 사회의 성숙도를 결정한다. 올바른 사회는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제 정치적 인간, 즉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역시 헬조선' 따위의 자조적인 말을 버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모두가 함께할 때만이 개인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