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아누이의 안티고네 ㅣ 지만지 희곡선집
장 아누이 지음, 안보옥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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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누이의 안티고네>. 안티고네와 병사의 대화가 흥미로웠다. 안티고네가 오빠의 시체에 애도하다가 병사한테 발각되었을 때 병사들은 어느 술집에 갈까. 하는 대화를 한참 한다. 크레온의 명령으로 안티고네가 사형을 언도받았을 때도 병사는 경비병과 육군병사가 경쟁관계라는 얘기를 한참 한다. 병사의 말은 안티고네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이 장면이 부조리하게 보였다. 안티고네는 삶의 의미를 묻지만 병사들의 말은 안티고네에게는 무의미하다. 안티고네의 상황은 비극적이지만 병사들의 상황은 희극적이다. 안티고네가 목숨을 바쳐서까지 찾는 의미는 병사들한테는 큰 의미가 없다. 안티고네와 병사의 대화는 엇나가고 그때마다 안티고네는 세계 속에서 소외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부조리한 장면이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는 생존을 고민할 때 누군가는 무관심한 게 현실이지 않나. 누군가의 깊은 불안은 누군가에게는 횡설수설하는 웃기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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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알레스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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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의 희곡에서 인물들 사이에는 상반된 정서가 흐른다. <어느 여름날>에서는 ‘즐거움과 불안’이 흐르고 <가을날의 꿈>에서는 ‘사랑과 죽음’이, <겨울>에선 ‘떠남과 머무름(또는 가능과 불가능)’이 흐른다. 감정이 한 인물한테 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니 삶은 유한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영원한 즐거움도 없고 영원한 불안도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삶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희곡에서 상반된 감정들은 붙어 있는 듯, 한 뿌리에서 나온 듯 너무 가까이 있었다.

 

희곡에서 욘 포세는 인물에 특정한 이름과 직업을 부여하지 않았다. 인물들은 단지 ‘남자’ 와 ‘여자’ 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남자와 여자의 성별특징이 부각된 것도 아니었다. 희곡의 대사에는 말과 말 사이에 (사이), (짧은 사이) 처럼 쉼이 많았다. 이렇게 인물의 외형과 말을 꽉 채우지 않을 때, 즉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때 여백이 생긴다. 여백은 대상의 구체적인 형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내면에 담고 있는 내용을 나타낸다. 희곡에서 인물들 간 감정이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다 감정은 내면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이 희곡의 중요한 장치는 여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리면 참 재밌을 것 같다. 여백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사실은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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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연극 ㅣ 지만지 고전선집 447
야스미나 레자 지음, 이용복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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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연극을 하는 친구 B군은 사람 구경하는 게 연기연습이라고 했다. 걸어가는 노인을 관찰하고 사랑에 빠진 커플의 몸짓을 관찰한다는 것이었다.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 <스페인 연극>을 읽고 연기는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 연극>은 배우들이 <스페인 연극>이라는 연극을 하면서 연기론에 대해 했던 인터뷰와, <스페인 연극>이라는 희곡과, <스페인 연극>이라는 연극 속에서 배우가 <불가리아 연극>이라는 연극을 하는, 극중극중극의 구조로 되어 있다.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은 B군이 했듯이 모방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내 안의 누군가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기자가 비슷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은 연기자가 그 역할을 제일 잘 표현하기 때문에 연기자에게 맡겨진 것이기도 하지만 캐릭터 안에 숨은 정서(이를테면 연민 같은 것)를 연기자가 원해서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소설가가 작품활동을 하며 많은 소설을 쓰더라도 결국은 소설가가 정말 말하고 싶은, 소설가 내면 속의 몇 가지 주제일 뿐이고 그것들이 자기복제 되는 것이듯 말이다.

 

<스페인 연극>에서 연출은 배우에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라.”p49 고 말하고, 배우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고 이제 뭘 해야 하냐고 묻는 것을 싫어”p81 한다. 연기는 연출가가 작품에서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연기자의 연기는 연출가한테 채택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스페인 연극>에서 연출은 배우한테 연기를 지시하지 않는다. 배우는 혼란에 빠진다. 연기자의,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고민은 삶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삶이 세계라는 무대에서 내가 하는 연기라면 나는 배우이다. 그렇기에 연기자의 고민이 삶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다. 연기가 타인을 모방하고 나를 발견하는 일이듯 삶 또한 타인을 모방하고 나를 발견하는 일이니 말이다. <스페인 연극>에서 인물 간 힘의 충돌과 화해는 일상에서 사소한 것으로 표출된다. 이 또한 배우가 무대에서 하는 연기와 내가 일상에서 하는 삶이 같은 것이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스페인 연극>에서 화해는 갈등을 겪던 이들이 함께 평범한 것을 계속 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야스미나 레자의 의도대로라면 이 문장에서 방점은 ‘함께’와 ‘계속’ 에 찍혀야 한다. 삶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야스미나 레자는 ‘함께’와 ‘계속’이라고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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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꿈 외 ㅣ 지만지 희곡선집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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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의 희곡에서 인물들 사이에는 상반된 정서가 흐른다. <어느 여름날>에서는 ‘즐거움과 불안’이 흐르고 <가을날의 꿈>에서는 ‘사랑과 죽음’이, <겨울>에선 ‘떠남과 머무름(또는 가능과 불가능)’이 흐른다. 감정이 한 인물한테 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니 삶은 유한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영원한 즐거움도 없고 영원한 불안도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삶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희곡에서 상반된 감정들은 붙어 있는 듯, 한 뿌리에서 나온 듯 너무 가까이 있었다.

 

희곡에서 욘 포세는 인물에 특정한 이름과 직업을 부여하지 않았다. 인물들은 단지 ‘남자’ 와 ‘여자’ 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남자와 여자의 성별특징이 부각된 것도 아니었다. 희곡의 대사에는 말과 말 사이에 (사이), (짧은 사이) 처럼 쉼이 많았다. 이렇게 인물의 외형과 말을 꽉 채우지 않을 때, 즉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때 여백이 생긴다. 여백은 대상의 구체적인 형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내면에 담고 있는 내용을 나타낸다. 희곡에서 인물들 간 감정이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다 감정은 내면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이 희곡의 중요한 장치는 여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리면 참 재밌을 것 같다. 여백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사실은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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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이름 / 기타맨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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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의 두 희곡. <이름>에서 아이 아버지인 남자에게 여자의 가족들은 이름을 묻지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남자는 아이의 이름을 장난스럽게 지어주고 여자와 남자는 아이 이름을 정하지 못한다. <기타>에서 남자는 기타를 치며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결국은 기타를 포기한다.

 

이름을 불러서 기억되고 존재하는 것이니 <이름>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고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가 부정된다는 뜻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존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타를 치는 것은 존재한다는 의미이면서 존재에 대한 어려움을 말할 것이다. 희곡에서 슬픔과 불안이 느껴졌는데 그것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이름>에서 어둠, 이름을 정하지 못하는 것, 남자에게 이름과 직업을 묻는 사람이 없어 남자가 투명인간 취급되는 것, 남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과 <기타>에서 비, 추위, 땅에 떨어진 동전 몇 닢, 남자가 기타줄을 스스로 끊는 것, 아내를 화장한 사람이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 괜찮았다.

 

친구가 들려줬던 얘기가 생각난다. 친구는 시급이 다른 곳보다 2배는 더 비싼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한지 일주일만에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왜. 일이 힘들었나? 하니. 친구는, 힘들다기 보다는, 그래. 힘들었지. 거기는 이름을 안 부르거든. 직원들이 전부 나를 알바. 라고 부르더라고. 친구는 이름이 특이해서 학교 다닐 때 놀림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친구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름 안 불렸다고 그만 두었다니 의외였다. 그러며 친구는, 놀리더라도 이름을 불러 주었더라면. 놀림을 당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놀림조차 당하지 않는 것이거든...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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